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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정신병리

[정신과 임상심리전문가의 정신장애 이야기 #25] 정신건강을 바라보는 관점: 증상 감소에서 주관적 경험의 이해로 (part 1)

by 오송인 2019. 1.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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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ychological Wellness: What Has Happened to our Understanding of Mental Health?


어제, 오늘의 영어 공부 교재다.


강연 초반에 DSM 진단 체계를 비판하며 시작하는데 구구절절 공감이 된다.


DSM은 그 시작이 어떠 했든지 간에 현재로서는 인간이 아닌 증상에만 포커스를 맞추는 쓸모 없는 진단 체계로 변질됐다고 본다.


DSM은 심리적 어려움을 몇 가지 정신장애 범주로 나눈 뒤 그 각각의 정신장애에 해당하는 증상들의 집합을 나열하는 데 그친다.


진단을 위한 진단을 이끌어내는 도구이며, 전문가들 사이의 의사소통 편의를 도모한다는 기능적인 측면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외현화된 몇몇 행동과 증상을 토대로 인간의 심리적 어려움을 정의내리려 하는 시도 자체가 어불성설이 아닌가 싶다.


낸시가 DSM을 비판하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체크리스트 따위로 진단을 할 수 있었다면 사실 전문가는 필요치 않다. 그런데 DSM은 체크리스트를 통해 진단하도록 되어 있고 주요우울장애로 진단 받은 개개인 간의 차이를 식별하는 데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심리평가 장면에서 DSM 진단을 쓰지만, 약물치료를 위함이지 환자 개인을 이해하기 위함은 아니다.



어떤 사람이 주요우울장애라고 말하는 것은 그 사람을 이해하는 한 통로일 뿐이지 그게 다는 아닌데, 근거 기반 치료(무선화된 통제 시행을 사용한 연구에서 입증된 치료)를 강조하는 입장에서는 장애가 강조되고 사람은 간과된다.


주요우울장애에는 CBT, PTSD에는 EMDR, 공포증에는 exposure therapy 등등 장애에 특화된 근거 기반 치료들이 개발돼 권고되고 있는데, 어떤 치료가 권고되든 간에 핵심은 '증상을 최대한 빠르게 감소시켜라'이다.


연구를 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증상의 빠른 감소를 연구를 통해 입증하는 자에게 더 많은 돈이 유입되니 장기치료의 성과에 대한 논문은 세상 빛을 보기 힘든 면이 있다.


그런데 연구 논문에서 나타나는 빠른 증상 감소라는 것은 대개 현실과는 동떨어진 실험실 성과일 때가 많다.


낸시가 말하는 것처럼 주요우울장애'만'을 가진 인간은 현실에 없다. 거의 모든 정신과 환자는 공존장애를 지녔다고 보는 게 오히려 더 타당하다. 그런데 논문에서는 공존장애 배제가 참가자 선별의 핵심 기준 중 하나다. 실험 결과를 clear cut하게 뽑아내기 위해서는 공존장애가 있으면 안 된다.


더욱이 같은 단일장애를 지닌 사람이라 하더라도 혼입 변수가 너무 많다. 예를 들어 범불안장애 진단을 받았다고 해보자. 같은 범불안장애라 하더라도 종교가 다르고 자라온 가정 배경이 다르고 인종, 문화적 배경이 다를 수 있다. 성별이 다르고 같은 성이라 하더라도 성적 지향이 다를 수 있다. 심리 내적으로는 애착의 유형이 다르고 자존감을 유지하는 방식도 다르고 방어기제도 다를 수 있다. 즉각적으로 떠올려봐도 이렇게 많은 혼입 변수가 있는데 그 치료가 그 장애를 지닌 사람에게 동일하게 빠른 효과가 있다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서로 다른 정신장애를 지닌 두 사람이 같은 정신장애를 지닌 두 사람에 비해 더 비슷한 측면이 많을 수도 있다.


