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에게 의미 있는 어떤 사람(가령 엄마, 아빠, 애인)에 대해서는 보통 양가감정이 생기게 마련이다. 그 사람에 대해서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 동시에 드는 경우 양가감정이 있다고 말하게 되는데, 감정 그 자체가 우리에게 해로운 것이 아니듯이 양가감정 자체도 해로운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이해하기로는 나쁜 감정이 생길 때 좋은 감정이 하나도 기억나지 않는 경우 문제가 되며 이런 경우 분열(splitting)이 발생했다고 말하게 된다.
분열은 평가절하를 비롯한 극단적 행동 양상을 야기하고, 더 나아가 자신에게 의미 있는 사람과의 과거 기억까지도 부정적으로 채색해 버리게 되는 결과를 낳는다. 또한, 자율성에 중점을 두는 사람이든 사회적 관계에 중점을 두는 사람이든 간에 한 인간의 정체성이란 것은 의미 있는 사람과의 관계, 정확히 말해 그 관계에 대한 기억에 의해 대부분 정의되는 것이므로 의미 있는 사람과의 기억이 부정적으로 채색되는 것은 정체성에 악영향을 미치게 마련이다.
이런 악영향은 자신이 쓸모없는 존재(SCT상에서 주로 "나의 장점은 없다"와 같은 표현으로 나타나곤 한다)라고 여기는 것처럼 explicit한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감정 자각이 확실치 못해 일상의 선택에서 우유부단해지는 것처럼 비교적 implicit한 양상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한편 불안정한 정체성은 외부 환경을 위협적으로 지각하게 만들고 그 환경에 적절하게 대응할 수 없는 자신의 취약성에 대한 자의식을 과도하게 상승시키면서 언제나 좋은 면과 나쁜 면이 공존하는 외부 실재에 정확하게 초점 맞추는 것을 저해하게 된다. 의미 있는 사람에 대한 양가감정이 통합되지 못하고 splitting이 발생하면 이처럼 외부 실재에서도 전반적인 splitting이 발생하게 된다.
'실재'라는 단어의 철학적인 복잡성을 잠깐 생각지 않는다면, 의미 있는 사람과의 관계에 대한 내적 표상이 곧 외부 실재라 볼 수도 있기 때문에 다소 동어반복적인 얘기일 수도 있을 것 같다. 아무튼 간에 이런 분열된 마음에 대응되는 분열된 세상을 재통합시킬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으로 기억재구성을 들 수 있겠다. 현실과 공상의 경계가 어느 정도 유지되는, 즉 현실검증력이 유지되는 신경증 환자 수준에서는 기억재구성이 효과적인 치료 테크닉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가 알기로 사회불안장애나 복합외상 경험을 가진 사람, 경계선 성격장애 환자를 대상으로 이런 기억재구성의 방법을 사용한 연구들이 반복해서 의미 있는 치료 효과를 입증해 보이고 있고, 도식치료에서도 기억심상을 활용한 재구성 테크닉이 주요한 기법 중 하나로 사용되고 있다.
기억재구성은 단순히 긍정적 기억을 더 많이 떠올리게 한다거나 하는 기법은 아니고, 심상을 통해 내가 어떻게 해볼 수 없었던 외상적 과거 사건으로 되돌아가 건강한 성인으로서의 내가 과거의 나를 보호하고 대변하고 돌보는 과정에 가깝고, 건강한 성인 모드가 잘 안 될 경우 치료자가 역할연기를 해서 모방할 수 있게 하기도 한다. 단순히 '긍정적으로 과거 사건을 보자'가 아니라 이미 발생한 과거 사건은 어쩔 수 없어도 그 사건을 대하는 태도는 변화시킬 수 있고, 그게 부정적으로 지각된 지금의 자신을 보다 통합적으로 지각하게 만든다고 보는 게 기억재구성을 연구하는 사람의 논리다. 이런 점에서 분열된 마음을 봉합하는 처치라 할 수 있다.
문득 지나간 인연들에 대한 부정적 기억보다는 긍정적 기억이 훨씬 많다는 사실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이 들어 몇자 적는다는 것이 이렇게 요지가 없는 글로 이어졌다. good과 bad가 공존하는 세상 속에서, 분열된 마음보다는 good과 bad를 통합하려는 사랑의 마음이 늘 우세하길 바라며 급하게 마무리 짓는다.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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