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은, 설사 오성이 자립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하더라도, 지도권을 쥐고 있는 포괄자다. 신앙이란 한 가지의 정해진 신앙, 즉 교조가 아니다 (...) 신앙은 인간의 밑바탕에서 충족을 시켜주는 것이고 움직여주는 것이다. 인간은 이 밑바탕 안에서 자기자신을 넘어서서 존재의 근원과 연결되어 있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 862쪽.
정신병리학 공부하다가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야스퍼스가 한 말이다.
그는 의사이기도 했지만 20세기 초의 유명한 철학자이기도 하다. 할쉬베르거는 야스퍼스를 하이데거와 함께 독일 실존철학의 대표자로 분류해 놓고 있다.
"실존적인 인간은, 방황하는 인간에게는 궁극적인 진리가 없다는 것과, 오히려 모든 것을 다 시험해 보아야만 한다는 것과, 따라서 절대적인 관용이 인간의 진정한 목표라는 것 등을 언제나 의식하면서, 하나하나의 입장들을 다 연구해야만 한다," 같은 책, 856쪽.
야스퍼스는 딜타이의 영향을 받아 개인의 주관적 경험을 중요시 했지만, 딜타이와 달리 상대주의에 빠지지 않았다.
제일 위에 인용한 문장에서처럼 그가 진리에 다가가는 방법이라고 본 게 신앙이고, 다른 종교에 대한 배척은 도그마, 즉 독단에 빠진 것이라고 규정했던 것 같다.
"이 신앙이나 저 신이 아니라, 신앙하는 것 자체가 본질적인 것이다." 같은 책, 862쪽.
공감하는 부분인데
야스퍼스는 신앙이라는 단어 앞에 철학적인이라는 수식어를 붙이고 있다.
철학적인 신앙이라는 것은 도그마에 매달려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신앙과 달리, 인간 인식의 한계를 알고 그렇기 때문에 경전의 의미를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해석적 신앙이라고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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