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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정신병리

끝까지 찾지 못한 잃어버린 물건에 대해

by 오송인 2020. 10.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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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은 제멋대로 날뛰는 망아지 새끼라 별 연관도 없는 주제로 이리저리 뛰어 다니게 마련이다.

 

하지만 정반대로 어떤 한 가지 생각에 꽂혀 다른 생각할 틈이 없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 생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은데 족쇄가 채워진 것마냥 벗어날 수 없을 때 병리적이라 할 수 있다.

 

이게 반추한다는 것의 의미이다. 벗어나고 싶은 어떤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지 못 하고 얽매여서 계속 생각하게 된다.  

 

살면서 누구나 반추를 경험한다는 점에서 병리적이지만 병리적이지만은 않다. 정상적인 경험의 일부로 볼 여지가 있다.

 

하지만 반추가 하루 종일 계속되고 그 다음날에도 또 그 다음날에도 계속되면 확실히 병리적인 것이다.

 


 

인간의 마음의 모든 기제가 그렇듯이 이 반추에도 기능적인 부분, 즉 쓸모 있는 부분이 있다.

 

반추와 구체적인 생각이 결부되면 문제해결에 도움이 된다. 골똘히 생각하되 구체적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골똘히 생각하되 추상적으로 생각하면 역기능적이고 병리적이다.

 

무엇이 구체적으로 사고하는 것을 가로 막는가?

 


 

이에 대한 다양한 학술적 답변이 있을 테지만 내 개인적인 경험에 비추어 보면 추상적인 반추적 사고는 나도 모르는 내 안의 불안을 감추고자 하는 시도일 때가 많다.

 

나는 몇 달 전에 무선 마우스를 작동하게 하는 USB단자(?)를 잃어버렸다. 

 

한동안 잊고 살다가 그것에 꽂혀서 며칠 동안 찾은 적이 있다. 과장 조금 보태 자나깨나 잃어버린 USB단자 생각이었다.

 

결국 못 찾고 새롭게 무선 마우스를 두 개(!) 장만했을 때 드디어 USB단자를 찾을 수 있었다.

 

잘 안 입는 외투 주머니에서 발견했다.

 

USB단자를 못 찾는다고 해서 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그걸 찾아야 한단 생각에 꽂혀서 몰두했던 것일까?

 

 

 

 

이제 와서 돌아 보면 그 즈음 내게는 중요한 과제가 있었고, 오랫동안 준비해 온 그 과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컸다.

 

그 압박감이 너무 커서 내가 감당할 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을 때 USB단자가 훌륭한 회피 도구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건 마치 부동불안(이유 없는 막연한 불안)을 잠식하기 위해 신체 증상에 대한 걱정이 발생하는 것과 비슷하다. 특정 대상에 불안이 전치됨으로써 그 불안을 조금은 수월하게 다룰 수 있게 된다.

 

마찬가지로, 과제를 성공적으로 마무리지어야 한다는 불안으로 인해 오히려 과제에 연관된 일을 하기가 어렵고 지연행동이 빈번하게 발생했는데, USB에 꽂힌 이후에는 USB를 찾지 못 한 데 따른 상당한 찝찝함에도 불구하고 과제 완수에 필요한 일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했다.

 

이 일을 통해 나는 추상적인 병리적 반추가 꼭 해로운 것은 아님을 배웠다.

 

사소한 어떤 것에 대한 추상적 반추를 통해 압박감을 이겨내고 당장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었다.

 

이런 경험을 일반화할 수 있을진 잘 모르겠다. 관련 연구를 찾아 보진 않았다.

 

하지만 추상적 반추라는 일견 불쾌해 보이는 경험이 실은 내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어떤 대처 전략이었음을 체감한 이상 앞으론 잃어버린 물건 혹은 잃어버린 생각에 대한 집착에도 불구하고 해야 할 일들을 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

 

 

덧. 대상관계이론 입문 이란 책에서 학술적인 설명을 찾았다. "강박적으로 신경을 쓰는 것은 그렇게 하지 않으면 터져 나올 것 같은 감정을 통제하기 위해 주의를 다른 곳으로 돌리는 노력이다."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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