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료자의 성격이 심리치료에서 실질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정도는 30%라고 합니다. 관련 연구 내용을 자세히 보지 않았기 때문에 이 수치를 액면 그대로 믿기는 어렵지만, 상식적인 수준에서 생각해 보아도 심리치료 결과에 미치는 다양한 변인 중에서 치료자 성격이 차지하는 비중이 50% 이상일 것이라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30%도 약간 과대 추정됐다고 보고요.
그럼에도 치료자의 영향력이 1%든 30%든 간에 작은 영향력이 훗날 큰 파급력을 일으킬 수 있기에 하루도 공부를 소홀히 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어려움에 처한 다른 사람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나 치료윤리적으로 공부를 계속 할 수밖에 없고, 실제로 심리치료를 진행하면서 어려움에 봉착하여 보다 베테랑 심리치료자에게 문제에 관한 조언을 구하기도 합니다.
이런 노력들이 심리치료자로 성장하는 과정에서 매우 중요하지만, 그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치료자로서 자기 영향력의 한계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낸시 맥윌리암스가 정신분석적 사례이해라는 책에서 잘 설명해 놓았듯이 치료자가 내담자와 함께 변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 있고, 변화되기 어렵기에 상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노력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인간이 경험하는 문제 중에는 변화 불가한 것이 있습니다. 극단적으로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 죽습니다. 이런 실존적인 문제에는 변화가 아니라 수용이 필요합니다.
치료자가 경계해야 하는 것은 변화가 가능하지 않은 어떤 문제들에 관해서조차 너무나 애를 쓰며 내담자와 함께 그것을 변화시키고자 애쓰는 것입니다. 이것은 누구를 위한 노력인지 생각해 봐야 합니다.
Our professional self-esteem is being perpetually renegotiated and may vary with the quality of our most recent session. This becomes a hindrance when we blur our own narcissistic needs with the therapeutic needs of the patient. - Mindfulness and Psychotherapy, 67쪽.
심리평가나 심리치료에 초보일수록 환자나 내담자에 대한 자신의 영향력을 과대평가하기 쉽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전문가로서 시야가 좁고 경험도 적다 보니 보다 넓은 관점에서 '돌아가는 상황'을 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잘해내야 한다'는 압박감을 누구나 받게 됩니다. 기계를 고치는 것에도 크게 마음을 쓰게 마련인데 하물며 사람의 마음을 다루는 직업에서 이러한 압박감은 훌륭한 덕목이기도 합니다. 다만, 그 압박감이 너무 심해져서 치료자인 '나 때문에' 내담자나 환자의 문제가 더 악화되는 것처럼 보일 때는 위에 인용한 문장에서처럼 심리평가자로서 혹은 심리치료자로서의 잘난 내 모습에 너무 빠져들었기 때문 아닌지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합니다. 치료자로서의 이상적인 내 모습이 일을 잘해내게 만드는 동기가 되기도 하지만 그 모습에 나르시시스트처럼 너무 빠져들게 되면 그 치료는 내담자나 환자에게 해가 될 수밖에 없겠죠.
심리치료자가 되려 하는 데는 자기애적인 욕구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부인한다면 치료자로서 자기 안의 해결되지 못 한 문제를 환자나 내담자에게 투사하며 치료적으로 악영향을 미치기 쉽고, 치료자로서 겸손해지란 요원한 일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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