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역동 심리치료를 지향하는 임상심리학자인 조지프 버고는 지난 35년 동안의 심리치료 경험에 기반하여 이 책을 썼습니다.
일상에서 경험하는 경미한 수준의 수치심에서부터 한 사람의 인생을 꽉 움켜쥐는 힘으로서의 강렬한 수치심에 이르기까지 수치심의 스펙트럼이라 할 만한 것을 보여주는 책입니다. 저자에 따르면 수치심을 경험하는 상황을 아래 네 가지 경우로 크게 분류할 수 있습니다.
(1) 타인을 향한 그들의 관심이나 애정이 보답을 받지 못했다고 느낄 때. (2) 의미 있는 동료 집단에서 소외를 당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서 고립되었을 때. (3) 원치 않는 방법으로 유약함이 노출되었을 때. (4) 그들 자신이 스스로에게 거는 기대감 또는 인생에서 중요한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게 거는 기대치를 충분히 이루지 못했을 때
특히 저자는 한 사람의 삶을 움켜쥔 "핵심 수치심"은 되돌려 받지 못하는 사랑(1)과 무너진 기대감(4)을 모두 담고 있다고 봅니다.
생애 초기의 정서적 학대나 방임, 부모의 이혼이나 부재, 사망, 발달 과정에서 경험한 건강상의 큰 문제 등 핵심 수치심의 발달에는 특정하기 어려운 많은 요인이 영향을 미칩니다. 외부적 요인뿐만 아니라 불안에 대한 역치가 낮다거나 지적 능력의 발달이 미흡하여 다른 사람과 긍정적으로 상호작용하기 어렵고 자기/타인의 기대를 충족하지 못했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어떤 이유이든 간에, 내 안에 공고히 자리 잡은 핵심 수치심을을 의식한다는 것은 괴로움을 넘어 공포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이에 무의식적인 방어기제를 사용하여 핵심 수치심과 직면하게 되는 상황을 미연에 차단합니다.
저자는 방어기제의 세 가지 유형을 나눕니다. 회피하기, 부정하기, 통제하기입니다. 회피하기는 다른 사람과의 상호작용을 가능한 한 피하거나 무언가에 중독됨으로써 감정 경험을 회피하는 전략입니다. 부정하기는 우월감을 느끼며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비난함으로써 수치심을 부정하려는 태도에 연관됩니다. 통제하기는 누가 나를 비난하기 전에 내가 나를 비난함으로써 통제감을 유지하는 것에 연관됩니다.
이러한 방어는 다른 사람과의 건강한 관계를 유지하기 어렵게 하고 자신에게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없게 함으로써 삶의 반경에 제약을 초래합니다.
저자가 제시하는 해법은 취약성의 수용입니다. 취약성을 수용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를 수 있지만 핵심은 스스로가 경험하는 감정이나 생각을 애써 부인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이 고통스럽다고 해서 그 고통을 외면하거나 부인하면 더 큰 괴로움이 찾아 옵니다.
수치심의 회복탄력성이란 이 피할 수 없는 경험들을 견뎌내는 것을 배우는 능력이며, 그 과정에서 그러한 경험들에 대해 과도하게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음을 뜻한다.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생애 초기 친부의 학대로 야기된 수치심을 '부정하기’를 통해 방어해 온 한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누구나 보편적으로 갖는 정도의 의존성조차 부인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했고, 아내와의 관계에서도 자신이 아내에게 의존적이라고 느껴질 때 소리 지르고 화 내는 방식으로 취약성을 방어하려 합니다.
이 때 심리치료자가 그 남자에게 말합니다. “내가 배우자에게 화가 난다는 건 내가 의존적이라는 뜻이고, 나 자신이 의존적이라는 사실을 싫어하거나 믿지 못한다는 뜻이고, 이는 내가 의존적이라는 사실에 무력감을 느낀다는 뜻이죠.”[1] 남자는 이 말에 한 번도 보인 적 없던 눈물을 보입니다. 더 이상 아빠에게 얻어맞던 어린 내가 아님에도 아내에게 그간 방어적으로 행동함으로써 관계가 위기에 빠진 것을 알아차립니다. 아내에게 더이상 소리 지르지 않게 됩니다.
고통스러운 감정이나 생각을 피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경험하는 데는 운동선수가 기량 향상을 위해 훈련하는 것과 같은 의미에서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핵심 수치심으로 인해 일이나 대인관계에서 반복적으로 어려움을 경험해 온 상황이라면 심리치료를 통해 전문가와 함께 하는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저자는 핵심 수치심을 안고 상담실을 찾은 내담자가 심리치료를 통해 변화하는 양상을 이 책에서 다양하게 기술하고 있습니다. 장기간의 상담을 짧은 지면에 담기 어려웠을 테고 많은 부분이 축약되었을 테지만, 심리상담이나 심리치료가 어떤 흐름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한 사람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내용입니다.
2019년에 원서[2]로 한 번 읽고, 4년만에 번역서로 읽었습니다. 60대가 된 이후에도 “거의 매일 수치심이 내게 영향을 주는 방식을 대면하고 그와 씨름하며” 자기성찰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언급이 위로가 됩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이지 수치심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어 보입니다. 날마다 경험하는 수치심이라는 감정의 실체와 마주하는 것은 자기를 더 깊이 이해하고 이를 통해 타인도 깊이 있게 이해하는 중요한 시작점일 수 있습니다.
원문 url: 수치심 / 조지프 버고 :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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