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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일상

죽음과 불안

by 오송인 2021.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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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발달 자체가 죽는다는 사실을 부인하는 과정의 총제라 할 수 있다고 누군가 말했던 것 같습니다. 

 

프로이트였을까요..

 

한 개인의 뛰어난 성취나 업적도 때로는 죽음을 부인하는 과정에 연관될지 모릅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부인할 수 있는 것은 아니죠.

 

특히, 보통 마흔 이후부터는 부쩍 기력이 쇠해 보이는 부모의 노화나 죽음을 경험하며, 인간은 누구나 죽어가는 과정에 있으며 자신이라고 그것을 피할 리는 없다는 자명한 사실을 받아들이는 준비를 하게 됩니다.

 

하지만 이 과정이 늘 순탄하게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래서 아마도 중년기에 남성이든 여성이든 우울증, 알코올 남용, 외도, 무기력, 일중독 등등의 양상을 통해 위기를 경험할 가능성이 높아지는지 모릅니다.

 


 

어제 어머니께서 손주들 보려고 집에 다녀가셨습니다. 

 

한 달만에 뵌 것이었는데 한 달 전에 비해 부쩍 머리숱이 빈 자리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여전히 일을 하고 계시는데 일이 힘들어서 탈모가 발생한 것은 아닌지 무척 걱정이 됐습니다.

 

어머니가 아이들과 즐겁게 노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즐거웠지만 마음 한 편이 왠지 모르게 아프고 우울한 느낌이었습니다. 애써 그것을 보려 하지 않았지만요.

 

식탁에 앉아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가 어머니는 마흔 이후부터는 시간이 너무 빨리 가더라는 말을 하셨습니다.

 

사연 없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마는 저희 어머니는 정말 갖은 고생을 하셨습니다.

 

지나간 시간에 대한 묵직한 회한이 묻어나는 말투였습니다.

 


 

오늘 낮잠을 자다가 악몽을 꿨는데 제가 아는 어떤 아이가 살해 당하고 저는 본능적으로 제가 아는 누군가와 몸을 숨겼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눈치 챌 틈도 없이 그 누군가마저 사라져 버렸습니다.

 

기묘하게도, 무서운 느낌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공허한 마음과 다소 불쾌하기도 한 마음을 지닌 채 잠에서 깼습니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여느 때처럼 꿈을 잊어버릴 것 같아서 눈을 감은 채 꿈의 의미를 생각했습니다.

 

제 옆에 있던 것은 누구였을까요? 저는 그게 처음에는 와이프일 것이라 생각했지만 반나절 정도 지나 다시 생각해 보니 아마도 어머니였던 것 같습니다.

 

'사라짐'이라는 꿈의 연출은 어머니를 잃는 것에 대한 두려움의 상징적 표현이 아니었을까 싶고요. 그래서 두렵지 않고 공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일까요. 어머니도 언젠가는 돌아가실 것이고 나 역시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을 알기에 슬프거나 무섭다기보다 덤덤하고 공허한 마음이 들었던 것일 수도 있겠어요. 열심히 살고 있으면서도 간혹 이 모든 노력이 다 무슨 소용이냐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요즘 부쩍 많기도 하고요. 의욕을 저하시킬 정도의 임팩트가 있다기보다 순간적인 생각에 가깝지만요.

 

살해 당한 아이는 누구였을까요? 그건 아마도 제 유년기가 아니었을까 싶어요. 제 나이가 이제 곧 마흔입니다. 유년기의 꿈들 이상들이 확실하게 부서지는 그런 시기 아닐까요. 

 

생각에 생각을 하다 보니 이 꿈이 가리키는 것은 대상 상실을 예견하는 데 따른 불안은 아닌 것 같아요. 그 대신, 제가 이제껏 지니고 살아온 유년기의 꿈들이 종언을 구하고 새로운 나를 자발적으로 구성해 나가야 하는 시작점에 다다랐음을 알리는 그런 꿈인 것 같아요.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 문득 듀스의 노랫말이 떠오릅니다. 대상 상실의 불안이 아니라, 이제껏 나를 떠받쳐주던 여러 가지 역할이나 이상이 더는 제역할을 하지 못할 수도 있음과 아직 내가 누구인지 모른 채 살아왔구나 라는 생각이 불안을 야기하는 것 같아요. 늘 좌표를 잡아주던 유년기의 나는 이제 죽었는데 이 미지의 우주에서 지금 내 위치는 어디인 것일까요. 최근 읽은 김초엽 소설의 주인공들도 생각나고.. 자정을 넘긴 시각입니다. 잠이나 자야겠습니다.

 

 

ref)

내가 누군지도 모른 채 마흔이 되었다 / 제임스 훌리스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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