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증에 걸린 마음은 기존 정신의학이 몸과 마음의 이분법에 사로잡혀서 뇌에만 몰두하거나 전적으로 마음의 문제에만 몰두하는 데 대한 비판적인 학술서고, 염증이 뇌를 통해서 직접적으로 우울증을 유발할 수 있다는 새로운 견해를 내놓고 있습니다.
몸이 아프니 당연히 우울한 거 아니냐, 거기 다른 이유가 더 필요하느냐 라는 게 상식적인 수준에서의 생각이라면 이 책의 의미는 염증반응이 우울증에 '직접 원인'으로 작용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염증을 감소시키는 약물학적 개입이 우울증 치료의 새로운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새로운 관점을 취한다는 거예요. 흥미롭게 읽었습니다.
치과 치료 후 뚜렷한 우울 증상을 경험한 환자의 사례와 저자 본인의 비슷한 경험이 제시되고 있는데, 저도 이런 환자를 한 번 본 적이 있어서 더 흥미로웠습니다. 우울 증상에 뚜렷하게 연관되는 개인 내외적 스트레스를 찾기 어렵고 정신과 병력도 없던 환자였는데 치과를 갔다가 급작스럽게 우울증상과 수면의 어려움을 경험하며 내원한 경우였습니다. 정말 뭐가 뭔지 잘 모르겠다는 심정이어서 더 기억에 남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심리적인 문제라기보다 치과 치료 후 염증 반응이 뇌에 영향을 미쳐서 우울을 야기했을 가능성도 있겠구나 무릎을 쳤습니다.
다만, 이 저자는 이러한 논리로 모든 우울증을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약장수 같은 태도를 경계하고 있어요. 기존의 항우울제가 개인적 특수성을 무시한 채 우울증을 지닌 모든 환자에게 통용되고 있다면, 염증과 우울증 간의 인과관계에 관한 과학적 토대에 근거하여 앞으로 개발될 항우울제는 우울증을 지닌 사람 중에서도 ‘염증성 우울증’을 지닌 사람을 치료하는 특수성을 지니게 될 거라고 봅니다. 우울증을 지닌 사람이 모두 정상 범위를 넘어서는 염증 반응을 보이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또한 염증성 우울을 지녔다 하더라도 치료적 개입의 포인트가 항염증약에만 국한될 필요가 없고, 염증과 우울의 악순환을 끊어낼 수 있는 다양한 지점에서 개입(ex. 명상을 통한 스트레스 감소)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몸과 마음의 이원론이라는 데카르트적 사고로부터 벗어난 통합적 치료를 강조합니다.
왜 염증이 우울을 촉발할 수 있는지에 관해 진화론적으로 설명하는 부분도 재미있습니다. 염증반응 자체는 진화적으로 생존에 유리한 것이지만 몸의 변화가 사회변화 속도를 따라가지 못 하는 데 따른 문제가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몸은 구석기인데 시대는 22세기를 향해 가고 있으니 몸의 적응이 뒤처지는 데 따른 오작동으로서 염증반응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사바나에서 조상들이 실제 감염과 감염 위험에 맞서 살아남을 수 있게 해주었던 바로 그 유전자들이 수많은 세대를 대물림해 우리에게까지 유전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몸은 사회적 갈등에 반응해 염증을 더 심하게 만들고, 염증에 반응해 우울증을 더 심하게 만드니 우리에게는 명백히 불리한 유전자가 아닐 수 없다.”
우울증처럼 개인 내적으로나 외적으로 이득보다 손실이 더 커 보이는 행동 패턴들도 그것이 유전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는 것을 진화생물학적으로 납득시키는 부분이 개연성 있게 느껴집니다. 아직 과학적으로 입증해야 할 것들이 많음을 저자도 인정하고 있지만요.
저자에 따르면 90년대 프로작 이후로 정신과 약물에 뚜렷한 발전이 없었다고 합니다. 기존의 정신과 약물도 그 메커니즘이 밝혀진 것은 없으니 어쩌면 당연해 보이는 결과이기도 하고요. 앞으로 정신과적 문제를 치료하는 방식이 어떤 식으로 진보하게 될지 궁금하고, 뇌에만 혹은 마음에만 천착하는 그런 구시대적인 방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실마리를 염증과 우울의 인과관계 연구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굉장히 재미있게 읽었어요. 강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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