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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신경심리

노인 환자 평가 시 일반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사항

by 오송인 2020.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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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있는 셋팅에서는 젊은 환자 비율보다 50대 이상 환자 비율이 더 많습니다. 70-80대 환자를 흔하게 보고, 90대 환자도 드물지 않게 봅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아무래도 신경심리학적인 문제를 틈틈이 공부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70대 이상의 어르신들의 보편적인 경험이라 할 만한 것이 어떤 것일지 심리평가가 끝난 후 한 번쯤 생각해 보는 때가 있습니다. 부모님이나 장인장모께서도 머지 않은 미래에 70대에 접어드실 것이기에 노인 환자분이나 환자 가족께서 들려주는 얘기들이 비교적 현실적이고 생생하게 다가옵니다.


요새는 60대까지는 중년으로 봐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평균 수명이 길어졌습니다. 2050년쯤 되면 전체 인구의 절반 가량이 60대 이상일 것이라는 예측도 어디선가 본 것 같습니다. 초고령화사회로 돌입하는 시점이죠. 이 말은 임상가로서 노인 환자들을 접하는 비율이 평균적으로 지금보다 더 상승할 것이란 얘기의 다름이 아닙니다. 이에 대비를 해야 하며, 아동청소년보다 노인과 관련된 정신건강상의 이슈들에 국가가 돈을 더 들이고 임상가가 투입되는 경우도 더 많아질 것이기에 노년기 정신건강에 대해 지속적으로 공부할 필요가 있습니다. 결국 '젊은' 우리도 늙어가게 마련이고 죽음을 피할 수 없습니다. 미리미리 노화와 죽음을 생각해 보는 것이 현재를 더 풍요롭게 하는 방법이기도 하기에 임상가로서뿐만 아니라 한 개인으로서 이런 부분에 대한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어제 제임스 모리슨이 쓴 First Interview(4판) 17장을 읽다가 노인 환자 면담에서 주의해야 하는 부분들이 유용해 보여서 옮겨온다는 게 서두가 길었습니다. 늘 그렇듯이 제 임상 경험을 조금 섞어서 적어내려갑니다.


1. 노화가 진행될수록 일상생활의 제약 범위가 커지게 마련이지만 늙는다는 것이 단순해진다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말인즉 노인들도 여전히 사랑하고 섹스를 즐기고 술을 남용하고 심지어 자신의 부모를 돌보는 것에 대해 걱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요는, 노인 환자라고 해서 면담에서 탐색의 범위를 축소할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2. 다만 주지하다시피 노화와 처리속도 감소는 밀접한 상관이 있습니다. 반응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젊은이들에 비해 길고 말하는 속도도 다소 느릴 수 있습니다. 더욱이 살아온 시간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인생의 희비가 많았을 가능성을 시사합니다. 젊은이들에 비해 지나온 과거에 관해 할말이 많을 수밖에 없죠. 면담에 거부적이거나 적대적인 노인 환자 분이라 하더라도 그 분이 하는 얘기를 섣불리 끊지 않고 잘 듣다 보면 금세 마음이 누그러지시는 것을 간혹 경험합니다. 이에 가능한 한 충분한 시간을 두어 느린 속도에 발 맞추며 개인력을 듣는 것이 필요합니다. 


Young interviewers should try to accommodate themselves to this slower pace. Speak distinctly, allow more response time, and suggest additional interview sessions if you need them to finish gathering data.(222쪽)


일반적인 건강 상태(당뇨, 고혈압, 수면, 섭식, 알코올 사용, 기분, 기억기능 등)에 관해서도 루틴하게 물어보는 시간을 남겨두는 것이 필요하고요.


3. 직업 상실로 인해 여가 시간이 늘어나지만 이를 어떻게 활용하는지는 환자마다 다릅니다. 하루 일과를 물어보는 것은 딱딱한 검사 장면의 분위기를 부드럽게 만드는 윤활유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에, 일어나서부터 잘 때까지의 대략적인 하루 일과를 묻고, 필요한 경우 특정한 내용을 더 상세히 탐색할 필요가 있습니다. 


4. 또한 한국은 노년층 빈곤율이 OECD 국가 중 상위권을 다투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기 집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라 하더라도 얼마 안 되는 연금으로 살아가는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중시킬 수 있습니다(자가 주택이 없는 경우는 말할 것도 없겠고요.). 경제적 어려움은 건강 문제와 함께 노인층의 주된 걱정거리입니다. 배우자와 이혼이나 사별하여 혼자 살고 있고 자식들과도 소원한 관계인 노인이라면 경제적 어려움이나 건강상의 어려움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음식 살 돈이 없어서 식사를 제 때 하지 못 하거나 돈이 없어서 병원에 가지 못 하는 처참한 경우들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고독사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고독사하는 노인의 대부분이 아마 이런 경우일 것입니다. 이에 노인 환자를 보게 될 때 그의 사회경제적 수준을 가능하면 정확히 가늠하여 그에 따라 세부적인 질문을 달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5. 노인 학대의 가능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노인학대 신고접수율은 국가통계포털 2018년 자료를 보니 인구 1000명당 2%지만 학대가 대부분 가정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매우 축소된 비율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2018년 보건복지부 통계로서 연도별 신고사례 건수와 학대사례 건수를 가져옵니다.





