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데 나는 우리의 어떤 부분이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드는 건지 끝까지 밝혀내지 못했소. 우리가 좋은 건지, 아니면 우리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는 게 좋은 건지. 혹은 우리를 통해 뭔가 깨달을 수 있다는 게 좋은 건지...
체르노빌의 목소리, 초판 4쇄, 246쪽.
나는 역사와 역사적인 시대에 살고 싶지 않아요. 그 시대에 내 작은 생명은 갑자기 보호막을 잃어버려요. 위대한 사건은 작은 생명을 보지도 못하고 짓밟아버려요. 멈추지도 않아요. (생각에 빠진다) 우리 후에는 역사만 남을 거예요. 체르노빌만 남을 거예요. 그런데 내 삶은, 내 사랑은 어떻게 되나요?
297쪽.
이미 수술 전에 저는 제가 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제 살 날이 며칠 안 남았다고... 시한부 인생이라 생각했지만 무서울 정도로 죽기가 싫었습니다. 갑자기 나뭇잎 하나하나, 선명한 꽃, 선명한 하늘, 더 선명한 회색의 아스팔트, 그 위의 금, 그리고 그 사이에서 잠자는 개미가 제 눈에 들어왔습니다. 조심해, 개미를 피해가야 해. 개미가 불쌍했습니다. 개미가 왜 죽어야 하나? 숲의 향기에 머리가 어지러웠습니다. 꽃향기보다 더 짙었습니다. 가벼운 자작나무, 무거운 소나무, 이 모든 것을 못 보게 된다고? 1초라도, 1분이라도 더 살아야 해! 왜 그 많은 시간을, 날들을 텔레비전 앞에서, 신문더미 사이에서 보냈을까? 가장 중요한 것은 삶과 죽음입니다. 그것 외에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저울질할 수 없습니다. 살아 있는 시간만이 의미 있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우리의 살아 있는 시간만이...
308쪽.
그들은 타협하지 않고 원래 살던 대로 살려 했소. 떠나면서 땔감 더미를 들고 가고, 아직 덜 익은 초록색 토마토를 따 병조림을 만들었소. 유리병이 터지면 다시 만들었소. 그렇게 만든 걸 어떻게 제거하고, 묻고, 쓰레기로 만들어버릴 수 있겠소? 그런데 우리가 바로 그런 일을 했소. 그들의 노동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만들고, 그들 삶의 오래된 의미를 삭제했소. 우리는 그들의 적이었소.
316쪽.
부끄러워 말고 질문하세요. 벌써 얼마나 많이 소재로 활용됐는지, 이제 적응했어요. 한 번은 우리 이야기를 써간 기자가 신문기사에 사인까지 해서 보내줬는데, 저는 안 읽었어요. 누가 우리를 이해하겠어요? 우리는 여기서 살아야 하는데...
321쪽.
시한부 인생, 누구에게는 체르노빌이 비유나 구호일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는 그게 삶이에요. 우리 인생이에요.
323쪽.
전쟁을 보여주려면, 사람이 토할 정도로 무섭게 보여줘야 한다. 사람이 아플 정도로. 전쟁은 구경거리가 아니다.
334쪽.
올해가 딱 30주년이라 한다. 아래 체르노빌 관련 한국일보 기획 연재를 링크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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