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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일상

나에게서 온 편지(원제: 무릎을 스치는 바람)

by 오송인 2013. 9.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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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레르(사진 왼편)는 자신에게 무관심했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을 가지고 있다. 이런 이유로 콜레르가 자신의 딸인 라셸에게 보이는 관심은 매우 크다. 어머니한테 못 받은 사랑을 딸에게 헌신하며 대리적으로 충족하고 싶은 마음이랄까. 하지만 그 방식에 문제가 있다. 이를 테면 딸의 생일 선물로 가난한 아프리카 땅의 아이들에게 기부할 수 있는 서류를 준다든지 하는 식으로, 아이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한 채 자기식의 사랑과 관심을 쏟는다. 이로 인한 라셸의 실망감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을 것인데, 설상가상으로 라셸의 아버지 미셸은 "너만한 나이에 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맨발로 탈출했었다"며 아이로서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것들을 냉정하게 거절해 버린다. 이 정도면 정서적으로 유기된 거나 다름 없다. 이런 문제는 내부적으로는 해결이 안 된다. 그래서 감독은 발레리라는 처방전을 제시한다. 라셸은 발레리와 단짝 친구가 되고, 발레리를 통해서 내면의 막연한 불안감을 털어낸다.



왼쪽이 발레리. 얘 좀 짱이다. 아주 웃겼던 인형 섹스 장면. 요즘 애들은 역시 조숙해.ㅋㅋ


이런 내용의 영화다. 이 영화가 갖는 미덕은 적절한 유머와 완급 조절을 통해서 지루하지 않게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데 있다. 전반적으로 따사로운 영화의 색감도 좋다. 장면장면마다 킥킥거리고, 인물들의 감정선에 몰입도 해보고, 결말에서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보다 보니 어느새 영화가 끝나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라셸의 엄마와 아빠가 서로에 대한 사랑을 재확인하고, 라셸은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부모에게 미주알고주알 얘기하는 평범한 아이로 돌아간다. 부모 간의 불화는 가족 안에서 가장 취약한 사람을 통해 증상으로 발현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영화에선 라셸이 identified patient였다. 그런 라셸을 치료한 건 발레리와의 우정이었고, 보다 근본적으로는 부부 간의 사랑과 신뢰 회복이었다. 한편 자신이 받았던 상처를 딸에게 대물림하지 않기 위해 애쓰는 콜레르의 모습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또한 부엌 좀 고쳐달라는 콜레르의 요구를 듣는 둥 마는 둥 했던 미셸이 다른 여자의 부엌을 정성들여 고치는 모습을 보고서도 화내지 않고 조용히 그 집을 나서는 콜레르가 너무 답답했다. 딸을 진정으로 사랑하려면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하는데 사랑받지 못한 채 자랐다고 느끼는 콜레르에게는 그게 쉽지 않았던 모양이다. 아이를 잘 키우려면 부부 관계가 좋아야 하고, 부부 관계가 좋으려면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상기시킨 영화였다. 자기를 존중하고 사랑하는 법을 몸소 실천하는 게 최고의 자식 교육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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