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부터 세 달에 걸쳐 읽었습니다.
현대 이상심리학을 대학원 입학 전에 정말 닳도록 봤는데 그 이후로 권석만 선생님 책은 이 책이 처음이네요.
어려운 내용을 간명하게 푸는 탁월한 능력을 이 책에서도 새삼 확인하게 되네요.
인지행동치료에 비해 인간중심치료를 경시하는 느낌이 없지 않으나(301쪽 인간중심치료 한계 부분에 관한 서술 참고) 대체로 이론 간에 균형잡힌 시각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상담 대학원에 입학하려는 사람들이 아마 한 번쯤은 꼭 읽는 책으로 알고 있는데, 역시 사람들이 많이 읽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심리치료 이론에 관한 방대한 내용이 체계적으로 서술돼 있어서 저도 머릿속에 각 치료 이론의 핵심을 정리해 보는 데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책이 500페이지를 넘어가는데, 괜히 두꺼운 것이 아닙니다. 핵심 개념들을 피상적이지 않은 수준에서 다루다 보니 분량이 많아진 것 같네요.
이 책에서 2장과 13장이 개인적으로는 좋았습니다.
2장은 정신분석이론을 다루는 챕터인데, 프로이트 정신분석이론의 발달 궤적이 쉽게 설명돼 있습니다. 역동이라든지 추동과 같은 개념도 쉽게 풀어줘서 배운 바가 많고요. 정신장애 증상이 방어기제와 밀접한 연관을 지녔고, 발달단계상 어느 단계 고착인지가 어떤 방어기제를 주로 사용할지를 결정한다는 것을 되새기기도 했습니다.
대학원 때 인지행동치료 이론 위주로 배우면서 프로이트는 철 지난 이론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시 했었는데, 상담 직접 해보고 내담자나 환자 만나 보면서, 정신분석이론(과 대상관계 이론, 존 볼비 이후의 애착이론, 해리 스택 설리반을 위시한 신정신분석이론 등)을 이해하지 않고서는 적절한 진단이나 치료가 어렵다는 생각을 갈수록 많이 하게 됩니다.
융의 분석적 심리치료나 아들러에 대해서는 거의 아는 바가 없었는데 새롭게 배웠고요. 인간중심치료에 관한 설명도 매우 알찹니다.
제가 생각하는 이 책의 정수는 13장 동양 심리치료와 자아초월 심리치료 입니다.
13장을 읽으며 "불교의 심리치료적 세계관"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13장에서 서구 심리치료의 한계를 마음챙김에 기반한 심리치료가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에 관한 설명도 좋습니다. 마음챙김에 기반한 심리치료는 불교라는 종교적 색채를 띠지 않으나, 연기론, 즉 실체가 있다기보다 다양한 맥락에서 발생하는 의미들이 있을 뿐이라는 불교의 심리치료적 세계관을 공유합니다. 치료적으로 볼 때 마음의 내용은 실체가 아니기에 내용이 발생하는 맥락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보다 현실적입니다. 아울러 증상을 발생시키는 원인을 알았다 하더라도 현재 이 순간 마음챙김이 안 되면 증상이 재발하기 쉽기 때문에 현재 순간을 자각하여 다른 방식으로 대처할 수 있게 돕는다는 논지도 아주 매력적입니다. 대학원 때 ACT 공부를 한 학기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 와 다시 마음챙김에 기반한 심리치료들을 접해 보니 왜 이 치료가 서구권에서 대세인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불교의 심리치료적 세계관이 마음챙김에 응축돼 있고 다양한 치료이론이 마음챙김을 주요한 치료기법으로 응용해 오고 있습니다. 그 중 마음챙김에 기반한 인지행동 치료(MBCT)에서 마음의 양식을 '행위 양식'과 '존재 양식'으로 나누고, 마음챙김과 관련이 큰 존재 양식뿐만 아니라 목표 성취를 위해 행위에 몰두하는 행위 양식 또한 중요하며, 존재 양식과 행위 양식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이 정신건강이라고 본 부분에 매우 공감이 됩니다. 예를 들어, 우울증을 지닌 환자는 행위 양식에 너무 몰두돼 있고 이상과 현실의 괴리로 인해 부적 감정이 유발되는 것이기에 존재 양식에 무게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는 논리입니다.
자아초월 심리치료는 너무 난해해서 별로 기억에 남는 게 없네요.
그밖에 아래와 같은 점을 기억해둡니다. 한국적 심리치료 이론에 관한 언급은 13장을 이 책의 정수로 보는 또 다른 이유입니다.
자아초월치료: 인간발달의 단계 구분과 자기수양의 다양한 영역을 세분화함
모리타 치료: 증상에도 불구하고 증상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중요
도정신치료: 핵심감정으로 인해 관계에 대한 해석이 왜곡되고 있음을 아는 것이 중요
온마음 상담: 볼비의 내적작동모델에 관한 애착이론을 불교의 심리치료적 세계관과 결합시킨 듯함. 현실 왜곡을 깨닫는 것뿐만 아니라 자유롭고 새로운 비전과 경험을 존중하고 격려하는 것도 중요.
마지막 챕터인 제14장은 21세기의 심리치료와 상담에 관한 내용입니다.
각각의 심리치료에 공통된 공통요인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며, 나 자신이 어떤 심리치료 이론을 기반으로 두고 '동화적 통합'(특정 이론에 기반하되 다른 이론의 장점을 취사선택해오는 치료적 접근 방식)을 해나갈 것인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마음챙김적인 요소가 개인 삶에서 많이 부족한 부분이기에 이 부분을 수양하면서 치료에서도 이론적 기반으로 삼고 싶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윤호균의 온마음 상담이 애착이론, 마음챙김, 인지치료, 불교적 세계관을 잘 통합한 것 같아서 관심이 가고, 현재 주수퍼바이저가 온마음 상담 접근과 관련이 있기에, 이 쪽으로 더욱 공부를 하는 동시에 수퍼비전에서 더 상세히 배움을 구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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