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이상 학력이나 학벌이 삶의 안전지대를 보장해주지 않기 때문에 하루라도 빨리 교육 전쟁에서 빠져나오는 것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공감대 형성이 필요하다는 것이 이 책의 주요 논점이다. 또한 공부라는 것이 삶을 더 잘 살아나가기 위한 수단이지 공부 그 자체가 목적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는 또 다른 핵심 주장에도 많이 공감했다.
사회적 안전망이 부재한 상황에서 교육이 일종의 동아줄처럼 인식되는 데는 한국전쟁 이후의 역사가 반영돼 있다. 하지만 이 책의 두 저자는 이런 인식이 이제는 현상을 잘 반영하고 있지 못 하다는 데 견해를 같이 한다. 썪은 동아줄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486세대가 학력을 통한 본인들의 성공방정식을 자식들에게 대물림하려 하는 것이 문제다. 교육을 통해서 계층 상승할 수 있다는 (지배) 이데올로기에 대한 믿음이 강하기 때문에 다른 방식의 삶을 상상하지 못 하고, 더 나쁘게는 그런 삶을 평가절하한다.
서울에 있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은 이제 학생 개개인의 능력이 아니라 부모 재력의 문제다. 이건 저자들만의 견해가 아니라 연구 결과들이 뒷받침한다. 정말 온전히 혼자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 연고대 가는 학생이 몇명쯤은 있겠지만 이들은 현상을 왜곡하는 아웃라이어다. 일반적으로 아파트 한 채 정도는 교육에 투자하는 것이 그리 큰 타격이 아닌 집안의 자식들이 서울대, 연고대를 간다. 물량공세에서 당해낼 재간이 없는 대다수의 사람은 교육 전쟁에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데 너무나 공감이 됐다.
“2000년부터 2014년까지의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분석해서 중간계급 세대 간 이동 경로를 추적했어요. 놀랍게도 부모와 자녀 세대가 모두 중간 계급을 유지한 확률은 10.5퍼센트에 불과했어요. (중략) 이렇게 애를 써서 자기 중간 계급을 물려주려고 부모 세대는 무진장 애를 쓰지만 10명에 9명은 실패했다는 것. 이건 이 전략이 개인의 능력 문제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전략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증거 아닐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저자들의 해법은 안전망 확충 같은 사회구조적인 부분의 변화도 중요하지만, 그보다는 개인의 행동에 집중한다. 현재 부모이거나 부모가 될 사람들이 현상을 정확히 이해하고 교육전장에서 발을 빼서 자기 자신의 건강이나 노후 준비에 더 열을 쏟으라고 주문한다. 자식들의 삶과 부모로서의 자기 삶을 분리해서 자기 삶에 더 주안점을 두라고 주문한다. 그것이 오히려 자식들에게 부모 노후에 대한 부담을 덜 지우고, 보다 중요하게, 자식들이 주체적으로 삶의 방향 설정을 할 수 있게 돕는 길이라고. 나 또한 자식의 학력, 직업, 결혼을 통해 자기 삶의 성적을 메기려는 과도한 지기애는 부모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자식의 삶까지 망치는 지름길이라 생각한다.
남들이 보편적으로 가고 있는 길에서 벗어난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나 혼자 벗어났다가 나락으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을 경험하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교육전장에서 낙오해서 나락으로 떨어질 확률에 비한다면 마이웨이 가다가 나락으로 떨어질 확률은 상대적으로 낮다. 이제 더 먹히지 않는 전략에 가족 전부가 몰빵하는 것보다는 이리저리 찔러 보면서 각자의 생존안을 모색하는 것이 훨씬 현실적으로 보인다.
