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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서평

몸은 기억한다 / 베셀 반 데어 콜크

by 오송인 2019. 10.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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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구글북스

 

심리치료는 기본적으로 언어를 매개로 하는 치료입니다. 상담자와 내담자 간의 talking therapy입니다. 이러한 치료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과거 경험이 현재 경험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들 현재 경험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나 상담자가 그러한 영향에 대해 섣불리 해석하는 경우 그렇죠. 해석만으로 치료가 된다면, 지적 수준이 높고 스스로의 심적 어려움에 대한 reflection 능력을 지닌 사람의 경우 굳이 치료 장면을 찾지 않더라도 치료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해석만으로는 치료가 어렵습니다. 자기 문제의 근원을 알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해석을 통해 그것을 알았다 하더라도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해석은 의식적인 영역의 작업이고 의식적인 영역의 작업으로는 무의식의 영역을 변화시키기 어렵습니다. 생각, 감정, 행동에서의 변화는 무의식의 영역이 변화돼야 가능합니다.

무의식의 영역은 신비한 어떤 것이라기보다 변연계가 관여하는 피질하 영역입니다. 아시다시피 피질하 영역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인간의 기본적인 생리 조절 및 항상성 유지에 연관됩니다. 식욕, 수면욕, 성욕 같은 기본적 욕구에도 연관되죠. 의식되지 못 한 채 불수의적으로 처리될 때가 많지만, 신체 상태 지각을 통해서 어느 정도 의식의 영역으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살아가는 데 어려움이 없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몸의 상태와 감정 간의 연관을 알 수 있고, 자기와 타인, 자기와 세상과의 관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타인 및 세상과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자기를 알아야 하고, 자기 인식의 시작은 몸의 상태를 인식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것이 가능하지 않으면 나를 알 수 없고, 나를 모르면 타인도, 세상도 알기 어렵습니다.

몸이 보내는 신호에 대한 민감성이 현저하게 떨어지거나 아예 느끼지 못 하는 상태와 외상 혹은 복합 외상이 관련 깊습니다. 정상적인 발달 과정에서는 몸이 보내는 신호를 민감하게 알아차려서 스스로의 감정을 인식하고 감정과 사고의 조율에 기반해 의도적인 선택 및 행동을 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학대나 방임과 같은 비정상적 발달 과정을 거쳤거나, 정상 발달 과정을 거쳤다 하더라도 심각한 외상을 경험하게 됨으로 인해 신체 상태에 대한 지각 능력이 손상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손상으로 인해, 심각한 경우 거울 앞에 있는 자기를 알아보지 못 하는 수준에 이릅니다. 그 정도는 아닐지라도 감정불능이 흔하게 수반됩니다. 감정불능이 심한 상태에서는 공포나 두려움과 같은 원초적 감정 경험에 따른 투쟁-도피-마비 반응 정도가 가능합니다. 즐거움을 경험하는 능력은 제 기능을 발휘하기 어렵습니다. 또한 사소한 자극에도 지나치게 과잉 반응하게 되고, 특히 분노폭발과 같은 충동 통제의 어려움을 경험하기 쉽습니다. 내외적 경험이 자기 통제를 벗어났다고 느끼기 쉽고, 자기를 낯설게 느끼는 이인화나 비현실감, 환각 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증상에 관해 열거하자면 그밖에도 다양하지만, 핵심은 몸의 상태를 제대로 지각하지 못 하는 것이 기본적인 욕구와 감정을 조절하는 능력의 손상에 연관되며, 나 자신과의 관계뿐만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를 위태롭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에 처한 사람들을 도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몸은 기억한다는 그에 대한 답이며, 기존의 talking therapy나 약물치료의 한계를 설명하는 동시에 신체 감각을 회복하는 작업이 반드시 약물치료나 심리치료에 수반되어야 함을 역설하는 역작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책은 제 올해의 책입니다. 

이 책에는 몸을 객체화된 분석 대상이 아니라 자기 인식을 가능하게 하고 타인과의 관계를 가능하게 하는 자기의 핵심 요소로 봅니다. 기존의 서구 정신의학이 몸을 객체화된 대상으로 보고 관계를 배제하였던 것에 반대됩니다. 관계를 배제한 치료가 가능한가요? 가능하지 않습니다. 

Laing을 비롯하여 서구의 몇몇 정신의학자들은 환자를 객체화하는 것에 대한 강한 반감을 드러낸 바 있습니다. 생물학이나 약물치료에 경도된 정신의학의 효용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 것이죠. 몸은 기억한다의 저자 반 데어 콜크도 Laing의 연장선상에 있는 의사인 것 같습니다. Laing은 요가, 명상, 뉴로피드백, 내면 가족 치료 등 전통 의학의 바깥에 있는 치료 기법들을 이 책의 후반부에 언급하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과의 관계 및 치료자와의 관계 안에서 즉각적으로 안전감과 통제감을 경험할 수 있게 돕는 치료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인과정 접근을 두 번에 걸쳐 읽으면서 내담자-상담자 간의 관계 안에서 즉각적으로 벌어지는 일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이전과는 다른 내담자 경험을 창조할 수 있을 때 치료가 된다는 깨달음을 얻었다면, 이 책에서는 그러한 치유 경험의 바탕에 몸이 자리함을 배웁니다. 자기 몸 상태를 자각하는 데 주안점을 두지 않는 모든 치료가 얼마나 피상적인지 깨닫습니다. 

몸은 기억한다,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트라우마 치료뿐만 아니라 심리치료 관련하여 꼭 한 번 읽어야 하는 책으로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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