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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일상

치과 진료

by 오송인 2020. 1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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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방문자 수가 점점 늘어나다 보니 이전처럼 아무말이나 쓸 수 없는 공간이 되었다는 애석함이 큽니다.

 

배운 티내고 점잔 떠느라 블로그가 좀 재미가 없어졌습니다. 정보 얻고 1분만에 나가는 그런 블로그가 된 것 같아서 이 블로그의 정체성은 무엇인가 다시 고민을 하게 됩니다.

 

오늘은 좀 사적인 얘기를 간만에 적어볼까 합니다. 마침 애들도 자고 와이프도 자고 온전히 글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네요.

 

 

 

10월부터 지금까지 우리 부부 치과 치료비로 400만 원 정도 들어갔고, 앞으로 100만 원쯤 더 들 예정입니다.

 

할부 결재를 해도 한 달 빠듯한 살림살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지라 여러모로 압박감(&불쾌감)이 있습니다.

 

치과가 무서운 것은 통증 때문이 아니라 돈 때문이고 돈이 무서워서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더 큰 돈이 들어가니 역시 두려운 대상이나 상황을 회피하는 것은 인생의 큰 해악임을 이렇게 경험적으로 재차 배우지만, 다음에도 비슷한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양치를 제대로 한다고 하는데 애초에 남들보다 잘 썩는 이를 가지고 태어난 것인지 아니면 치과를 정기적으로 방문하지 않는 습관의 문제인지 둘 다인지 뭔지 알 수 없지만 두려워하는 영역을 알았으니 더이상 피하려 하지 말자고 최소한 오늘만은 굳게 다짐해 봅니다.

 

 

 

사실 이 얘기를 하려던 것은 아니었고, 오늘 지겨운 재신경치료를 마치고 금니를 씌우는 마지막 작업을 한 후 본드(?)를 치위생사가 긁어내던 중에 제 잇몸에서 피가 많이 날 정도로 다쳤습니다.

 

퇴근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아서 의사든 치위생사든 급하게 서두르는 게 눈에 보일 정도였는데 이런 일이 발생하니 상당히 불쾌하고 오전 5시에 기상한 탓에 감정조절이 더 불안정해지며 화가 치밀었습니다. 사실 이 치위생사는 이전에도 제 와이프 스케일링할 때 서툰 솜씨로 상당한 고통을 안겨 주었고 제가 스케일링할 때도 그랬던 터라 그간 묵혀둔 화가 더 올라오는 느낌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에 마음챙김 책도 보고 있고 분노의 화마에 다치는 것은 상대뿐만 아니라 자기자신임을 알기에 최대한 공손하게 '바쁘셨나 보네요. 다음엔 신경 좀 써주세요.'라고 말하고 나왔습니다. 하지만 표정을 잘 못 숨기는 제 열받은 얼굴을 읽었는지 한참 지하철 타고 가고 있는데 치위생사가 급한 마음에 다치게 해서 죄송하다고 전화를 해옵니다.

 

지하철에 올라서도 '어차피 벌어진 일이고 잇몸은 원래 금방 아무니 떨쳐버리자'고 생각하던 찰나였고, 원장이 시켰든 자발적으로 했든 전화까지 한 것을 보면 본인도 신경이 쓰였을 테니 그 마음을 이해하며 '피가 많이 나는 게 눈으로 보이니 나도 걱정되고 당황해서 기분이 좋진 않았다'고 솔직히 말하고 좋게 전화를 끊었습니다.

 

 

 

잇몸의 피맛으로 인해 여전히 약간은 불쾌감은 남아 있었지만 비교적 훈훈하게 마무리가 됐습니다. 라고 마침표 찍고 싶지만 버스에 올라서도 분노를 잘 컨트롤한다는 게 어떤 건지 곰곰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을 보면 부정적인 감정이 해소되지 못 했구나 메타인지하며 치과 가는 길에 한참 재미있게 듣고 있던 장기하의 '상관없는 거 아닌가?'로 주의를 분산합니다. (장기하가 이런 식으로 문장을 이어나가는 게 재미있어서 따라 해봅니다.) 너무 재미있어서 치과 가는 50분 동안 거의 1/4을 읽었고 치과에서 집에 오는 길에 절반까지 읽었습니다. 이번에는 장기하 덕분에 주의분산 전략이 성공했고 기분도 다시금 회복됐지만, 다음에도 '떨쳐버리자'며 상관없는 듯 행동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떨치지 못 했는데 상관없는 거 아닌가 하는 식으로 행동하면 제 아킬레스건은 허리인지라 여지없이 허리 통증이 옵니다. 치과 진료를 피하려 했다가 괴로움을 경험했듯이 감정을 피하려 하면 허리 통증에 괴로움까지 수반됩니다. 

 

이런 식으로라도 뭔가 잘못됐으니 변화가 필요하다고 알려주는 시스템을 탑재하고 있고 시스템의 이상 신호를 감지할 수 있으니 참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결론은 그 치위생사가 짜증나고 so 그 치과는 이제 다시 갈 일이 없겠다는 것입니다. 남은 100만 원 어치 치료는 동네 가까운 치과로 가야겠어요 양심치과고 나발이고. 그런데 저도 누군가에게는 짜증나는 서툰 상담자였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면 아무래도 화를 적당히(?) 내길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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