한발 물러나서, 생각과 실제 행동 사이에는 늘 괴리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인정한다면, 아이들이 컸을 때도 이런 생각을 고수하고 행동으로 실천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교육이라는 게 더 다양한 기회를 포착할 수 있게 돕는 면이 있는 게 사실이고, 대학 졸업장을 누구나 갖는 시대에 이 졸업장 없는 사람이 가시적인 차별을 받는다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면에서 본다 하더라도 사교육을 통해 서울에 있는 대학을 보내려는 노력을 하기보다 방통대 같은 것을 활용해 대학 졸업장을 따내는 것이 더 가성비가 좋아 보이고, 부모나 자식 모두의 정신건강에도 이로워 보인다(물론 평소에 공부 열심히 하던 아이가 좋은 대학 가고 싶다고 사교육시켜 달라고 하면 합격 여부를 떠나서 힘 닿는 데까지 시킬 생각이다). 더 베스트는 아이 적성에 맞는 길을 함께 찾아보는 것이지만 이 길을 간 사람이 거의 없어서 선뜻 나서기가 두렵고, 아이가 대학교육에 큰 뜻이 없다면 그래도 학력/학벌 지상주의 한국 사회에서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하니 방통대 통해서 졸업장까지는 따라고 설득할 것 같다. 그게 이 책을 읽고 생각해 본 내 절충안이다.
자녀 교육을 떠나 개인적인 차원에서 공부가 무엇일까에 대한 생각도 해보았다. 새로운 지식을 배우고 이를 통해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것에서 난 동기가 굉장히 충만한 사람이라 할 수 있다(재수없게 들릴 여지가 있음을 안다;). 세상에 책만큼 돈 적게 들이고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게 없다(다른 게 있다면, 개인적으로는 등산이나 음악 찾아듣는 것 정도..). 책을 통해 공부한다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인지 깨달은 것은 사실 전문가 자격 취득 이후에 현장 구르면서 공부의 필요성을 절박하게 느끼고 나서부터다. 공부한 것을 현장에 적용하고 다시 현장에서 생긴 궁금증을 공부를 통해 해소하는 과정에서 굉장한 쾌감을 맛봤고, 이후부터는 영어공부와(영어를 모르면 내가 원하는 더 정확한 답을 찾을 수 없다) 여러 개의 스터디로까지 확장해서(스터디는 공부에 체계를 부여한다) 적극적으로 공부에 임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하지현의 다음 얘기가 정말 공감이 많이 된다.
“공부의 정의 자체가 벽에 부딪혀보면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모색해나가는 과정을 익히는 거예요. 그게 중요한 이유는 ‘A'라는 상황을 겪고 나서 ’B'라는 상황이 왔을 때 ‘A'라는 상황에서 얻은 경험치 중의 70퍼센트 정도는 ’B'상황에서 써먹을 수 있기 때문에, 20~30퍼센트만 새로 배우면 수월하게 그 일을 해나갈 수 있는 적응 능력이 만들어지니까요. 즉, 공부라는 것은 자기만족을 위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서 적응력을 향상시켜주기 위한 방법론을 익히는 것이죠.”
지금은 심리평가만 하는 장면에 머물러 있기 때문에 심리평가 위주로 공부하고 현장 경험과 지식을 상호피드백시키면서 지식 체계를 쌓아올리고 있다. 심리치료도 공부하고 있지만 이 공부를 통해서 배운 지식은 치료 장면에 활용해 보고 수정해서 내 것으로 체화하지 않으면 아무 의미가 없다. 하지현과 엄기호가 누누이 강조하는 것처럼, 실전에서 써먹지 않는 공부를 위한 공부는 덧없는 공부중독일 뿐이다. 이에 조만간 심리치료 장면에도 복귀하여 전문성을 더 키워나갈 예정이다.
삶이 성장의 과정이고, 공부는 성장의 과정에서 유연성을 유지하기 위해 필수적일 뿐만 아니라 자신이 무엇으로 성장하고 싶은지, 그 여러가지 가능성을 타진하고 자신에게 가장 적합한 것을 선택하는 데 필수적이다. 그래서 공부를 멈출 수가 없고, 미래가 확정돼 있지 않은 이상 계속 공부해야만 한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