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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일상

GRAVITY

by 오송인 2013. 10.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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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는 재난영화라기보다 메타포로 읽혔다. 관계에서 상처를 너무 많이 받아서 내면으로 침잠한 어떤 사람에 관한 비유랄까. 가장 소중한 존재를 잃은 산드라 블록이 유영하던 우주는 너무나 깊고 깊어서 다른 사람이 닿을 수 없는 내면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였다. 그 곳은 완벽하게 외부 현실과 차단돼 있고 상처를 줄 사람도 상처 받을 사람도 없는 안전한 곳이었다. 하지만 공허했고 어떤 생명력도 없는 무의 공간이기도 했다. 그런데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대인관계 경험들과 자기패배적인 사고는 종종 이런 공간에까지 침습해 온다. 1시간 반이라는 시간 간격을 두고 맞닥뜨리게 되는 인공위성의 무수한 파편들 말이다. 이것들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한 산드라 블록의 노력은 처절하기도 했지만 어떤 비극보다도 슬펐다. 세상과도 또 자신과도 결코 친해질 수 없는 정신분열증 스펙트럼 환자의 깊은 소외감이 읽혔기 때문이다. 결국 그녀는 더 이상의 사투를 포기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실제로 정신분열증에서 자살률이 낮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그 순간 우주선 안에는 우연찮게 지구로부터 수신된 잡음 섞인 자장가 소리가 들려 온다. 지금도 이 장면을 떠올리자니 콧등이 시큰해지는데, 영화에 200퍼센트 몰입돼 그녀가 죽지 않기를, 다시 한 번 시도해 보기를 간절히 바랐다. 영화는 어쨌든 해피엔딩으로 끝나지만, 난 이보다 슬픈 영화는 본 적이 없다. 결국 사람은 자기 내면에 있는 무언가를 외부에서 보게 되는 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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