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 list를 비롯한 체크리스트 사용이 보편화돼 있고, 이와 관련된 어플도 많습니다. 저도 여러 To-do list를 써보다가 마이크로소프트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To Do 어플에 정착하여 사용 중입니다.
GTD(getting things done)로 유명한 데이빗 앨런은 해야 할 일을 모두 기록하여 믿을 만한 보관함에 넣어두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중요하지 않은 일이라 하더라도 언젠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모두 적습니다. 수첩이든 To Do 어플이든 관계 없습니다. 이 때 언제 그 일을 할 것인지도 적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할 일과 그 일의 실행 시점을 적는 것은 주의력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것을 가능하게 합니다. 믿을 만한 곳에 저장돼 있는 기록은 우리 마음을 안심시키고, 지금 당장 중요한 일에 주의를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합니다. 해야 하지만 기록하지 않은 어떤 일은 문득문득 떠올라 우리 마음을 산란하게 하기 쉽습니다.
티아고 포르테의 세컨드 브레인 개념은 그 자신도 말하듯이 앞서 말한 GTD 방법론과 유사합니다. 기록하고 저장하며 필요할 때 리뷰하여 실행한다는 의미에서 말이죠. 제가 생각하기에 한 가지 차이는 창조입니다. GTD가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과제 수행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세컨드 브레인은 이 모든 과정의 궁극적 목표가 창조를 통한 자기표현임을 강조합니다. 티아고가 든 예에서와 같이 창고를 나만의 작업 스튜디오로 개조하는 것도 일종의 창조입니다. 여기서 창조는 예술에 국한되지 않는 포괄적 의미이며, 자기만의 개성을 드러내는 활동이라는 공통점을 지닙니다.
창조력이란 이미 만들어진 비법이나 틀을 좇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만의 방법으로 재료를 모아 조합함으로써 뭔가를 만드는 능력이다.[^1]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서는 인지적으로 유연해야 합니다. 즉, 확산적 사고와 수렴적 사고를 유연하게 오갈 수 있게 하는 주의력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스마트폰 배터리처럼 주의력도 하루에 가용한 용량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의력을 효율적으로 쓰는 것이 중요해집니다. 중요하지 않은 데 너무 많은 주의력을 사용하면 정작 중요한 데 주의집중하지 못할 수 있으니까요.
세컨드 브레인은 효율적인 주의력 사용을 가능하게 하고, 이를 통해 보다 온전히 창조 행위에 주의력을 쏟을 수 있게 합니다.
하루에도 머리속에 수많은 생각이 떠오르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 중 중요한 것들에 선택적으로 주의의 초점을 맞추고, 중요하지 않은 정보에 주의가 맞춰지는 것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닙니다. 중요하지 않은 정보에 주의가 맞춰지는 것을 억제할 수 있는 능력이 미흡할 때 주의력의 문제가 있을 가능성을 고려합니다.
주의력의 문제가 있든 없든 효율적으로 주의를 배분할 수 있게 하는 한 가지 공통된 방법은 GTD나 세컨드 브레인에서처럼 생각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무언가를 조작하는 데 들어가는 에너지는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것을 조작할 때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수학 문제를 암산하는 것과 종이에 써서 계산하는 것의 차이를 생각하면 됩니다. 기록을 하면 일단 어떤 정보가 지닌 중요함의 정도를 보다 수월하게 분간할 수 있고, 작업대 위에서 중요한 정보에 우선적으로 주의의 초점을 맞추며 일을 진행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특히 ADHD를 지닌 사람의 경우 일상생활관리에서 일반적으로 눈에 보이는 언어적/시각적 정보를 적극 활용하는 것이 권고됩니다.
세컨드 브레인은 단순히 기록에 그치지 않고 그것을 조직화하여 저장하고 필요한 때 다시 작업대로 가져와서 취하거나 버림으로써 창조적 결과를 내는 일련의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순히 기록만 해나간다면 정보가 쌓일수록 애초 의도와 달리 주의력이 저해되는 결과를 야기할 것입니다. 효율적으로 주의력을 사용하기 위해서 세컨드 브레인에서 강조하는 것은 제가 생각하기에 두 가지입니다. 첫째, 불필요한 정보를 주기적으로 버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건 GTD에서도 똑같이 강조되는 부분입니다. 작업대 위에 필요한 것만 올려져 있어야 합니다. 주기적인 리뷰를 통해 불필요한 정보를 버리는 것은 주의력이 낭비될 가능성을 낮추고, 중요하고 가치 있는 정보에 초점 맞추거나 관련 있어 보이는 일련의 정보를 확산적으로 탐색하는 데 주의를 쏟을 수 있게 합니다. 이런 식으로 창조를 위한 정돈된 작업대가 마련됩니다.
둘째, 남겨진 정보에서도 다시 핵심만 추립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나중에 정보를 리뷰할 때 빠르게 본질에 접근하는 것이 가능해집니다. 즉, 정보의 지엽적인 부분에까지 주의력을 할애하게 되는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다른 분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메모의 제목을 지을 때 그 메모의 핵심을 담고자 합니다. 아래 사진에서 예시로 든 메모는 내용 자체가 한 줄밖에 안 되지만 '추상적 반추의 긍정적 기능'이라는 제목을 통해 다시 한 번 추상화했습니다.
정보의 핵심뿐만 아니라 세부적인 부분까지 알아야 할 때가 분명 있습니다. 정보의 핵심을 잘 요약해 놓았다면 그 자체가 이정표로 기능하며 빠르게 세부 사항으로 들어가는 것이 가능합니다. 세컨드 브레인에서는 정보의 핵심을 추출한 본래 맥락을 저장해 놓기 때문입니다. 아래 예시로 든 메모의 출처는 Disorders of Personality라는 책의 RCC 파트이고, 그 중에서도 RCC와 공존이환할 때가 있는 강박장애와 관련한 내용입니다. 위에서 인용한 것처럼 창조가 기존 재료(정보)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재배열하여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이라 하더라도 정보가 위치한 맥락을 잃는다면 정보의 본래 의미를 왜곡하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에 세컨드 브레인에서는 정보를 가져온 원래 맥락 또한 저장해 놓는 것을 중시하고, 이를 통해 필요에 따라 카메라를 Zoom-In(수렴)/Zoom-Out(확산)하듯이 유연하고 효율적으로 주의력을 사용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1]: 하버드 글쓰기 강의 / 바버라 베이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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