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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상담 및 심리치료

정서중심치료(emotionally focused therapy)

by 오송인 2019. 3. 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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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상을 과도하게 단순화시킴으로써 얻는 이득과 손실이 있습니다. 일례로, 현상을 바라보는 의식적 관점(즉, 사고)에 따라 감정이 여러 모양과 색깔로 변할 수 있다고 보는 주장을 들 수 있습니다. 이는 명쾌한 만큼 실제와 거리가 멀다고 생각합니다. 그린버그가 쓴 심리치료에서 정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4장에서 모호하게나마 그 근거를 찾은 것 같아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이 책은 간명하게 씌인 책은 아닙니다. 무슨 소리하는 것인지 알기 어려운 모호한 설명도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부분은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여기에 정서 지향적 치료가 추구하는 함축적 의미가 담겨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이 비합리적이거나 비논리적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반응을 통제하거나 멈추지 못한다. 따라서 치료적 개입은 잘못된 생각을 논박하고 교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반응을 유발하는 의미 구조나 정서적 네트워크에 접근하여 이를 벗겨 내는 데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 회기 내에 몸이 느끼는 정서적 경험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안전하고 지지적인 치료적 관계 속에서 이런 작업들이 이루어질 때, 새로운 정보에 접근할 수 있으며 이전의 잘못된 정서적 네트워크를 수정할 수 있다. 101쪽.


저자가 말하고 있듯이 의식적 사고가 정서에 영향을 미치고 정서가 다시 의식적 사고에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가 않고(이것이 틀렸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러한 단순화는 현상을 이해하는 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사실 사고가 감정을 유발한다거나 감정이 사고를 유발한다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한 단선적 가설이다. 우리는 다층적 수준의 정보처리 과정, 즉 사고와 감정의 복잡한 상호작용뿐만 아니라 감각적, 명제적, 심상적 수준의 정보들을 모두 고려할 필요가 있다. 100쪽.


명제적 수준의 정보라는 것이 어떤 것을 말하는지 모호하지만(의식화된 사고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만) 최소한 심상은 명확합니다. 저자는 감각적 정보와 심상적 수준의 정보를 분리해 놓았지만 심상에는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이 모두 포함됩니다. Horowitz는 심상을 '감각적 특성을 지닌 정신적 내용'으로 정의한바 있습니다. 더 따지고 들어가면 머리 아프니 요지만 말씀드리면, 무의식을 포함하는 우리의 주관적 경험은 언어보다 이런 심상의 영향이 더 커 보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냄새를 맡고 불현듯 어릴 때 좋아하던 장소가 떠오를 수 있습니다. 그 때의 감정도 수반되기 마련이죠. 후각적 심상이 평소에는 잊고 살았던 어떤 자서전적 기억(autobiographical memory)을 의식으로 꺼내옵니다. 심상은 시각이나 청각처럼 단일한 자극 형태일 수 있지만 대개 복합적입니다. 심상은 복합적인 감각 형태로 나타나며 최종적으로 의미와 감정이 수반됨으로써 사고와 행위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이런 개념이 중요한 것은 심리치료에서 정서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심리치료에서 심상을 어떻게 다룰 것인가 라는 문제와 같기 때문입니다. 이건 제 생각이고 저자가 책의 내용을 어떻게 끌고 갈지는 더 읽어봐야 알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개인이 지닌 어떤 반복되는 심상이 있다면 그것이 그 개인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통로가 될 수 있음을 몇몇 치료 경험에서 배운바 있기 때문에 그 이야기를 좀 해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반복되는 심상은 자서전적인 기억에 맞닿아 있고 개인 삶의 중요한 의미와 감정이 실려 있을 때가 많습니다. 한 사례를 좀 각색하여 말하자면, 어떤 내담자는 발에 무거운 무언가가 달려 있어서 뛰고 싶지만 뛸 수가 없는데다가 가도가도 원점으로 돌아오는 심상을 제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폭력적이고 보기만 해도 무서운 아버지가 매사 자신의 의견을 묵살하는 탓에 뭐 하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없고 아버지가 바뀌어야 자신의 삶이 변화될 수 있다고 굳게 믿는 내담자였습니다. 내담자의 호소와 심상 사이의 연관이 있다고 여겼고 중요한 심상이라고 여겨서 더 탐색했더니 가도가도 원점으로 돌아오는 데 대한 분노가 치민다고 표현합니다. 내담자의 얘기를 더 탐색하다 보니 돌덩이가 바로 분노의 상징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치료 목표는 자연스레 이 분노를 탐색하고 내담자가 중시 여기는 어떤 욕구가 좌절되었기에 이런 분노가 발생하는 것인지에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정동적 목표나 욕구는 정서가 왜, 어떻게 발생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최종 참조 지점이다. 그런 면에서 치료적 주의가 필요한 것은 잘못된 평가가 아니라 충족되지 못한 목표나 욕구에 대한 우리의 반응이다. 115쪽.


