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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일상

딸과 문센 나들이

by 오송인 2019. 3.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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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 간의 상담을 마무리 하고 맞는 첫 토요일. 딸을 데리고 문센을 갔다. 와이프의 엄명으로 이제 토요일 오전은 딸과 문센 가는 날이 됐다. 문센이 무엇인가. 아기 키우는 부모들이라면 익숙한 말로 문화센터의 줄임말이다. 문화센터에서 한 번에 만 원 정도 비용을 받고 유아들을 위한 수업을 개설해 놓는데 가성비가 좋고 아이들도 대체로 좋아하는 다양한 수업을 선택해서 들을 수 있다.


그 동안 상담한다고 토요일마다 집에 소홀했는데 이렇게 해서라도 가족에 시간을 제대로 쏟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 흔쾌히 엄명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가고 싶은 마음 이면에는 인생사가 늘 그렇듯 가기 싫은 마음도 존재했다. 나는 오전 11시 시작으로 와이프에게 들었는데, 토요일 9:30에 실컫 늦잠 자고 일어나 보니 와이프가 10시였다면서 딸에게 급하게 밥을 먹이기 시작한다.


딸은 밥 한 숟가락 먹고 해야 할 일이 많다. 이것저것 장난감 구경도 하고 매트 위를 뛰어다니기도 하고 자기 할 것 다 할 때쯤 엄마가 먹여주는 밥 한 숟가락을 더 입에 넣는다. 옷 입는 것도 비슷해서 기저귀 입고 거실을 좀 뛰어다니다가 다시 윗도리 입고 또 무언가를 가지고 놀다가 아랫도리 입고 세월아 네월아 시간을 보낸다.


어른 눈에는 세월아 네월아지만 순간순간을 사는 아이에게 미래는 별로 중요하지 않을 수 있겠다. 늦는다는 개념이 없으니 뭐라 할 수도 없고 젤리곰(=하리보) 같은 것으로 부모가 바라는 행동을 하게 만드는 게 최선이다.


이 날 따라 아이가 더 순간순간에 몰입한 나머지 엄마 말을 잘 듣지 않아 엄마의 스트레스 게이지가 상승한다. 엄마의 스트레스 게이지가 상승하면 긴장하는 것은 아이가 아니라 아빠다. 언제 불똥이 튈지 모르니 가급적 와이프 명령을 잘 따르는 것이 신상에 좋다. ㅎ 그렇게 극적으로 30분만에 집을 나섰고 지하철을 타고 문센에 도착하니 20분 정도 지각이다. 나는 아예 수업을 못 들을 것이라 예상했는데 이 정도면 선방이라 생각하며 쭈뼛쭈뼛 다른 엄마-아가들 틈을 파고든다. 와이프가 첫 날이라고 따라 왔지만 밖에 있는다. 다음 주부터 와이프는 오지 않을 것이다.


들어서니 찰흙처럼 잘 뭉쳐지는 모래로 놀이터를 만드는 촉감 놀이가 진행 중이었다. 딸은 다른 아이들이 어떻게 하는지 한참 지켜본다. 딸이 모래를 비롯한 놀이도구에 조심스러운 모습을 보이자 강사 선생님이 딸 가까이 와서 도레미파솔'라' 정도의 목소리 톤으로 놀이도구를 어떻게 가지고 노는 것인지 눈앞에서 시연한다. 그 모습을 보고 나서야 딸은 조금 더 놀이도구에 흥미를 보이기 시작했다.


아빠도 이런 자리가 처음이다 보니, 또 다른 엄마들 틈에 있다 보니 좀 어색했고, 그 느낌을 가뜩이나 매사 조심스러운 딸이 그대로 전달 받은 것은 아닌가 싶다. 강사 선생님의 노력으로 아빠도 한층 릴렉스가 됐고 딸과 같이 놀아보자 싶을 무렵 수업이 끝났다. 아쉬웠지만 딸이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딸은 수업 끝나고 손등과 발등에 받은 도장을 보며 즐거운 표정으로 박수를 쳐댔다. 아빠도 같이 박수쳤다.


이 날 아웃백에 가서 점심 먹고, 집에 와서 다 같이 낮잠 잔 다음에 오후 늦게 딸이 좋아하는 놀이터를 가기도 했다. 집에서 놀아주는 것보다 밖에서 이렇게 함께 활동할 때 아이와 아빠 모두 더 즐거움을 느낀다. 와이프는 아직도 내가 아빠라기보다 아들 같다며 핀잔 줄 때가 많다. 나도 완전히 아니라고는 말하지 못 한다. 밖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다 보니 집에서는 정신줄을 좀 놓고 퇴행하는 때가 많다. ;


딸과 함께 노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보다 '아빠'에 가까워지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늘 배우는 바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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