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장양의 영혼의 순례길 GV 중. 이 작품 역시 제목만 보고 골랐다. 다큐인 줄 알았는데 픽션이었다. 그런데 울림이 컸다. 영화 속 등장인물들은 1년 동안 2000km에 달하는 거리를 오체투지하며 걷는다. 오체투지라는 건 온 몸으로 엎드렸다 일어나기를 반복하는 절의 형태인데, 서너 걸음쯤 걷고 오체투지하고 또 몇걸음 걷고 다시 오체투지하면서 아주 느리게 고행길을 걸어 나가는 모습에서 울컥이는 게 있었다. 숭고한 어떤 것과 마주하게 될 때 느끼게 되는 감정이었다.
자신을 낮추고 다른 사람을 위하라는 종교적인 태도는 오체투지할 때뿐만이 아니라 협업하여 도로변에 잘 곳을 만들고 그 안에서 함께 식사하고 함께 웃고 함께 기도하고 함께 고통을 나누는 모습에서 분명하게 나타났다. 마치 화성 어딘가에 있는 것만 같은 착각을 일으키는 티벳/네팔 산의 장엄함을 배경으로 인간의 숭고한 의지가 두 시간 동안 펼쳐지니 에고센트릭한 자아로부터 잠깐이나마 벗어나 약간의 희열과 큰 뭉클함을 느낄 수 있었다.
오후에는 지슬을 찍었던 오멸 감독의 작품을 봤다. lsy의 선택이었는데 세월호에 대한 감정과 태도를 드러내는 영화였다. 타르코프스키 영화만큼이나 지루했고, 영화 초반의 상징성이 영화가 진행될수록 깨지는 느낌이었다. 또한 절제되지 못한 분노 및 슬픔의 표출로 인해 공감이 어려웠다. 어떤 상황이나 사안에 대해 나는 5 정도의 감정을 느끼고 상대방은 10 정도의 감정을 느낄 수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10을 느껴야 된다고 강요하는 것 같았다. 상징성을 파괴하는 연출 장치(ex, MB를 상징하는 게 분명해 보이는 쥐 혹은 카메라 움직임 없이 카메라가 학생의 시선을 계속 응시하는 것과 같은)에 담겨 있다고 여겨지는 직접적인 메시지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영화 초반에서처럼 좀 더 해석 가능성을 열어두는 연출이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서울까지 여섯 시간 걸려서 왔다. 다음엔 케티엑스를 탈 생각이다. 힘들었다. 강남 더부스에서 뒤풀이. 각 세 잔씩 먹고 기분 좋게 마무리 했다. 빠른 클릭질로 예매 전쟁에서 살아남아 산하고인 GV를 볼 수 있게 해준 lsy에게 감사의 표시로 맥주를 샀다.
총 경비: 151150원.
맥주값: 55000원
예상대로 20만 원 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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