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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상담 및 심리치료

해리 스택 설리반과 대인과정 접근

by 오송인 2019. 5.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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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인과정 접근의 창시자라 할 만한 인물은 해리 스택 설리반(Harry Stack Sullivan)이라고 합니다. 1949년에 돌아가신 미국의 정신과 의사입니다. 발달적 고착이라든지 '과거'에 강조점을 두던 프로이트 심리학으로부터 벗어나 내담자가 현재 보이는 행동이나 대인관계에 더 무게를 두었습니다. 또한 공상이나 심리내적 과정에 초점을 맞추기보다 실제 부모-자녀 상호작용이 어땠는지에 관심을 쏟았죠.


설리반이 보기에 성격은 불안을 피하고 자기의 일관성을 유지하려는 체계화된 '대인관계 전략'입니다. 말이 어렵습니다. 예를 들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이가 울 때 부모가 짜증을 내거나 냉담하게 대하는 등 정서적으로 거부하는 반응을 보이면 아이는 자신의 감정 일부를 부인해야 하는 상황에 놓이게 됩니다. 아이에게 부모는 세상 전부인데 세상으로부터 버림 받느니 자기 일부를 포기한다는 것이죠. 이처럼 부인된 자기가 촉발될 만한 상황에 처할 때 불안이 야기됩니다. '사내 자식이 울긴 왜 울어!'와 같은 말을 반복적으로 들으며 자라온 어떤 남성은 슬픔과 같은 부인된 자기를 경험하게 될 것 같은 대인관계 상황에서 불안해집니다.


이 때 굴복하거나 과잉통제하거나 회피하는 대인관계 전략을 취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 1) 자기 진짜 감정은 안중에 없이 울긴 왜 울어!라며 성내는 타인을 기쁘게 만들려 애씁니다. 2) 정반대로 마초나 반사회적 성향을 지닌 사람처럼 인간이라면 누구나 지닐 수 있는 취약성을 감추면서까지 통제력을 과하게 행사하려는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3) 대인관계 자체를 회피하거나 알코올 남용 등을 통해 감정을 회피하는 전략을 취할 수도 있습니다.


부인된 자기 일부를 수용한다는 게 죽음과 같은 공포를 야기할 때가 많습니다. 자기의 일관성을 내려놓는다는 것, 즉 이제껏 쌓아올린 '자기'라는 공고한 성벽을 일부 허문다는 것은 대단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입니다. 따라서 이런 대인관계적 방어 전략을 유지하는 편이 쉽습니다. 그게 아무리 삶을 괴롭게 만든다 하더라도 말이죠. 죽는 것이나 다를 바 없는 공포를 경험하는 것보다야 낫지 않겠습니까.


이런 전략을 우리 모두가 때때로 사용합니다. 다만 모든 상황에 걸쳐 한 가지 전략을 지속적으로 사용할 때 삶이 힘들어집니다.


대인과정 접근은 상황의 차이에 관계없이 일관되게 적용되는 이런 대인관계 전략을 수정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내담자가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에 대해 기대하는 바와는 전혀 다른 경험을 상담자가 제공함으로써 변화가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는 매우 어려운 작업인데, 보통은 내담자의 대인관계 전략에 상담자 또한 동참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입니다.


대인과정 접근은 내담자의 대인관계 전략이 상담실 안에서도 나타날 것이라 가정합니다. 예를 들어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은 상담자에게도 그런 식으로 반응하기 쉽죠. 더욱이 상담자는 내담자와의 상호작용에서 울긴 왜 울어! 라며 성내는 타인의 역할을 부지불식간에 맡게 될 수 있습니다. 그럴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이를 두고 상보적 역전이가 발생했다 합니다. 내담자는 무의식적으로 자신이 다른 사람에게 기대하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이 행동하도록 자극합니다(즉, 투사적 동일시). 상보적 역전이를 잘 다루지 못 하면 상담이 실패하고 조기종결로 이어집니다.


이러한 무의식적 동참을 상담자가 알아차려서 울긴 왜 울어!라고 반응하지 않고 '사내라고 해서 울면 안 되나. 더 울어도 돼요.'라고 말할 때 변화가 시작됩니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타인으로부터 수용 받는 경험은 부인되었던 자기를 내 안에 다시 받아들일 수 있게 하는 중요한 계기일 뿐만 아니라, 모든 상황에 일관되게 적용함으로써 삶을 괴롭게 만든 대인관계 전략을 거리두고 바라볼 수 있게 합니다. 굳이 타인을 기쁘게 하지 않아도 내가 수용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는 것은 자기, 세상, 미래에 대한 신념을 변화시킬 수 있는 강력한 힘이 됩니다.


프로이트는 내담자가 어떻게 해서 이런저런 문제를 갖게 되었는지 해석함으로써 내담자를 치료할 수 있다고 보았지만, 대인과정 접근에서 해석은 그 자체로는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보다 해석을 전하는 상담자-내담자 관계 양상이 중요합니다. 내담자가 상담자와의 관계에서 이해 받고 감정이 수용되는 경험을 반복하며 상담자를 신뢰롭고 안전한 대상으로 보게 되면, 그 때 해석이 쓸모 있어집니다. '부모로부터 인정 받고 관심 받고 사랑 받는 게 중요해서 당신의 일부를 버리고 그들을 기쁘게 해주려 했네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렇고요.'와 같은 말이 피상적인 이해에 그치지 않고 감정적인 울림을 주며 내담자의 대인관계 전략을 변화시키는 촉진제 역할을 합니다. 비로소 성격이 변화되기 시작합니다. 설리반이 강조하려 했던 것은 아마 이런 것 아닐까 합니다.


작년에 하나의학사에서 [해리 스택 설리반의 정신치료 기술]이라는 책이 번역되었던데, 설리반 본인의 저작은 아니지만 한 번 읽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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