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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서평

위로해주려는데 왜 자꾸 웃음이 나올까 / 티파니 와트 스미스

by 오송인 2020. 9.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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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픕니다.

 

사람은 자기보다 다른 사람이 잘난 것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너무 넘사벽으로 뛰어난 사람이거나 나와 별 관련이 없는 사람이라면 별 감정이 안 들거나 존경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겠으나 자기와 비슷한 부류의 사람이 잘나가는 것은 부정적인 자기평가와 함께 시기심을 유발합니다.

 

이런 역동은 보편적입니다. 문화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니라 미국 사람이든 한국 사람이든 아프리카 사람이든 다 마찬가지죠.

 


 

그런데 시기심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는 감정이 있습니다. 바로 다른 사람의 불행에서 기쁨을 느끼는 인간의 은밀한 감정이죠.

 

이런 감정 또한 보편적이지만, 이런 감정을 지칭하는 단어는 드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샤덴프로이데죠. 독일말입니다.

 

샤덴은 고통이고 프로이데는 환희입니다. 다른 사람의 고통에서 환희를 얻는다는 것이죠. 잔인한가요?

 

이 책에서는 샤덴프로이데의 예시가 정말 수도 없이 나옵니다. 다른 사람이 투명한 유리에 얼굴을 부딪혀 쓰러지는 것을 볼 때 킥킥거리는 차원에서부터 더 심한 차원에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에서 샤덴프로이데의 예를 다룹니다.

 


 

이 책이 샤덴프로이데를 다루는 것은 이 감정 또한 기능적인 특성이 있음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여느 감정이 그러하듯 다른 사람의 고통에 기뻐하는 데는 진화론적 역사가 있을 것입니다.

 

자원이 유한할 때 이 자원을 두고 경쟁해야 하는 일군의 개체들은 서로가 서로의 불행을 기뻐할 수밖에 없습니다. 

 

타인의 불행은 나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행복입니다. (리처드 도킨스는 이기적 유전자에서 '행복'을 생존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타인이 불행함으로써 나의 안전이 확보됩니다. 

 


 

하지만 문명화된 사회에서 샤덴프로이데를 드러내는 것은 금기에 가깝고 그렇기에 이를 지칭하는 단어가 드물 것입니다.

 

그럼에도 승승장구하던 오만한 정치인의 추락을 보면 꽤나 짜릿한 기쁨이 치밀어 오르죠. 일례로 전 요즘 TV에 황OO과 나OO이 안 나와서 참 좋습니다. 수감생활 잘 하고 계시는 전 대통령들도 그렇고요. 

 

저자가 서문에서 지적하듯 샤덴프로이데는 인간의 저열한 측면을 보여주는 염세적인 단어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샤덴프로이데를 통해서 정의와 공정함을 추구하려는 경향, 외집단의 추락을 보며 내집단 안에서 안전감과 소속감을 느끼고 싶은 욕구, 다른 사람보다 더 높은 지위를 차지하고자 하는 욕구, 다른 사람도 나처럼 실패할 수 있다는 데서 얻는 위안 등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죠. 샤덴프로이데 역시 여타 감정과 마찬가지로 인간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감정임이 분명합니다.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에 비해 실제 내용은 좀 부실합니다. 많은 예시로 채워져 있을 뿐 서문에 나온 저자의 주장이 발전적으로 전개되고 있지 못 합니다. 그래서 사실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려운 책입니다.

 

다만 이 책 읽으면서 제 안의 저열한 감정이 타당화되는 느낌이 들어 좋았습니다. 또한 저 역시 누군가에게는 샤덴프로이데의 대상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런 대상이 된다면 양가적인 감정이 들 것 같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네요. 인간의 마음은 역시나 복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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