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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서평

Shame: Free Yourself, Find Joy, and Build True Self-Esteem / Joseph Burgo

by 오송인 2019. 7.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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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8월부터 원서 읽기 지속 중인데 200페이지 넘는 책으로는 두 번째 완독입니다(첫 책이 600페이지였고 7개월 걸렸는데, 300페이지 가량인 이 책은 4개월쯤 걸렸네요). 책 제목만 보면 구태의연하고 촌스러운 자기계발서 느낌이지만, 이 책은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수치심뿐만 아니라 병리적인 수준의 수치심 역동을 저자 본인의 경험 및 심리치료 사례를 통해 생생하게 전합니다.

 

잠깐 저자 소개를 하면, 저자는 UCLA에서 학부를 나왔고 California Graduate Institute라는 곳에서 심리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후 정신분석가로 활동하는 것 같습니다. 몇 권의 책을 냈고 미국 국영방송에서 인터뷰한 자료도 있는 것을 보면 나름 이름이 알려진 사람 같네요. 저는 이런 것을 떠나서 이 사람의 대중친화적 글쓰기가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또한 자신의 성장 과정이나 수치심 경험 등을 조금 심도 깊은 수준에서 허심탄회하게 풀어놓는 것도 인상적으로 느껴졌어요. 사적인 자리도 아니고 대중 저술에서 자신의 취약성을 오픈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닐 텐데, 수치심을 경험회피하지 않고 수용할 때라야 그러한 감정으로부터 배울 수 있음을 주장하는 저자 자신의 주장과도 행동적으로 일치하는 대목인 듯합니다.

 

수치심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나쁘게 경험한다는 점에서 죄책감과 구별됩니다. 죄책감은 자신의 어떤 '특정 행동'에 대한 자기비판적 성격을 띠지만 수치심은 '내 전부'를 가혹한 비판적 시선으로 바라보며 고통스러워하는 것에 가깝죠. 모든 감정은 그 강도의 스펙트럼이란 것을 갖기 때문에 수치심도 조금 당황하고 부끄러워하는 수준에서부터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강한 자기경멸감에 이르기까지 연속선상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경미한 수준의 수치심은 자기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도움이 됩니다. 예를 들어, 사회적 상황에서 수치심을 경험하는 것은 자신이 설정한 내적 기준에 스스로 부합하지 못 하게 된 상황에 연관될 때가 많습니다. 수치심을 통해 자신의 기준 및 그 기준을 통해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가 무엇인지 인식하여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욕구 충족에 도움이 될지 반성적으로 사고할 수 있습니다. 외적 기준에 부합하지 못 하는 상황에서도 수치심을 느낄 수 있죠. 일상적인 예로, 늦잠 자서 지각했는데 다른 사람들 보는 앞에서 팀장에게 한소리 듣는 그런 경우를 생각해 볼 수 있겠네요. 창피함을 경험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동안은 늦지 않으려 노력하겠죠. 모든 감정이 그렇듯이, 이처럼 수치심도 일종의 경보음 같은 것이며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나 충족시키고자 하는 욕구에 부합되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스스로를 점검할 수 있게 해줍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런 일시적인 수치심이 아니라 지속되는 수치심입니다. 잠깐 동안 '내가 나쁘다'라는 경험을 하는 게 아니라 삶의 전 과정에서 이런 경험을 하게 됨으로 인해 삶이 피폐해집니다.

 

지속되는 수치심을 안고서는 도저히 살아갈 수가 없으니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어 체계를 형성하게 됩니다. 임상에서는 주요 방어기제가 무엇인지에 따라 성격을 구분하기 때문에 방어를 성격으로 생각하셔도 무방합니다. 저자는 정신분석가이기 때문에 정신분석, 정신역동 지향에서 방어를 논합니다. 즉, 아마도 카렌 호나이의 전통에 따라, 회피, 통제, 굴복이라는 세 가지 범주로 방어를 논합니다. 저자의 용어로는 각기 Avoiding, Denying, Controlling입니다. 잠깐 샛길로 빠지자면, 통제에 Controlling이 대응되는 것이 아니라 굴복에 대응되고 있어서 좀 헷갈리실 수도 있는데, 저자가 말하는 Controlling이라는 것은 자기비하나 혐오, 마조히즘(masochism) 등을 통해서 스스로를 가학적으로 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치심을 자극하는 상황이 언제 발생할지 예측불가하니 다른 사람이 자신을 나쁘다고 생각하기 전에 먼저 선수를 침으로써 상황을 '통제'합니다. 즉, 수치심에 연관되는 부정적 자기이미지를 그대로 받아들여 스스로에게 가학적으로 행동함을 의미합니다. 반면 Denying은 다른 사람에게 공감적이지 못 한 방식으로, 때로는 가학적으로 행동하는 것에 가깝습니다(ex. Narcissist).

