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임상심리학/심리평가

심리평가 시 환자의 강점을 본다는 것

by 오송인 2020. 6. 4.
반응형

심리평가 보고서가 병리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 환자가 지닌 강점에도 초점을 두고 있다면 그 보고서는 잘 쓴 보고서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강점에 초점을 어떻게 맞춰야 할지 판단이 잘 안 서는 경우가 많죠. 특히나 평가자의 심리치료 경험이 부족할수록 환자나 내담자의 강점을 보기가 어렵습니다. 환자를 장기적으로 만나면서 내가 세웠던 사례개념화를 거듭 수정해 나가는 과정을 통과하지 않고서는 강점을 찾기가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의 심리평가를 통해 최대한 환자가 지닌 강점에도 초점 맞출 수 있으려면 우선 면담 과정에서 환자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디테일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타인에게 공감하기 어려운 것은 그 사람을 피상적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드러난 일부 행동만 보고 부정적인(혹은 긍정적인) 라벨을 붙여버릴 때가 많죠. 이런 인지적인 편향성은 일상적인 것이고 나름의 효율을 지닙니다. 하지만 한 사람을 피상적으로 이해할수록 그 사람을 공감하기 어렵습니다. 공감은 어떤 사람의 구체적인 면면도 함께 고려할 수 있을 때 가능합니다.

 

내가 저 환자가 살아온 환경적 맥락에 놓여 있을 때 저 환자처럼 반응하지 않을 수 있을까? 저 환자처럼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몸도 여기저기 계속 아프고 남들보다 배우는 것도 느려서 지니고 있던 목표들이 번번이 좌절되었을 때 나라면 저 환자처럼 죽으려고 시도하지 않을 재간이 있었을까? 이런 질문들을 많이 합니다.

 

드러난 증상 이면에 이 환자가 살아온 맥락을 가능하면 꼼꼼하게 파악하여 그 맥락에 나를 넣어 보면 환자의 심정이나 환자가 보이는 행동에 조금은 더 공감적인 태도를 취할 수 있습니다. 물론 내가 상상하는 경험이 환자가 실제 경험했던 바와는 다를 수 있다는 사실을 늘 염두에 두는 것이 전문가적인 태도겠지만, 그렇다고 너무 거리를 둘 필요는 없습니다. 때로는 환자가 살아온 이야기 듣다가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는데 평가자의 이런 감정적 경험이 있을 때 오히려 환자의 삶을 더 통합적인 맥락에서 바라보며 보다 정확하게 사례개념화할 수 있습니다.

 

드러난 증상 이면에는 늘 인생 이야기가 있습니다. 환자의 인생 이야기를 가능하면 최대한 디테일하게 파악할 수 있을 때 비로소 공감할 수 있고 보다 통합적으로 사례개념화할 수 있습니다. 환자의 강점을 살린다는 것은 그 강점을 억지로 찾아내는 과정이 아니라 환자를 이해하려고 꼼꼼하게 노력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얻어지는 부산물에 가깝습니다. 통합적이고 공감적인 사례개념화는 명백히 병리적으로 보이는 증상 안에서도 열악한 조건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부림쳐 온 환자의 대처 역사를 보게 됩니다.

 

의료체계 자체가 시간대비 더 많은 환자를 보게끔 의료진을 옥죄는 면이 있고, 이런 조건에서 환자의 강점에 초점 둔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있습니다. 일례로 검사가 줄줄이 이어지는 상황에서 1시간씩 꼼꼼하게 면담한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향점이 어딘지는 알고 있어야 합니다. 환자의 인생 이야기를 통해 증상 안에 내포된 환자의 노력을 보기 어렵다면, 최소한 심리평가의 전 과정에서 미진함이 있었다는 것 정도는 자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미진함을 자각해야 가능한 한 조금 더 꼼꼼하게 면담하고 심리검사 결과가 의미하는 바에 대해서도 더 다각도로 고민해 볼 수 있습니다.

 

임상심리전문가는 이 미진함을 동기로 삼아 늘 임상/상담가로서의 역량 강화에 정진하는 집단임을 말씀드리며 글을 매듭짓습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