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2월2일부터 지금까지 세 달에 걸쳐 읽었습니다. 심리학 및 심리치료 고전 읽기 온라인 스터디의 세 번째 책이었습니다.(네 번째 책인 자살하려는 마음 이번 주 일욜까지 모집하니 관심 가져주시고요.)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저는 이 책을 읽고 나서 피상적으로만 알고 있던 애착에 관해 조금 더 구체적인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었고, 원전을 읽는 것의 중요함을 다시금 상기하게 됩니다.
600페이지를 넘어가는 방대한 분량인데다, 볼비의 문체가 상당히 친절함에도 불구하고(김창대 교수의 번역이 매끄럽기도 한 탓이겠죠) 볼비가 풀어내는 추상적 개념들과 사고 체계 자체가 독자에게 어렵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면들이 있기 때문에 읽기에 만만한 책은 아닙니다.
(진화)생물학적인 관점에서 통제이론을 통해 애착을 설명합니다. 스스로가 처한 환경에서 최대한 생존율을 높이고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인간이 행동체계를 발달시켜 온 방식에 관한 이론적 논의가 이 책의 주된 내용입니다. 얘기만 들어도 머리 아프시죠? 저도 그랬습니다.. ㅜ
근본적으로 찰스 다윈 같은 사람의 영향이 크고요. 프로이트의 영향도 크지만, 볼비는 아시다시피 프로이트의 모호한 개념들을 진화생물학과 통제이론의 관점에서 보다 명쾌하고 이해가능한 언어로 풀어내려 노력합니다. 이 과정에서 프로이트의 몇몇 개념들이 폐기가 되고요.
하지만 볼비가 정신분석적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는 데는 이견이 없을 것 같습니다. 경험적 근거 자료를 통해서 정신분석적 가정을 검증하고, 보다 현실적이고 일상적인 언어로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을 뿐이고요. 그런 노력이 아마 정통(?)이라고 자부하는 정신분석적 심리치료자들에게 반감을 주었을 수도 있을 것 같네요. 이론이 교조로 되는 순간 이론에 대한 합리적 반박에 대해서도 반감을 품기 쉽죠.
프로이트 이론에 대한 볼비의 주요한 반박의 논점을 다 이해하지는 못 했지만, 애착을 비롯한 인간 행동 발달의 기원을 탐색하면서 자연스럽게 프로이트가 병리적으로 봤던 것들이 실상 기질과 환경의 불일치에 기인하는 이해 가능한 결과일 수 있음을 피력하는 대목들이 가장 인상 깊었습니다. 예를 들어 프로이트가 퇴행이라고 보았던 것도 애착이 뭔가 위협 받는다고 지각될 때 애착 안정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이해할 수 있겠고요.
“...우리가 어떤 유용한 생물학적 기능이 애착행동에 있는 것으로 여기는가 혹은, 2차적인 충동 의존 이론들의 전통에서처럼, 애착행동을 부적절하고 유아적인 특성으로 여기는가의 여부에 따라 동료 인간들에 대한 우리의 총체적 접근 방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639쪽.
사실 프로이트가 퇴행이라는 말을 정확힌 어떤 맥락에서 사용했는지 알 수 없지만, 정신분석은 ‘그 환경에 처해서 그렇게 되지 않기란 어려운 일일 수 있다’는 인간 경험의 보편성을 전제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실상 퇴행이라는 말을 병리적인 의미로 사용했을 것 같지 않지만, 그 말의 의미가 후학들에게 병리적인 특성으로 왜곡되었을 여지도 충분히 있죠. 그런 점에서 볼비의 노력은 프로이트 이론의 폐기라기보다 프로이트 이론의 원래 뜻을 되살리려는 시도로 볼 여지도 있을 것 같고요.
어찌 됐든 간에 볼비는, 외부 환경과의 적극적인 상호작용의 결과로 안정애착을 비롯한 기능적인 결과들이 야기되기도 하지만 어떤 환경이 한 인간이 지닌 기질이나 진화론적으로 뿌리 깊이 내린 인간의 보편적 행동 특성을 서포트하지 못 할 때 병리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보는 것 같고요. 그게 엄마나 아빠의 불안정한 애착 패턴이든 주요 타인의 상실이나 외상 경험과 같은 것이든 무엇이든 간에 그러한 환경 자극에 대한 반응으로서 인간의 행동을 이해하는 것이 환자나 내담자를 이해하는 바탕이 됨을 이 책을 통해서 다시금 배우게 됩니다.
끝으로 부모로서 이 책을 읽으면서도 도움을 많이 받게 되는데요. 예를 들어, 모와의 애착관계뿐만 아니라 부와의 관계가 아이에게 미치는 커다란 영향력에 관한 언급들이 종종 등장하기 때문에 아이에 대한 태도에서 더 책임감을 가져야겠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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