이런 사례개념화를 치료적으로 활용해 보기 전에 내담자가 상담에 오지 않는 조기종결이 발생했습니다. 제가 만나본 아버지는 내담자가 말한 것과는 정반대에 가까운, 폭력과는 거리가 멀어보이는 왜소한 체형의 평범한 인상이었습니다. 무뚝뚝한 표정 사이로 연약함과 따뜻함이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부모의 때이른 죽음이나 방임, 학대 등의 경우처럼 친밀감에 대한 좌절된 욕구를 회복하는 것이 어렵고, 상실한 기본적 욕구에 관해 충분히 슬퍼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중요할 때가 많습니다. 잃어버린 것, 다시는 돌려 받을 수 없는 중요한 무언가에 대한 애도가 상담의 주요한 주제 중 하나죠. 하지만 이 사례의 경우 부가 내담자에게 애정이 있다고 느꼈고 변화의지도 있었기 때문에 상담이 계속 진행되었다면 부모와의 관계에서 느꼈던 불안전감을 안전감으로 재경험할 수 있는 직접적 기회가 있었을 것입니다.


반복되는 심상에는 연관되는 유아기, 유년기, 청소년기 기억이 있을 때가 많은데 이런 기억들이 내담자의 핵심적인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이죠. 거기에는 자기를 바라보는 스스로의 관점이나 자신에 대해 느끼는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제가 아마 치료를 계속 했더라면 불안전감을 안전감으로 변화시키기 위해서 이런 기억을 다루었을 것입니다. 이 책의 후반부를 슬쩍 보니 그런 내용들이 있네요. 즉 핵심 정서 기억에 다가가기 -> 그 기억을 머릿 속에 떠올리며 현재시점으로 경험할 수 있게 돕기. 즉 경험을 촉발시키기 -> 경험에서 야기되는 감정을 충분히 경험하게 하기 -> 경험에 대한 통제감을 획득할 수 있게 도움으로써 불안전감을 안전감으로 변화시키기 입니다.(9장 참고했습니다.)


정서중심치료에서는 단순히 사고를 변화시키는 것이 아니라 사고와 감정을 수반하는 심상과 그 심상에 연관되는 핵심 기억을 활용하여 '정서도식'을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정서도식의 변화가 교정적 정서 경험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죠. 표현만 다를 뿐이지 다양한 치료적 지향의 공통되는 목표라 할 만한 게 있다면 교정적인 정서 경험을 제공하는 것입니다. 심상을 활용한 인지치료든 정서중심치료든 대인과정접근이든 단기 정신역동적 심리치료든 간에 이름만 다를 뿐 결국 같은 것을 가리키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정서중심치료에서는 교정적 정서 경험을 통해 정서 도식이 변화되면 부적응적 반응(예. 감정의 과도한 통제, 자기 존재에 대한 비난, 우울증, 공황 발작, 해리 등등)이 나타날 여지가 줄어든다고 봅니다. 정서도식이 변화되었다는 것은 인생의 중요한 타인과의 관계에서 자신의 욕구가 무엇인지 이 욕구를 어떤 식으로 충족시킬 수 있을지 혹은 욕구 자체를 철회할 것인지를 자각하고 스스로 다루었음을 의미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러한 자기효능감의 증가가 정서 도식 변화의 주요한 성과이며 부적응적 반응을 예방하는 요인일 것입니다.


덧. 이하 정서도식에 관한 저자의 설명 발췌해 옵니다. 여전히 정서도식이 무엇인지는 아리송합니다.


정서 지향적 접근에서는 정서적 경험과 그 의미 기제를 유발하는 기본적인 심리적 단위를 '정서 도식(emotion scheme)'라고 부른다. 도식은 일련의 조직화 원리를 의미하며, 개인이 선천적으로 갖고 태어난 반응 레퍼토리와 과거 경험에 의해 구성된다. 이런 도식은 현재 내담자가 처한 상황과 상호작용하며, 나아가 현재 경험을 유발하기도 한다. 도식은 매우 개인적이며 독특하다. 도식에는 각 개인의 삶의 경험으로부터 우러나온 고유한 정서적 기억, 희망, 기대, 두려움 그리고 지식들이 적재되어 있다.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개인적 도식 혹은 정서 도식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정서 도식이 오로지 정서에만 기반하는 것은 아니다. 정서 도식에는 주관적으로 지각된 의미, 자신과 세계에 대한 통합된 감각을 제공하는 정동, 인지, 동기 그리고 행위가 복합적으로 포함되어 있다.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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