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코올 중독의 치유에는 단계가 있습니다. 임상에서 널리 쓰이는 구분인데요. 이와 관련하여 논문의 한 구절을 발췌해 옵니다.
이러한 변화 단계는 행동변화에 대해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는 전숙고 단계(precontemplation stage), 현재의 행동패턴 및 행동변화로 인한 손익 관계를 검토하는 단계인 숙고 단계(contemplation stage), 변화를 계획하고 의지를 다지며 전략을 개발하는 준비 단계(preparation stage), 앞선 단계들의 과제를 완수한 경우 실제적인 변화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실행 단계(action stage), 새로운 행동패턴이 상단 기간 동안 유지되고, 이러한 행동패턴이 개인의 생활양식 속으로 견고 하게 통합되는 마지막 유지 단계(maintenance stage)로 구분된다. 출처: J Korean Neuropsychiatr Assoc, 2019;58(3):173-181.
숙고 단계로 와도 준비 단계로 가는 것이 매우 어렵습니다. 준비 단계에서 실행 단계로 가는 것도 마찬가지로 어렵고요. 일보 전진, 이보 후퇴가 비일비재합니다. 중독 치료는 만성 정신병 치료만큼이나 어려운 과정일 수밖에 없습니다.
숙고 단계에서 준비 단계로 가는 것은 알코올 중독을 지닌 사람뿐만 아니라 지니지 않은 사람에게도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 모두 새해 결심이 한 달을 혹은 일주일을 못 넘기고 흐지부지 되는 경험을 살아오면서 수없이 하죠.
제가 이번에 소개해 드릴 논문은 새해 결심이 실패하지 않을 수 있게 돕는 내용입니다. 정말 유익한 내용이라 좀 길게, 제 경험을 섞어서 풀어봅니다.
새해 결심이 실패하지 않으려면, 즉 목표 달성에 실패하지 않기 위해서는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합니다. 첫째가 목표의 특성이고 둘째는 실행계획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번 글에서는 목표의 특성을 고려하는 부분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언제 올릴지 알 수 없으나 다음 글에서는 실행계획과 관련하여 설명할 예정입니다.
목표의 특성은 다음과 같이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접근 목표 대 회피 목표
'~ 하지 않겠다. 예를 들어, 패스트푸드를 먹지 않겠다.' 이런 회피 목표와 '~하겠다. 예를 들어, 야채를 더 먹겠다.' 같은 접근 목표는 돌아가는 메커니즘이 전혀 다르고, 연구 결과들은 후자가 목표 달성률이 더 높음을 알리고 있습니다.
이에, 회피 목표를 세웠다 하더라도 이를 접근 목표로 연결시켜서 더 구체화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저녁 식사 후에 TV를 보지 않겠다 라는 목표를 세웠다면, TV를 보지 않는 대신 동네 한 바퀴 산책하고 오겠다 와 같은 목표로 구체화시키는 것이죠.
저의 영어 공부를 예로 들면, 출퇴근길 지하철에서 핸드폰으로 딴짓하지 않겠다. 그 대신에 영어 팟캐스트, All in the Mind 혹은 프리코노믹스를 듣겠다 입니다.
2. 수행 목표 대 숙달 목표
수행 목표는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판단이나 평가가 들어가고 자기효능감에 상당한 영향을 미칩니다. 예를 들어, 이번 학기엔 과에서 탑에 들겠다 라는 목표 같은 것이죠. 얼마나 타인보다 유능한지 입증하려는 노력을 포함할 수 있고, 이러한 목표 달성에 실패했을 때 자기 안에 목표 달성을 불가능하게 하는 무능함이 있는 것은 아닐까 의심하기 쉽습니다.
반면 숙달 목표는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이해하고 말 그대로 보다 향상/숙달되는 데 초점을 두는 목표입니다. 새로운 지식/기술 습득 과정 자체를 즐겁게 여기는 것이고요. 외재적 동기보다 내재적 동기와 더 관련 있습니다. 내재적 동기가 강하기 때문에 목표 달성에 실패하더라도 문제를 파악해서 다른 식으로 접근하려 하기 쉽습니다. 현재 노력과 그 노력의 결과를 분석해서 보다 나은 결과를 위한 미래 전략을 수립하려 하기 쉽고요.
수행 목표에 비해 숙달 목표가 더 좋은 것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목표 달성에서 각자의 역할이 있는데 장기적인 플랜에서 수행 목표가 없다면 자기만족에 그치기 쉽습니다. 객관적으로 내 위치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할 수 있어야 지식/기술 습득에서 실제적인 향상이 있을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 같고요. 그렇기 때문에 수행 목표라는 보다 큰 맥락 안에 숙달 목표를 위치시키는 것이 좋습니다.