 

이 책의 장점은 이러한 방어기제가 한 사람에게서 어떻게 나타날 수 있는지 심리치료 사례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각각의 사례를 읽다 보면 수치심을 방어하려는 일생의 노력이 참 다양한 형태로 나타남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방식은 매우 가시적이지만 어떤 방식은 꽤나 은밀합니다. 사회적 상황으로부터 철수하거나 그 상황에 참여해서도 회피적인 태도로 인해 사람들과 상호작용하지 못 하는 것, 섭식장애나 약물중독 등으로 고통 받는 것, 다른 사람의 도움은 절대로 필요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 항상 강하고 독립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태도, 세상에서 내가 제일 우월한 사람이라는 태도, 자주 다른 사람을 비난/비판하거나 사소한 비판도 견디지 못 한 채 다른 사람을 경멸하고 때로는 폭발적으로 분노 표출하는 것, 자기 비판적 태도와 만성적 우울 등 이 모든 삶의 이야기에 핵심 감정 중 하나로서 수치심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수치심을 방어하려는 노력이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나타날 수 있는바, 상담을 할 때 수치심 경험에 좀 더 민감해질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저자가 정신분석 지향을 지닌 만큼, 이 책에는 수치심의 발달적 기원에 관한 이야기도 곳곳에서 중요하게 다루어집니다. 생후 1년 정도는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이 필요합니다. 갓난아기의 뇌는 부모의 관심과 사랑이라는 자양분이 있어야지만 정상적으로 발달되도록 프로그래밍돼 있는데, 이게 잘 되지 않으면 인지적, 정서적, 사회적 발달에 깊이 연관되는 뇌의 핵심 기능이 적절히 발현되기 어렵습니다(일례로 갓난아기 때부터 보육원에서 자라난 아이들의 평균적인 지적 기능은 다른 또래보다 통계적으로 유의미하게 낮습니다). 생후 1년까지 사랑을 잘 받았다 하더라도 부모-자녀 간 친밀한 정서적 상호작용을 통해 유대감이 발달하지 않으면 아이는 자신에 대해 좋게 느끼기가 어렵습니다. 흔히 쓰는 용어로 말하면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된다는 것이죠(낮은 자존감을 수치심의 완곡한 표현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더욱이 주 양육자로부터 반복적으로 경멸당하거나 정서적/신체적 방임 및 학대를 경험한 사람은 수치심을 핵심 정서로 하는 자기감(sense of self)을 갖게 됩니다. 저자 역시 성장 과정에서 이런 자기감으로 인해 괴로워 한 시기가 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지 않고서는 수치심을 주제로 책을 쓸 이유가 없었겠죠. 심리학자가 천착하는 주제는 보통 스스로의 핵심적인 내적 경험에 연관됩니다. 정직하게 스스로를 들여다보면 제가 이 책을 집어든 것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발달적 기원에 관한 이야기는 수치심을 이해하여 자기수용할 수 있게 돕기 위한 노력의 일환입니다. 주양육자와의 관계에서 수치심이 유발되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하지 않았다 하더라도 나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사람이나 집단으로부터 외면당하거나 배제되는 것은 수치심을 유발하기 쉽습니다. 이런 경험은 사실 살아가면서 누구나 겪게 되는 것이죠. 연인에게 차인다거나 가고 싶었던 대학/회사에 합격하지 못 한다거나 하는 것을 떠올리면 됩니다. 주양육자와의 관계에서나 일반적인 사회 관계 안에서나 애착 대상으로부터 상호적인 사랑을 받지 못 할 때 수치심에 취약해집니다.