요는 연구 논문에서 나타나는 어떤 치료의 빠른 증상 감소라는 것은 현실에서는 가능하지 않은 일일 때가 많다는 것이고, 모든 이에게 동일하게 적용할 수 있는 근거 기반 치료라는 것이 내가 생각하기에 허상에 가깝다는 것이다. 인지행동 치료가 다양한 장애에서 그 효능을 입증해 왔지만, 나는 사실 이런 결과가 인지행동 치료 때문일까 의심스러울 때가 많다. 인지행동 치료에서 사용하는 개념이나 기법들이 심리치료에서 분명 그 쓸모가 있다 하더라도, 인지행동 치료 자체가 다른 치료 포맷에 비해 효능이 있다기보다 연구 성과로 보여주기에 다른 치료 포맷보다 더 용이한 것은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든다는 것이다.



DSM이라는 진단 자체가 한 인간을 이해하는 데 별 도움이 안 될 뿐만 아니라, 그 진단에 근거하여 진행된 치료 성과 연구라는 것이 불완전한 경우가 많다. 연구라는 것 자체가 어쨌든 복잡한 현실을 단순화시켜야 되는 측면이 있음을 고려하더라도 그렇다.


제약회사의 이해관계 + 보험회사의 이해관계 + DSM에 기반한 단기 치료의 효과를 입증해야 펀딩을 받기 쉬운 연구자(임상가는 아닐 때가 많은)의 이해관계 등이 맞물리며 DSM과 근거 기반 치료의 아성은 한동안은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낸시가 DSM과 근거 기반 치료를 비판한 후에 제시하는 대안적 관점은 증상이 아닌 한 인간을 온전히 보고자 노력한 결과이다.


한 인간의 정신건강을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크게 16가지 정도의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정신분석적 전통에서 인간의 정신건강을 바라보는 틀이라 할 수 있다. 처음 두 가지는 프로이트가 살아 생전에 구두로 제시했다고 한다.


1 일: 단순히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키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 자신보다 더 큰 무언가에 헌신할 수 있는 능력이라고 한다. 이번에 처음 알았다. 예를 들어 다음 세대를 위해 지식을 전수하거나 환경을 보전하거나 하는 일을 의미한다. 무엇이 됐든 간에 내가 생각하기에 다른 사람과 연대할 수 있는 능력을 내포하는 것 같다.


2 사랑: 말 그대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다. 성인과 성인 간에 부모와 자식 간에 등등.


3 놀이: 위니콧이 강조했던 것인데 잘 노는 것도 능력이다. 특히 놀이는 어린 아이들의 말이다. 놀이에는 아이들이 말로 표현하지 않는 모든 생각과 감정과 욕구가 담겨 있게 마련이다. 놀이는 물론 성인의 삶에도 중요하다. 낸시는 놀이가 포유류의 유산이며 놀이가 없는 삶은 deadend life라고 말한다.

Chessick은 성공적인 치료의 결과 중 하나로 창작과 휴식을 통해 얻는 즐거움을 강조하면서, 사랑과 일이라는 Freud학파의 치료목표는 '사랑, 일 그리고 놀이'로 수정되어야 한다고 제안하였다. - 정신분석적 사례이해, 50쪽.


4 애착: 20세기의 가장 유명하고 영향력 있는 심리학자 중 한 명이 존 볼비다(정확히는 정신과 의사다). 그와 그의 영향을 받은 Mary Ainsworth가 말한 애착 유형은 일반인에게도 소개가 많이 돼 있지만 그것을 깊이 있게 알려면 1년 간의 집중적인 공부도 모자랄 것이다. 한 사람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변수가 아마 애착이 아닐까 싶은데, 애착 유형은 생애 초기에 결정되지만 설령 안정 애착을 형성하지 못 하였더라도, 낸시 말에 따르면 안정 애착을 지닌 배우자와 5년 동안 함께 사는 것 혹은 2년 동안 심리치료를 받는 것에 의해 변화될 수 있다. 안정 애착이 중요한 것은 세상과 타인이 대체로 믿을 만한 존재라는 내적인 지각(basic trust)이 없을 때 다른 사람과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어려울 수 있고, 다른 사람과의 너무 먼 거리를 유지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너무 과하게 의존하거나 그 둘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불안정한 모습을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인관계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삶이 괴로워진다.

심리치료는 의존적인 사람을 독립적으로 만들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의존성을 적절하게 다룰 수 있게 한다. - 같은 책, 51쪽.