제 영어 공부를 예로 들어 보죠. 7월까지 텝스 점수를 상급으로 향상시키겠다는 목표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취약한 문법 공부를 날마다 20분 정도 하되, 문법보다 흥미 있고 숙달되었다고 느끼는 독해 공부를 지난 달보다 약간 더 많은 분량인 350페이지 이상 하겠다. 전공 관련 서적이 실용성 있고 비전공서에 비해 더 재미 있기 때문에 전공서 중심으로 읽겠다. 뭐 이런 목표가 상급 텝스 점수 획득이라는 수행 목표를 추구하는 과정에서의 숙달 목표겠죠.
3. 어려운 목표 대 쉬운 목표
너무 어려운 목표는 좌절을 야기하기 쉽고 너무 쉬운 목표를 지루함을 야기하기 쉽습니다. 이 밸런스를 잘 맞춰서 목표 달성을 위한 체계적 행동에 지속적으로 관여하게 만드는 데는 다양한 요인들이 관여합니다. 그 중 두 가지가 앞서 잠깐 언급한 내재적 동기와 자기효능감입니다. 더 높은 수준의 내재적 동기가 관여될 수 있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 좋겠고, 너무 많은 좌절을 초래하며 자기효능감을 꺾어버리지 않으면서도 적절한 수준으로 어려운 목표여야 합니다.
이 두 가지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자기이해가 필수적으로 수반돼야 합니다. 영어 공부한 지 햇수로 3년차인 시점에서 영어에 대한 제 목마름이, 처음에 영어 공부 시작하던 2018년 여름보다 몇 배는 더 커졌음을 느낍니다. 사실 첫 시작은 외적인 동기가 다분했습니다. 영어를 더 잘 해야 임상심리전문가로서 시장 경쟁력을 더 갖출 수 있지 않을까 라는 막연한 기대였죠. 하지만 지금은 그러한 외적 동기보다는 영어 공부 과정 자체에서 얻는 즐거움이 더 큽니다. 특히 영어로 된 전공서나 논문을 읽고 이해하여 블로그에 관련된 포스팅을 올리는 행위 자체가 제게 큰 즐거움을 줍니다. 제가 정말 좋아하는 것이 록음악을 듣거나 공연 보는 것, 그리고 책 읽는 것, 마지막으로 등산인데 결혼 이후에는 음악/등산은 어렵게 됐습니다. 그럴 만한 시간적 여유가 없어졌고요. 이런 상황에서 영어 책을 읽는 것이 제게 큰 위안이 되고 있습니다.
저처럼 내재적 동기는 충만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적절한 목표 수준을 설정하는 것이 조금 까다로운 문제일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일단 부딪히면서 가늠해야 하는 문제로 여겨지고요. 영어 리스닝을 예로 들면, 호주 국영 라디오의 팟캐스트 중 하나인 All in the Mind를 애청하는데 제 수준보다 약간 높지만, 아무래도 정신건강을 광범위하게 다루는 팟캐이다보니 처음 들을 땐 잘 안 들려도 스크립트를 보면서 동시에 들으면 핵심을 이해하는 데 큰 무리가 없습니다. 반면에 현재 참여하고 있는 프리코노믹스 리스닝 스터디는 고전을 면치 못 하고 있습니다. 일단 프리코노믹스 자체가 정치, 경제, 문화를 포괄하는 다양한 테마를 다루고, 또 각각의 방면에서 내로라 하는 교수들이 나와서 썰을 풀기 때문에 상당히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스크립트를 정독해도 이해가 잘 안 될 때가 많고요. 현재 총 8주간의 스터디 중 7주차 진행 중이고 꾸역꾸역하고 있습니다마는 다음 기수에는 참여하지 않을 생각입니다. 너무 고된 행군이라서요.
이런 식으로 직접 부딪히면서 자기 수준을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자기 수준보다 약간 높은 목표를 좇으면서 한 단계 한 단계 올라가는 게 필요합니다. 그래야 재미를 잃지 않을 수 있으니까요. 재미와 같은 긍정적 정서가 수반되지 않는 학습은 지속되기가 어렵습니다. 이건 목표 설정에서 정말정말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ref)
Bailey, R. R. (2017). Goal Setting and Action Planning for Health Behavior Change. American Journal of Lifestyle Medic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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