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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서평

미움받을 용기 / 기시미 이치로, 고가 후미타케

by 오송인 2020.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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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전쯤에 이 책의 열풍이 한 번 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각종 매체에서 집중적으로 조명했던 것 같은데, 마케팅 때문인지 책 내용이 사람들에게 많은 울림을 주었던 것인지 알 수 없지만 이 책 다 읽고 나니 저는 후자의 지분도 상당히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애들 잘 때 틈틈이 봐서 하루만에 다 읽었습니다. 그리 어려운 이야기를 하는 책은 아닙니다. 다만 상식에 배치되는 이야기를 독자가 수긍할 수 있게 논리적으로 전개하기 때문에 지적인 재미의 요소가 있습니다.

 


 

아들러 심리학은 권석만 선생님께서 쓰신 책의 일부 꼭지로 나와 있는 것을 읽은 게 다인지라 잘 모릅니다. 이 책에서 아들러의 원래 논점이 얼마나 뚜렷하게 살아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세상을 바라보는 한 개인의 주관적 경험과 의사결정에서의 결단 있는 선택이 중요하다고 본다는 점에서 인지치료나 실존치료적 측면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엇보다 프로이트의 인과론을 거부하며 목적론을 지향하는 부분이 핵심적이라고 느꼈습니다. 과거의 어떤 일 때문에 내가 이렇게 됐다고 보는 단선적인 시각을 경계해야 한다는 주장인데, 과거가 현재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맞지만 어떤 특정한 사건이 현재의 나를 전부 결정한다고 프로이트가 생각했을 것 같진 않습니다. 저자가 철학하는 사람인데 너무 대중적인 눈높이에 맞춰서 단편적으로 말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거에 무슨 일이 있었든 간에 그 영향력에 매몰될 것인지 아니면 스스로가 가치 있다고 여기는 삶으로 한걸음 나올지는 본인의 선택입니다. 변할지 말지는 결국 스스로가 결정하는 것이며, 저자도 말을 물가에 데려갈 수는 있지만 물을 마시게 할 수는 없다.”라는 격언을 자주 인용합니다.

 

변하지 않겠다는 것도 선택입니다. , 과거의 어떤 대상이나 사건에 현재 내 상태의 책임을 전가하면서 이제까지의 생활양식을 유지하는 것은, 저자에 따르면 그 자체가 하나의 선택일 뿐만 아니라 목적이 있는 선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목적이라는 것이 예를 들어 책임의 회피가 될 수도 있고 타인의 관심을 받는 것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의식적인 프로세스일 때가 많아 본인도 보통은 잘 모릅니다. 어떤 행동, 어떤 삶의 양태가 지속되는 데는 이유가 있다고 본다는 점에서 프로이트와도 통하는 점이 있으나 프로이트와 달리 그 이유를 과거가 아닌 미래에서 찾는다는 점이 차이라면 차이 같습니다.

 


 

인간의 겪는 심리적 어려움은 100% 대인관계 문제에 기인한다는 것 또한 아들러의 이론에 기댄 저자의 주장입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관심과 인정을 얻기 위한 지나친 노력으로 인해 자기와 타인의 적절한 경계가 확립되지 못 하는 것을 문제 삼습니다.

 

경계 확립을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책의 제목에서처럼 미움받을 용기를 갖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이나 감정은 내가 어찌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에도 다른 사람이 나를 좋아하게 만들려고 헛된 시도들을 하는 가운데 정작 자기를 잃어버립니다. 다른 사람이 나의 어떤 측면을 좋아하든 말든 그 부분을 스스로 수용할 수 있다면 이러한 헛된 시도를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 인정받으려는 과도한 노력은 자기수용의 부재에 기인한다는 것이 저자의 지적입니다. 일리가 있는 말이죠. 이에, 자기-타인 경계 확립을 위해서는 자기의 못난 측면들 받아들이기 어려운 측면들조차도 수용하려는 태도가 중요해집니다. 이럴 수 있을 때라야 다른 사람의 기대에 맞춰 살려고 애쓰지 않게 됩니다.

 

이 때부터는 다른 사람이 그걸 원하기 때문에 내가 그것에 맞춘다, 내가 맞췄으니 다른 사람은 내게 관심과 인정을 줘야 된다, 관심과 인정을 주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는 논리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 때문이 아니라 내가 원해서 그것을 선택한 것이고, 그렇기 때문에 예상과는 다른 타인의 반응이 오더라도 억울해 하는 것은 모순됩니다.

 

타인의 반응은 내가 어쩔 수 있는 부분이 아니지만, 타인이 내게 어떻게 반응하든 간에 타인을 신뢰하고자 하는 것은 나의 선택이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타인 반응에 개의치 않고 스스로를 수용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만이 온전한 타인신뢰가 가능한 이유입니다.

 


 

주체적인 선택과 미움받을 용기, 타인신뢰는 맞물려 돌아가는 기어 같은 것이라 어느 하나가 빠져서는 각각이 제대로 기능하기 어렵습니다. 이 책 읽으면서 재미있었던 부분이고요. 아들러 이론에서 이것들이 향하는 최종적인 목적은 사회공헌이라고 합니다.

 

실제적/객관적으로 얼마나 공헌했는지가 중요하다기보다 주관적으로 지각하는 사회기여의 정도가 더 중요하다고 봅니다. 직장인이든 주부든 간에 내가 다른 사람의 안녕에 긍정적인 기여를 하고 있다고 느끼는 정도가 클수록 자기수용의 폭이나 강도도 더 커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다시 더 크고 강한 타인신뢰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선순환이고요.

 

직업의 차원에서 보면, 저는 제 직업의 평균적인 임금 수준이 투자한 시간과 노력과 돈에 비해 별로라고 생각하는 쪽입니다. 하지만 이 직업을 통해서 타인의 안녕에 기여할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에 보람을 느낍니다. 그것이 심리평가나 수퍼비전 등을 통한 간접적인 기여든 심리평가에서 심리치료로 이어지는 보다 직접적인 기여든 간에 말이죠. 더욱이 이 과정을 통해 새롭게 배우고 경험을 쌓아나가는 개인적 향상의 느낌이 좋습니다. 이런 점들은 불충분한 임금을 보상하고, 임상가로서 직업에 긍정적 의미를 부여하여 치료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더욱 정진할 수 있게 만듭니다.

 


 

대학교 4학년 1학기 때까지만 해도 사회에서 내 몫을 다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상당히 괴로운 시간들이었죠. 인간은 사회적인 존재이고,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지 못 했다고 지각할 때 혹은 찾지 못 할 것을 예상할 때 괴로움이 뒤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인간의 심리적 어려움이 100% 대인관계 문제일 수 있다는 견해에 어느 정도는 공감하게 되고요.

 

다만 그 자리를 찾기 위한 과정에서 일종의 단거리 경주처럼 남들이 달려가는 것과 동일한 방향으로 남들보다 더 빨리 가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합니다. 자신의 선택이 아니라 타인의 기대에 맞춰 살게 되면 결국 자기도 잃고 타인도 잃기 쉽습니다. 사회에서 자기 자리를 찾았다 하더라도 그 자리에 대해 회의하기 쉽고요.

 

작고 사소해 보이는 일이라도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일지 생각해 보고, 다른 사람이 뭐라 하든 하루하루를 충실히 그 일에 매진하는 것이 행복해지는 길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며 이 책을 덮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면서 사회에 도움도 되는 일을 찾는 것이 저마다의 핵심 과제일 수 있고, 자기와 타인의 안녕을 위해 그것이 꼭 거창한 일일 필요는 없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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