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둘레길에 다녀왔다. 작년 5월과 올해 2월, 그리고 7월에 이어 네 번째였다.
마실길과 내시묘역길 구간을 걸었는데 마실길은 시작한 지 얼마되지 않아 끝났다고 느껴질 만큼 다른 구간들에 비해 짧았고, 내시묘역길은 다른 어떤 구간보다도 쉬웠다. 작년 11월에 지리산 둘레길 걷던 때처럼 한적하고 평화로운 느낌이 많이 나는 구간이었다.
한 시간쯤 걸었을까.. 생각보다 날씨가 춥기도 하고 배도 고프고 하여 강촌식당이라는 식당에서 잔치국수로 허기를 채웠는데, 가격도 착하고 맛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다방 커피 한 잔을 들고 다시 길 위에 서니 한결 마음이 가볍고 세상이 따뜻해 보였다. 역시 어르신들 말마따나 배 따숩고 등 따순 게 최고.
내시묘역길 가던 중간에 의상봉을 오르려고 방향을 틀어 한 700미터 정도 올라갔는데 해가 능선에 걸리기 일보 직전이라 더 올라가면 어두워지고 조난 당할 것 같아 내려왔다. 멀리서 바라보는 의상봉의 위엄이 상당했다. 그 위에 서면 취업근심이 좀 덜어질 것만 같았다. 다음 번에 꼭 다시 가보리라. 북한산초등학교를 종점으로 대략 한 시간 반의 산행을 마쳤다. 북한산 둘레길은 총 21구간인데 이로써 8개 구간을 걸은 게 됐다. 수련 끝나기 전까지 21구간 모두를 걸어보고 싶다.
시네큐브에 들러서 아무르를 볼까 하다가 돈도 없고 교보에 갔다. 거기서 박종현 선생님이 번역하신 국가론 2권을 읽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책의 번역보다 한결 매끄럽고, 본문에 나오는 그리스 신화들에 대한 설명이 친절하게 달려 있어서 본문 내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 1권에서 정의가 부정보다 왜 이로운지에 대해 설명했다면 2권에서는 국가의 발생 기원에 관한 얘기로 시작해서 통치자 교육에 관한 얘기로 진행돼 간다. 국가를 통치하는 통치자 교육에서 중요한 것이 체육과 문학인데, 특히 이 문학에서 거짓이 판치고, 그로 인해 교육이 망가지고 있음을 소크라테스는 개탄한다. 문학에서 거짓이 판친다 함은, 절대적으로 정의로워야 할 신이 부정을 저지르고 타락하는 인간 같은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음을 뜻한다. 소크라테스는 검열제를 시행해서 이것을 바로잡고 교육을 바로 세우자고 말한다. 1권에서와 마찬가지로, 소크라테스의 재치 있는 논변이 빛을 발하고 있고, 특히 신이 왜 절대적으로 선하고 또 인간을 우롱하지 않는지에 대한 대목이 재미있었다.
힐쉬베르거의 서양철학사도 좀 읽다 왔다. 플라톤 부분까지는 재미있게 읽었는데 아리스토텔레스에서 멘붕이 와서 진도를 더 안 나가고 있던 차였는데, 이번에 아리스토텔레스 부분을 다시 읽으니 두 가지 정도가 어렴풋하게나마 머리 속에 들어 왔다. 첫째로 아리스토텔레스는 플라톤과 차이를 두는 주장들을 하고 있지만 원론적으로는 플라톤주의자라는 게 힐쉬베르거의 주장이다. 즉 이데아가 모든 것의 시작점이자 준거점이다. 차이를 굳이 말해야 한다면, 플라톤은 이데아를 통해 비로소 개별적인 것을 이해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개별 사물들을 통해서 이데아를 알 수 있다고 보았다는 점이 플라톤과의 큰 차이다. 하지만 개별 사물들 그 자체가 이데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하다. 즉 개별 사물들은 감각 정보만을 정신에 제공할 뿐이다. 들어온 감각 정보에서 이데아를 읽어내는 것은 능동 오성의 역할이다. 이것은 마치 예술가가 주어진 재료를 가지고 그 자신의 목적 하에 예술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과 유사하다. 둘째로 플라톤과 비교할 때 현실태와 가능태를 구분한 것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차별적인 기여라고 한다. 목수가 일을 안 하고 있다고 해서 목수가 아니라고 할 순 없다. 일을 안 할 때의 목수는 일종의 가능태인 것이고 일을 하고 있는 목수는 현실태이다. 이 구분이 왜 중요할까? 가능태에서 현실태로의 이행을 설명함으로써 어떻게 해서 사물들이 움직이는지 그 운동을 설명할 수 있게 된 점 때문이라고 한다. "운동이란 가능태로서의 존재자 자체를 현실화하는 것이다."(p. 254) 지금은 가능태로서의 임상심리전문가로 존재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현실태로서의 임상심리전문가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현실태로서의 임상심리전문가가 되기 위해서는 이미 임상심리전문가이신 수퍼바이저 선생님의 도움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현실태가 먼저고 가능태는 나중이다. 닭이 먼저고 달걀은 나중인 것이다.
좀 더 읽고 싶었지만 어느덧 네 시간이나 지나 폐점할 시간이 되어 나올 수밖에 없었다.
어찌 됐든 간에 논문 다 쓰니 읽고 싶은 책 맘대로 읽을 수 있어서 좋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