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련생이 자신이 새로 맡은 환자의 가족력, 사회력, 발달력, 정신과 병력 등을 자세히 발표하는 집담회나 사례회의에 수도 없이 참석했다. 이렇게 발표하는 데 보통 40분 정도 걸린다. 여기에 간략한 역동적 사례개념화를 포함시켜 DSM-IV 진단을 내리는 데 추가로 10분 정도가 더 든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방을 줄지어 나갈 때, 절망한 수련생은 애처로운 목소리로 묻는다,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는 사례개념화로부터 치료 목표를 도출하거나 치료 과정의 전개를 예측할 줄 모른다. 그가 제시한 사례개념화는 그저 형식적 절차에 불과하고 치료 결과를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파악하는 데는 아무 도움도 주지 못한다. 이에 비해 TLDP의 사례개념화는 치료자에게 목표 설정과 치료 전개의 양상에 관한 정보를 주도록 구성되어 있다. - 단기 역동적 심리치료, 226-27쪽.
"그런데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요?" 수련생의 절박한 심정이 느껴지는 한마디다. 세부적인 정보를 모으는 데 열중할수록 전체 상을 그리는 것이 더 어렵게 느껴지는 강박적 성향의 치료자들이라면 수련생의 저 한마디가 꽤나 공감이 될 것이다.
다양한 치료 이론 및 그에 상응하는 사례개념화 방식이 있지만 TLDP 사례개념화 방식만큼 상식적인 수준에서 이해할 수 있고 사용하기에도 용이한 사례개념화 방식은 드물어 보인다. TLDP를 공부하면서 첫 회기에 사례개념화하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알게 됐다. 대인관계 패턴을 변화시키는 데 있어 사실 그리 많은 정보가 필요하지 않다. 내담자가 첫 회기에 보이는 반응, 상담자의 역전이, 첫 회기 내담자-상담자 상호작용 양상이 내담자 삶에서 전반적으로 발생하는 것인지를 검증하는 작업, 앞으로 펼쳐질 전이-역전이 패턴을 예측하는 작업 등이 합쳐져서 내담자의 핵심 역동을 드러낸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내담자의 가족력, 개인력, 병력 등에 관해 더 많이 알게 될 것이고 중요한 정보가 나옴으로써 사례개념화의 수정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을 테지만, 어쨌든 무료 상담이든 유료 상담이든 상담 첫 회기부터 사례개념화 하는 게 중요하고, TLDP에서 사용하는 CMP 사례개념화 틀은 이를 가능케 하는 훌륭한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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