 

누구나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습니다. 즉 다른 사람과 연결감을 느끼고 싶고,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인생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싶기도 합니다. 인간의 기본적인 두 가지 욕구입니다. 이 책을 요약하자면, 이 욕구가 충족되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반복적으로 느끼다 보면 자기를 나쁘다 지각하게 되고, 이런 경험이 고통스럽기 때문에 회피/통제/굴복이라는 방어 혹은 대처 양식을 형성합니다. 방어를 통해 고통으로부터 일시적으로 벗어날 수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니며 대인관계나 사회생활에서 더 큰 고통에 놓일 수밖에 없습니다. 악순환입니다. 이런 악순환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자신의 경험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합니다. 회피하거나 다른 사람을 비난하거나 자기를 비난하는 게 아니라 그저 그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가능합니다. 저자는 이를 수치심 탄력성(shame resilience)이라는 말로 개념화합니다.

 

Developing shame resilience means learning to tolerate such experiences, as painful as they might be, without forcefully defending against them.

 

이를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내가 부족하고 실수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자학적인 방식이 아닌 자기수용적인 방식으로 상대방 앞에서 인정하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상담자로서도 아주 중요한 자질입니다). 예를 들어, 연인이나 배우자와의 반복적인 갈등에 처해 이런 태도를 지니는 것이 얼마나 어렵던가요. 감정이 격화된 상황에서는 내가 잘났고 너가 잘못했다는 식으로 상대방의 수치심을 자극하며 갈등 양상이 파국을 향해 치닫기 쉽죠. 합리적 정서행동 치료를 개발한 앨리스 박사(작고하신 분이고, 인지행동치료의 대가입니다)는 인간이 1. 모두에게 사랑 받아야 하고 2. 모든 일에서 성공해야 한다는 비합리적 신념을 지니기 쉽다고 말합니다. 정도의 차이일뿐 이런 완벽주의적 태도가 누구에게나 있는데 용기를 낸다는 것은 이러한 뿌리 깊은 신념의 비합리성에 직면하여 자신의 불완전성을 받아들인다는 것과도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 문득 듭니다. 그런 까닭에 이 책의 self-help 부록에서 "Avoid Perfectionism"을 반복적으로 요청하나 봅니다.

 

Everyone makes mistakes; from time to time we behave in ways we don't respect or that violate our core values. If you harshly berate yourself, or punish yourself for having erred, you'll be unable to learn from the experience. Don't make unrealistic vows to never again make the same mistake. Recognize trends or tendencies in your personality(they won't go away) and commit to doing a little better the next time.

 

용기를 내 자신의 내적 경험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할 수 있다면 그 때 비로소 다른 방식으로 행동할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자부심을 쌓아올릴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죠. 이 책의 21장과 22장은 건강한 자존감을 유지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로서 일상의 작은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제가 요즘 몰두하는 습관 형성과도 관련 있는데, 큰 목표를 세우더라도 그것을 지금-여기서 실천할 수 있는 작은 루틴으로 쪼개 꾸준히 지속하라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지속에 실패하더라도 그것을 자기비난으로 연결시키기보다 자기탐색의 기회로 삼으라는 요청도 귀기울여야 합니다. 목표가 비현실적이진 않았는지, 루틴 지속을 어렵게 하는 심리적 요인이 있는지 등을 점검하라는 것이죠. 그렇게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가며 쌓이는 '작은 성공'들이 건강한 자부심을 형성합니다. 상식적인 얘기지만 이런 게 높은 자존감으로 향하는 지름길이라면 지름길입니다.

 

끝으로 이런 성공을 자신에게 의미 있는 타인과 나누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자부심은 내가 이룬 성취를 소중한 사람과 함께 나누며 기뻐할 때 의미있습니다. 수치심이 관계 안에서 형성 및 지속되듯이 자부심 또한 관계 안에서 발생하는 감정입니다. 내 성취를 함께 기뻐해주는 사람이 없다면 꽤 공허할 것 같네요.

 

짧게 써야지 생각하면 늘 길게 쓰게 됩니다. 오래 읽은 만큼 할 말도 많았나 봅니다. 치료 장면에서 수치심을 이해하여 치료적으로 활용하는 방법에 관심이 있는 분은 Dearing과 Tangney가 에디터인 Shame in the Therapy Hour를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전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읽게 될 것 같네요. 이만 글을 마칩니다.

 

덧. 2019년 11월에 번역서가 나왔습니다. http://www.yes24.com/Product/Goods/82589995?OzSrank=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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