학대가 발생해도 신고가 이뤄지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에 실제 학대사례는 훨씬 더 많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요즘에서야 이런 부분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다소간의 주목을 받기도 하지만 여전히 베일 안에 가려져 있는 부분이 많아 보입니다. 노인학대에는 신체적 및 심리적 학대뿐만 아니라 무시, 착취, 권리 침해가 포함됩니다(보다 상세한 유형 분류는 아래 주석1 참고). 노인학대가 의심이 되는 경우라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노인 학대 가능성을 타진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알기로 병원 직원의 경우 노인 학대를 신고하지 않았을 때 법적인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아래 주석2 참고)


“Are you afraid of anyone at home?”

“Has anyone at home ever harmed you?”

“Has anyone made you do things you didn’t want to do?”(같은 쪽)


6. 끝으로 위에서도 잠시 언급했듯이 노인 환자는 이미 많은 상실(은퇴나 가족, 특히 배우자의 죽음, 친구의 죽음 등)을 거쳐왔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자식들도 다 분가해서 1년에 몇번 보지 못 하는 상황일 수도 있죠. 요즘에는 핸드폰으로 영상통화도 쉽게 하고 인터넵 접속도 어디서나 할 수 있으나 노인들은 이런 기술적 수혜를 누리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이는 노인 환자가 소외되고 고립되어 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부인하거나 질문에 모호하게 대답할 가능성이 있기에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물어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Interviewer: How often do you see members of your family?

Patient: Oh, pretty often.

Interviewer: For example, when did you last see your son? I

understand he lives just across town.

Patient: Well, it’s been about 6 months, actually.(223쪽) 



주석1) 노인학대 유형


신체적 학대

물리적인 힘 또는 도구를 이용하여 노인에게 신체적 혹은 정신적 손상, 고통, 장애 등을 유발 시키는 행위


정서적 학대

비난, 모욕, 위협 등의 언어 및 비언어적 행위를 통하여 노인에게 정서적으로 고통을 유발 시키는 행위


성적 학대

성적 수치심 유발행위(기저귀 교체 시 가림막 미사용 등) 및 성폭력(성희롱, 성추행, 강간) 등의 노인의 의사에 반하여 강제적으로 행하는 모든 성적행위


경제적 학대

노인의 의사에 반(反)하여 노인으로부터 재산 또는 권리를 빼앗는 행위로서 경제적 착취, 노인 재산에 관한 법률 권리 위반, 경제적 권리와 관련된 의사 결정에서의 통제 등을 하는 행위


방임

부양의무자로서의 책임이나 의무를 거부, 불이행 혹은 포기하여 노인의 의 식주 및 의료를 적절하게 제공하지 않는 행위(필요한 생활비, 병원비 및 치료, 의식주를 제공하지 않는 행위)


자기방임

노인 스스로가 의식주 제공 및 의료 처치 등의 최소한의 자기보호 관련 행 위를 의도적으로 포기 또는 비의도적으로 관리하지 않아 심신이 위험한 상황이나 사망에 이르게 하는 행위


유기

보호자 또는 부양의무자가 노인을 버리는 행위


중복학대

신체적 학대, 정서적 학대, 성적 학대, 경제적 학대, 방임, 자기방임 유형이 두 가지 이상 복합적으로 발생한 학대 유형


주석 2) 신고의무자

노인학대 신고의무를 가진 자로 의료인 및 의료기관의 장, 방문요양과 돌봄이나 안전확인 등의 서비스 종사자, 노인복지시설종사자 및 노인복지상담원, 장애인복지시설(장애노인)관련 종사자, 가정폭력 관련 종사자, 사회복지전담공무원, 사회복지관, 부랑인 및 노숙인보호시설 관련 종사자, 재가장기요양기관 종사자, 구급대의 대원, 건강가정지원센터 종사자,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종사자, 성폭력피해상담소 및 성폭력피해자보호시설 종사자, 응급구조사, 의료기사, 국민건강보험공단 소속 요양직 직원, 지역보건의료기관의 장과 종사자, 노인복지시설 설치 및 관리 업무 담당 공무원 등의 직군이 포함됨(노인복지법 제39조의6)


ref)

주석 1과 2, 캡처한 표1과 2는 모두 보건복지부에서 2019년 6월에 발간된 2018 노인학대 현황보고서 가이드북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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