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에 접어든 임상심리학자의 심리치료에 관한 조언에는 그다지 새로울 내용이 없지만 이상하게 읽으면서 코끝이 찡해질 때가 많았습니다. 심리치료자로서의 길을 먼저 걸어간 선배로서의 진심어린 따스한 조언에서 위로를 받습니다.
책 내용과는 별 관계가 없을 수도 있겠으나 이 책을 단숨에 읽어내려 가며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을 두서없이 적습니다.
자기중심성에서 벗어나는 것은 자기가 강물에 흘러가는 낙엽 같은 혹은 우주의 먼지 같은 혹은 바람 앞의 등불 같은 사람이지만 누군가의 사랑을 받을 만큼 괜찮은 사람이기도 하다는 것을 아는 것 아닐까 합니다. 이는 다른 사람 또한 풍요롭고 행복해 보이는 겉모습 이면에 온갖 신경증과 아픔을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한 자각을 갖는 것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선/악을 통합하여 볼 수 없는 사람은 타인도 그렇게 보기가 어렵습니다. 대부분 행복한 만큼 불행하며 악한 만큼 선하다는 것, 그런데 선한 측면이 조금은 더 많다는 것을 알기에 타인에 대해 "기본적으로 괜찮은 사람이다 라는 믿음"을 갖게 될 때, 삶이 조금은 더 편해질 수 있습니다.
대학원 생활 이후 햇수로 10년 동안 심리학에 발 담그며 배운 중요한 삶의 지혜라면 지혜입니다. 저 자신도 스스로의 선/악을 조금 더 포괄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고, 그 과정에서 아집에 가득차고 오만했던 20대 때보다는 주관/객관적으로 한결 '같이 있어 줄 만한 사람'이 됐다고 자평해 봅니다. 특히 와이프가 저를 많이 견디며 같이 살아줍니다. ㅎ
한 인간으로서나 심리상담자의 타이틀로서나 아직도 가야 할 길이 멀고, 특히 초보 부모로서 무능하다고 느낄 때가 많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믿는 정도가 커졌고, 더 커질 것이며, 실제가 어떻든 간에 매일 아침 일어나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을 해나가다 보면 비교적 괜찮은 나만의 이야기가 펼쳐질 것이라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다.
나 자신이 행복해지고 쓸모 있는 존재가 되길 바라는 것처럼, 상담자로서 다른 사람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조금씩 바꿔나가며 행복해지고 쓸모 있는 존재라고 느끼게 되길 바랍니다. 대단한 치료자가 되겠다는 열망은 애초에 없었고 상담 경력 만 2년만에 더 없어졌습니다.;
내가 하루하루 존버하면서 멘탈 부여잡고 살아나가듯이 다른 사람도 그러기를 바라고, 내가 만나는 내담자가 그럴 수 있게 온갖 심리학적 지식과 선배 상담자들의 노하우를 통해 옆에서 조금 거들 뿐입니다.
인상적인 구절 발췌해 봅니다.
"우리 모두의 내면에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존재합니다. 누군가가 시간을 내어 우리가 그 잠재력을 발견하고 꽃피우도록 도와주기만 한다면 말입니다." 73
"저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을 합니다. 내담자들의 문제에 대해 논의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승리를 축하하고 행복한 사건을 기록합니다. 저는 거의 항상 내담자들에게 숙제를 내줍니다. 제가 내주는 가장 기본적인 숙제들은 재미있게 놀기, 좋은 일 하기, 운동하기 등입니다." 75-76
"지속성은 우리 직업에서 과소평가된 자질입니다. 심리치료의 일부는 평범한 일을 꾸준히 하는 것입니다." 77
"성공적인 부동산 투자의 비결이 '입지'라면 우리 일의 비결은 '연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내담자들의 정서, 행동, 생각을 서로 연결시켜야 합니다." 82
"우리가 내담자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 중 하나는 그들에게 일상을 건강하고 규칙적으로 꾸리라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99
"상황이 정말로 절망적일 때는 오히려 문제 외의 다른 것들에 신경을 쓰는 것이 최선일 때가 있습니다." 113
"최소한 우리는 가능할 때마다 몸을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117
"제 결혼생활의 비결은 단 하나입니다. 저는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거울을 들여다보며 스스로에게 말했습니다. '너도 대단한 사람은 아니야'라고 말입니다." 148-49
"때때로 사람들을 재배치하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에너지가 솟아납니다. 내담자들에게 서로 의자를 바꿔 앉고 다른 가족 구성원의 역할을 맡아 서로에게 이야기를 해보라고 권해보세요. 이 간단한 기법은 공감능력을 강화시켜줍니다. 서로를 외계인으로 여길 때가 많은 사춘기 아이들과 그들의 부모에게 이 방법은 특히 효과가 좋습니다." 155
"부모의 역할 안에서 저는 온힘을 다해 최선을 다하지만 다른 어떤 일을 할 때보다 저 자신이 무능하다고 느껴집니다. 게다가 우리 아이들은 우리가 완벽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중략) 어떤 때는 제가 저보다 더 나은 부모들을 '돕고' 있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들이 제 가족을 위해 해주는 조언들을 받아 적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습니다." 160-61
"저에게 부유함이란 성인이 된 우리 아이들을 1년에 몇 번이나 볼 수 있는가의 문제입니다. 당신의 내담자들에게는 가족끼리 저녁식사를 하는 날이 얼마나 되는지일 수도 있고 하루에 몇 번이나 가족과 함께 웃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지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167
"심리상담이나 글쓰기를 할 때 지나치게 열심히 노력한다는 것은 잠을 잘 때나 오르가슴을 느낄 때, 다른 사람한테 호감을 얻고자 할 때 지나치게 열심히 노력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무 효과가 없죠." 188
"저는 우리가 가치중립을 표방할 수도 없고 또 가치중립적이 되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에게는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에 대해 내담자들에게 솔직하게 표현해야 하는 윤리적 의무가 있습니다." 200
"연민은 오로지 냉철한 머리와 함께할 때에만 유용합니다." 201
"심리치료사들은 기본적으로 이야기꾼들입니다. 내담자들에게는 세상을 더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도와주는 이야기들이 필요합니다." 207
"완전한 황무지는 없습니다. 우리는 내담자들이 잔해 가운데에서 숨겨진 보물을 찾도록 도와야 합니다." 209
"저는 항상 엠마가 대화의 마지막 말을 하도록 했습니다. 이는 완고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할 때 매우 중요한 기술입니다. 엠마는 일단 온힘을 다해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고 나면 차분해졌고 방어적인 태도를 거두었습니다." 213
"밤에 잠을 잘 자고 매일 아침 일어나 하루 동안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합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227
"신을 믿든 믿지 않든 기도는 효과가 있습니다. 기도는 단순히 걱정만 하는 것보다 더 적극적인 절차이자 신뢰와 관련된 절차입니다." 231
"제가 어떻게 삶을 망쳐버렸는지 그리고 삶이 어떻게 저를 망쳐버렸는지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럴 때마다 스스로에게 말합니다. '너는 많은 걸 가지고 있어. 아무도 모든 걸 가질 순 없어.'" 239
"하지만 가을의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라는 것. 그리고 앞으로 다가오는 시간은 더 혹독할 수도 있다는 것." 240
"사이사이 즐거운 순간들이 있겠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삶은 힘이 듭니다. (중략) 제가 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힘들고 복잡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242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