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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서평

치매와 싸우지 마세요 / 나가오 가즈히로, 곤도 마코토

by 오송인 2021.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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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매를 '예방'시키는 것이 아니라 치매에 걸려도 괜찮은 곳을 만드는 것, 즉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이 치매를 올바르게 이해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치매와 싸우기 전에 먼저 환자 그 사람을 알 것, 이런 의식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에 따라 대응은 완전히 달라지게 됩니다."

 

읽으면서(아니 오디오북으로 들었으니 들으면서) 참 생각을 많이 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그 생각들을 상세히 적어 내려가는 건 별로 의미가 없는 것 같고 요점 몇 가지만 적습니다.

 


 

이 책은 치매 환자를 많이 보는 마을 의사와 역시나 치매 환자에 대한 국가적 서비스 일선에서 일하는 공무원이 서신을 주고 받는다는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가볍게 읽겠다고 집어 든 책인데 전혀 가벼운 내용이 아니네요.

 

치매를 둘러싼 의료적 노력과 가족의 고충, 국가적 제도 모두를 한 번쯤 생각해 보게 합니다.

 

특히 약물치료 위주로 진행되고 있는 현재 일본 의료체계(한국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를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다른 길을 찾아야 한다는 외침을 담고 있습니다.

 

치매에서 중요한 것은 치료도 예방도 아니고 치매 환자가 최대한 스스로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게 돕는 주변의 노력임을 강조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근본적으로는 그 환자가 어떤 삶을 살아 왔고 현재 어떤 불편을 '경험'하고 있는지, 불안해 하는 것은 무엇인지, 가족이나 간병인이 문제로 여기는 것은 무엇인지 등을 파악하여서 치매와 더불어 살아갈 수 있게 환경을 조성해 줘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인상적인 에피소드가 여럿 있는데, 환자가 밤에 아무 데나 오줌을 싸서 환자의 의식이 어느 정도 돌아왔을 때 가족과 환자가 상호협의하에 저녁에는 환자의 손을 묶기로 결정합니다. 하지만 가족들이 환자 손을 묶은 첫날 어떻게 잠을 잘 수 있었겠습니까. 죄책감도 컸겠죠.

 

그래서 결국에는 방에 비닐을 깔고 면팬티도 수십장을 사서 환자가 하던 대로 행동하게 내버려 두기로 합니다.

 

또 다른 에피소드로서, 날마다 동네 수퍼마켓에서 필요하지도 않은 특정 물품을 사오는 일종의 상동증적 증상을 지닌 환자를 위해 자녀가 미리 비용을 결제해 두기도 하죠.   

 

이처럼 치매 증상이 나타나도 증상을 제거하려는 노력보다는 어떻게 그 증상과 함께 살아갈지 고민하는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고칠 것인가, 그대로 둘 것인가'보다는 (어떤 아이디어가) 환자에게 '맞는가, 맞지 않는가'를 찾아낼 것."

 


 

치매는 주지하다시피 약으로 호전될 수 있는 병이 아니며, 약물치료의 역할은 기억력 감퇴의 속도를 늦추고 치매에 수반되는 행동 증상들을 완화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때로는 약물 때문에(특히 항정신병 약) 환자의 무기력이 더 심해지고, 활동성 저하는 때이른 죽음을 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치매 환자와 살아갈 때 의사를 무조건 신뢰할 필요는 없으며 결국에는 환자를 오래 보아온 가족의 의사결정이 의료진의 결정만큼 중요해지는 순간이 오게 마련입니다.

 

책임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 괴로운 일이기 때문에 보통 의사의 결정을 따르게 마련이지만 의사의 결정을 따르다가 환자의 건강이 악화되는 경우도 없지 않을 것입니다.

 

환자를 24시간 간병하는 가족이 재량에 따라 미세하게 약물을 조절하는 것도 괜찮다는 것이 이 책의 반을 집필한 의사의 생각이며 저도 공감이 됩니다.

 


 

다만 약물치료 이외의 모든 영역에서, 환자에 관한 선택과 책임을 보호자 개개인이 거의 오롯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 어쩌면 근본적인 문제입니다. 

 

이를 알기에, 자식에게 폐 끼치기 싫어서 의식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을 때 자살하는 노인도 아마 많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한국도 이제 초고령사회에 진입할 시점이 얼마 남지 않았고, 언제까지 보호자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치매 환자에 대한 국가적 책임 분담이 필요하지만 이 역시 갈길이 멀어 보이니 한숨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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