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코패스에 관한 이야기로 시작해서 이타주의로 마무리되는 책입니다. 사이코패스를 편도체 기능 이상에 따른 발달장애로 기술하는 것은 아마 이 사람이 처음 아닐까 싶습니다. fMRI를 통해서 사이코패스 특성을 보이는 청소년들의 뇌를 통제집단과 비교하는 연구를 2년에 걸쳐서 한 것 같고, 그 이전에는 이런 연구를 한 사람이 없었던 것 같다는 점에서 해당 분야의 선구자가 아닐까 싶습니다.
책의 내용은 비교적 간단합니다. 사이코패스는 여러 자극들 중에서도 두려움과 관련된 얼굴 표정을 지각할 때 편도체가 제대로 반응하지 않는다는 점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는 것이죠. 적록색맹에 비유하고 있는데 적록색맹이 빨간색 녹색 구분을 못 하듯이 두려운 표정을 보고도 그것이 두려운 표정인지 알 수 없고, 타인의 두려움에 공감하지 못 하는 특성이 어린 시절부터 지속되는 것이 저자가 선행적 공격성이라 부른 것과 관련 있다는 것입니다.
선행적 공격성은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대한 반응으로 나오는 반응적 공격성과 달리, 이를 테면 "강간하고 죽일 수 있는 취약한 여자들을 찾아내는 냉정하고 목표 지향적인 공격성"입니다. 타인이 느낄 두려움을 공감하지 못 하기 때문에 어릴 때는 그저 칼로 엄마 다리를 살짝 찔러보는 정도(?!)에 그치다가 성인이 되어서는 끔찍한 방법으로 타해를 하는 수준에 이르게 되는 것이죠. 한 연구에 따르면 "지속적인 선행적 공격성의 경우 유전적 영향이 85퍼센트"입니다.
저자는 지속적인 선행적 공격성을 유발하는 원인으로서 유전에 따른 편도체 기능 이상을 꼽고 있지만 어떤 발달적 경로를 통해 그렇게 되는 것인지는 설명하지 않습니다. 이 책의 포커스가 5장의 제목처럼 "무엇이 이타주의자를 만드는가?"인 것과 무관하지 않아 보입니다. 이타주의자 중에서도 생면부지의 사람에게 신장을 기증한 '비범한 이타주의자'를 표본으로 하는 연구의 가설은 이들이 사이코패스의 대척점에 있다는 것입니다. 결과는 예측한 대로 나온 것 같습니다. 비범한 이타주의자는 대조군보다 두려운 얼굴 표정을 더 잘 인식했고 두려운 얼굴 표정을 볼 때 편도체 활성화가 대조군에 비해 더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심지어 대조군에 비해 오른쪽 편도체가 8퍼센트 정도 더 컸습니다.
이런 뇌 구조 및 기능상의 차이가 사이코패스와 비범한 이타주의자를 구분하는 가늠자 같은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진화론적 관점에서 포유류의 양육본능을 이타주의와 연관짓습니다. 영장류를 비롯한 포유류는 새끼를 볼 때 옥시토신이 분비되고 이것이 새끼를 돌보고자 하는 '접근 행동'을 촉진합니다. 저자는 이런 양육본능이 두려워 하는 타인의 얼굴을 볼 때(혹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그를 돕고자 하는 접근 행동을 촉진하게 된다고 주장합니다. 두려워 하는 사람이 보이는 특성, 즉 겁먹은 얼굴 표정, 움츠러든 자세, 날카로운 비명과 같은 신호들이 어린 새끼들을 보게 될 때와 같은 돌봄 욕구를 자극한다는 것이죠.
두려움에 관한 신호를 예민하게 캐치하는 편도체를 지닌 사람은 달리 말하면 이런 양육본능이 더 강한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타인에게 이타적으로 행동할 가능성도 높겠죠. 이 책의 핵심입니다.
저자는 환경적인 요인이 이타주의에 미치는 영향도 언급합니다. 저자는 하버드에서 사회심리학으로 박사 학위를 딴 사람인데 사회심리학에서 주로 보는 것이 개인차, 문화비교죠. 이런 전공 특성을 발휘하여 책의 후반부를 이어갑니다. 유전적으로 이타주의에 적합한 뇌를 물려 받았다 하더라도 문화와 같은 환경적 요인이 이타주의의 발현을 증폭하거나 억제할 수 있습니다. 집산주의가 강조되는 문화에서는 내집단 결속이 강한 만큼 외집단 배척 또한 강해 외집단에 대한 이타주의적 행동이 발현되기 어렵게 됩니다. 반면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집산주의 문화에서보다는 비범한 이타주의적 행동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개인주의 문화가 집산주의 문화보다 이기심이 강할 것이라는 고정관념에 반하는 증거를 제시합니다.
개인주의 문화는 부와도 관련 있습니다. "부가 증가하면 개인주의의 가치가 같이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부의 증가는 이타주의적 행동의 좋은 예측치입니다. 정경유착이 심하고 족벌 경영으로 부를 세습해 온 한국의 사정과는 일견 맞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전세계적인 데이터를 놓고 보면 그렇다고 합니다.
저자가 이 두 가지를 언급하는 이유는 시대가 흐르며 부가 증가하고(=절대적 빈곤층이 줄어들고) 사회집단이 개방성을 갖게 되는 추세가 이타주의의 확산과 관계가 있다는 점을 말하기 위함입니다. 이 책의 포커스가 이타주의에 맞춰져 있듯이 저자는 사람들이 이기적이라기보다 이타적인 경향을 보이기 쉽다고 보는 것 같습니다. '죄수의 딜레마' 같은 실험 패러다임을 언급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가장 유리한 생존 전략은 먼저 선행을 베풀고 상대가 보이는 반응에 따라 행동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타적으로 행동했을 때 타인도 이타적으로 행동할 가능성이 그렇지 않을 가능성보다 높다는 것이죠.
한 개인의 이타심을 키우는 방법으로 자애명상처럼 효과가 검증된 개입을 제시하기도 하면서 책이 마무리되고 있습니다. 평범하게 살다가 유전적 요인으로 뒤늦게 편도체 기능 이상이 찾아온 사람은 사이코패스적으로 행동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전처럼 친절하게 행동한다고 말하면서 이타주의를 증진하는 것은 결국 꾸준한 실천에 의해 형성된 습관임을 강조합니다. 하지만 사이코패스를 편도체 기능 이상에 따른 발달장애로 보는 관점은 여전히 유효한 것 같고 이에 대한 의학적 치료가 개발될 날이 언젠가 올 수도 있겠구나 싶어지네요.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