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너무나 유명해진 애착이론의 발달에는 여러 연구자와 치료자가 기여했습니다. 그 중 한 명이 Mary Ainsworth의 제자인 Mary Main 입니다. Mary Main은 종단연구를 통해 부모의 내적작동모델(internal working model)[^1]이 어떻게 영아기의 애착 행동을 예측하는지 밝혔습니다. Ainsworth가 부모-자녀 사이의 외적으로 관찰되는 행동에 초점을 두고 연구했다면, Main은 부모-자녀 관계에서 발생하는 보이지 않는 마음의 과정을 연구할 수 있는 방법론을 마련하였고, 부모가 지닌 내적작동모델이 아이의 내적작동모델을 예측한다는 인과관계를 검증했다는 데 의의가 있습니다.
Main의 연구에서 안정애착은 하나의 통합된 내적작동모델을 지닌 상태이며, 불안정애착은 양립불가능한 복수의 내적작동모델이 통합되지 못한 채 경합하는 상태에 가깝습니다.[^2] 불안정애착의 내적작동모델에서는 양립하는 정보 중 어느 한쪽은 배제되기 쉽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에 대해 좋은 느낌을 갖게 될 때는 안 좋은 느낌이 완전히 배제되고 그 반대도 가능합니다. 대개 좋기도 하지만 안 좋기도 한 회색지대 어딘가에서 호불호의 비율이 달라지는 것이 일반적인데, 어느 한쪽을 완전히 배제하면서 맹점을 갖게 되니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에서 편향이나 왜곡이 발생하기 쉽습니다.
편향이나 왜곡을 갖게 된다 하더라도 1. 내 생각이 불충분함을 고려할 수 있고, 2. 내 생각이나 느낌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변함을 알며, 3. 같은 것을 보더라도 다른 사람은 나와 다른 생각이나 느낌을 가질 수 있고 그 역시 타당함을 알 수 있다면 보다 통합된 내적작동모델로 나아가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Main은 이를 메타인지적 앎(Metacognitive knowledge)라고 부릅니다.
심리평가나 심리상담에서도 이 메타인지적 앎이 중요하고, 이를 평가 및 상담 과정 전반에서 지속적으로 적용하고 있는지 모니터링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심리평가는 내담자의 현재 상태에 대한 가설일 뿐이며 내담자 그 자체가 아닙니다. 다른 전문가라면 나와 다른 가설을 가질 수 있고, 내 가설이 현재 내담자를 비교적 정확하게 반영한다 하더라도 시간이 지나면서 내담자의 내외적 상황이 변하는 만큼 가설도 변화되어야 합니다.[^3] 이와 비슷하게, 상담을 할 때도 내담자의 마음 상태 및 상담의 방향에 대한 청사진(즉, 사례개념화)을 그려본 후 상담에 임하지만, 상담의 대가들이 한결같이 하는 말이 있다면 상담에 임할 때는 사례개념화를 잊으라는 것입니다. 사례개념화라는 틀에 갇혀 앞에 앉아 있고 계속 변화 중인 내담자를 못 보게 되는 우를 범하지 말라는 것이죠.[^4]
하지만 실상은 저런 우를 범할 때가 더 많습니다. 내담자에 대해 내가 지닌 생각이 틀렸을 수 있다고 지속적으로 되뇌는 것은 상당한 에너지가 들어가는 작업이고, 통제감을 약화시킴으로써 자신감이 낮아지는 결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취약해지는 느낌이 들기 때문에, 틀렸다고 인정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죠. 많이 배울수록 더 겸손해진다고 하지만, 어떤 분야의 전문가든 간에 이런 취약성을 기꺼이 수용하려는 태도를 취하고자 고군분투하지 않는 사람에게 겸손함이 저절로 찾아올 리 없습니다. 많이 배우기만 한 사람이라면 독선적인 사람이 되겠죠.
심리상담을 하는 사람이라면 메타인지적 앎을 적용하기 위해 늘 깨어 있어야 하고, 내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 때 이를 인정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확실성과 통제감에 안주하고자 하는 마음을 내려놓을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번 주 내내 들었던 생각입니다.[^5] 상담자도 상담 장면 안에서 때때로 틀리고 내담자로부터 상처받기도 하는 똑같은 인간적 한계를 지니지만, 내담자들에게 이러한 취약성을 적절히 보여줄 수 있다면 내담자가 스스로의 한계와 취약성을 수용하는 데 도움이 되는 면이 있기 때문에, 상담자로서 내가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를 갖는 것이 중요해 보입니다.[^6]
[^1]: 볼비에 따르면 내적작동모델은 자기, 타인, 세상을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정신적 표상으로 생애 초기 양육자와의 관계에 기반함. 메인은 볼비와 다르게, 내적작동모델을 정신적 표상이 아니라 정보를 받아들이거나 정보에 제약을 가하는 구조적 과정(structured processes)로 본다는 차이가 있음.
[^2]: Wallin, D. J. (2007). Attachment in psychotherapy. Guilford Press, p. 40.
[^3]: [[P - 뱀이 허물 벗듯이 사례개념화도 새로운 정보에 맞게 변화를 거듭해야 함]]
[^4]: [[P - 가설은 잠시 잊고 상담 회기에 집중한다]]
[^5]: [[P - 유능한 상담자란]]
[^6]: Young, J. E., Klosko, J. S., & Weishaar, M. E. (2003). Schema therapy: A practitioner’s guide. The Guilford Press, pp. 403-4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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