5 자율성(agency 혹은 self-efficacy): 자율성은 어떤 일을 스스로 성취해낼 수 있다는 데 대한 믿음이다. 좀 더 근사하게 말하면 목표와 가치에 따라 스스로의 행동을 조절할 수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지각하는 정도이다. 이 부분은 잘 안 들려서 낸시가 뭐라고 말하는지 이해를 못 했다.

정신분석적 사례이해에서는 agency를 자율성이 아니라 주체의식으로 번역해 놓았다.

치료 후 무엇을 얻었다고 생각하는지에 대해 내담자에게 질문하면 주체의식의 향상과 관련된 답을 종종 한다. "내 감정을 신뢰하고 죄책감을 덜 느끼며 사는 법을 배웠어요." "나의 순종적 경향성을 이용하려는 사람들에게 한계를 분명하게 제시할 수 있게 되었어요." "느끼는 바를 얘기해서 다른 사람들이 내가 원하는 걸 알 수 있게 하는 법을 배웠어요." "날 꼼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던 내 양면감정을 해결했어요." "중독에서부터 벗어날 수 있게 되었어요." 등이 이에 해당되는 일반적 언급들이다. - 같은 책, p. 39


6 대상항상성: 안정 애착과도 연관될 수 있는 개념이다. 상대의 좋은 면과 안 좋은 면을 포괄적이고 통합적으로 지각할 수 있는 능력이다. 예를 들어, 엄마가 어쩔 때는 너무 밉고 아빠한테 왜 저렇게 지고 사나 싶어 울화통이 터지면서 난 엄마처럼은 안 살 거야,라고 다짐하게 되다가도, 그런 엄마가 안쓰럽고 엄마가 나를 보살펴 주었던 어릴 때 따뜻한 기억들이 떠오르면서 우리 엄마 좋은 사람이라고 느낄 수 있는 능력이다. 거두절미하고 엄마는 좋은 사람이죠 라고 말하는 경우에는 오히려 대상항상성이 형성돼 있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 두 경우에는 대인관계가 불안정해지기 쉽다. 대상항상성은 대상에 따라 생기기도 하고 없어지기도 하고 그런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 전반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성격 특성이다.


6-1 통합된 자기 정체감: 타인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고 그것들을 따뜻한 느낌 안에 통합할 수 있는 능력은 자기에 대한 통합된 정체감을 유지할 수 있는 능력이기도 하다. 보통 자기를 보는 시선과 타인을 보는 시선은 맥락을 같이 한다. 타인을 온전히 볼 수 없는 사람은 자기도 온전히 보기가 어렵다. 이게 심해지면 해리나 정신병적 증상 등이 발생한다. 해리성 기억상실이나 피해사고 등은 통합된 자기 정체감을 유지하지 못 한 결과로 볼 수도 있다.

-> 낸시는 통합된 정체감으로 표현하고 있지만 정신분석적 사레이해에서는 정체감과 자기통합성이 따로 다뤄진다. 문맥상 자기통합성이 맞는 것 같고, 이어지는 자아강도와도 관련 있다.

사람들은 파편화나 소멸을 내적으로 경험하지 않고 삶의 여러 어려운 문제들에 직면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한다. 또한 치료 후에는 성장을 위해 일시적으로 퇴행되고 불안정하게 되는 상태를 인내할 수 있게 되기를, Epstein의 용어를 빌자면 "무너지되 산산조각으로 흩어지지 않는" 요령을 개발하기를 바란다. - 같은 책, p. 48.


7 자아강도: 자아강도는 요즘 유행하는 심리학 용어로 말하면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다. 역경에 처해서도 상황을 보다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애쓸 수 있는 힘이라고 해야 될까. 예를 들어, 같은 외상적 사건을 경험하더라도 어떤 사람은 PTSD로 진단되고 어떤 사람은 잘 살아가는 것은 자아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자아강도 역시 생애 초기 환경이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는데 좋은 환경에 놓였던 사람은 면역 체계(?)가 잘 형성돼 훗날 발생하는 외상적 사건에도 심대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낮아진다.


8 현실적인 자존감: 자야 될 시간인지라 여기부터는 다음에.


2019.01.29 최종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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