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판이 1979년에 나왔으니 거의 40년 전 책입니다.
인지치료에 대해서 가장 많이 듣고 배우지만 인지치료의 시행을 직접적으로 배우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임상심리전문가인 저조차도 마음사랑인지행동치료센터나 메타 같은 곳 말고는 딱히 인지치료를 배울 수 있는 기관이 떠오르지 않는 것을 보면 말이죠.
사실 이렇게 배울 수 있는 기관이 적은 것은 인지치료 자체가 한국인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습니다. 객관적인 사고 및 행동 데이터에 근거하여 사고의 조망을 넓히고 대안 행동을 모색한다는 것이 인지치료의 핵심이라고 생각하는데 한국인은 일반적으로 사고보다는 정서적으로 접근할 때 더 치료 효과가 잘 나는 민족적/문화적 특수성이 있지 않나 생각해 보게 됩니다. 미국인과 사고방식도 다를 것이고요.
이런 차이점 때문에 실상 현장에서 인지치료만을 고집하는 전문가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인지도 모릅니다. 대개 통합적/절충적 접근을 선호하거나 정통 인지치료 방식보단 수용전념치료/마음챙김에 기반한 인지치료 방식을 따르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은 이유는 인지치료의 지향점이나 치료방식이 제가 살아가는 방식과도 정말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책을 임상가의 관점에서 보기도 했지만 일종의 자조서로 읽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실생활에 유용한 내용이 많습니다. 학부 때 이 책의 번역서를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어 내려갔던 이유이기도 할 것이고요.
책에서 치료자-환자 관계뿐만 아니라 치료 과정을 통해 환자가 얼마나 셀프 치료자로 성장했는지가 중요하다는 언급이 반복됩니다. 인지치료의 최종 목표는 환자를 셀프 치료자로 만들어서 향후 재발을 방지하고 재발하더라도 잘 대처할 수 있게 돕는 데 있습니다. 치료적 관계가 중요한 것은 맞지만 그것을 너무 강조하게 되면 치료가 끝난 이후 환자가 ‘혼자’ 살아나갈 수 있게 하는 데 초점이 덜 맞춰질 수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어서 셀프 치료자라는 인지치료의 최종 목표가 공감이 됩니다.
환자를 셀프 치료자로 만들기 위해서는 치료 초기부터 치료 자체나 치료자에 대해 피드백할 수 있는 안전한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치료자의 제1의 과제라는 것 또한 되새깁니다. 아론 벡이 이 책에서 강조하는 인지치료는 매뉴얼화된 방식이 아니라 개인에게 특화된 방식입니다. 개인에게 특화된 치료를 제공하기 위해서는 인지치료에서 강조하는 치료자 환자 간의 상호 협력에 기반하여 무엇이 환자에게 맞고 무엇이 안 맞는지 속마음이 공유가 잘 돼야 합니다.
여기까지 가려면 치료자를 신뢰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떻게 치료자가 환자에게 신뢰를 주느냐 하는 문제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론 벡이 하는 얘기는 대체로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습니다. 즉 시간 약속을 잘 지키고, 내담자의 말을 잘 기억하고, 내담자가 하는 말을 잘 따라가는 것 같은 기본적인 사항을 잘 지키라고 말합니다.
5개월 남짓한 시간 동안 이 책을 통해 인지치료가 만개하기 직전의 생생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회기마다 목표를 설정하는 것의 중요성(4장), 자살 위기 환자를 면담하고 치료하는 법(10-11장) 등 현실적이고 실제로 활용할 수 있는 임상 가이드라인이 담겨 있는 책으로서 80년대 인지치료자들에게 많은 도움이 됐을 것 같아요. 꼼꼼하고 군더더기 없는 아론 벡의 문체 덕분에 읽으면서 내용 이해가 수월했고, 성격장애 치료에 관한 아론 벡의 저서로 관심의 범위를 확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2020/09/16 - [영어공부/원서 읽기] - Cognitive Therapy of Depression, pp. 32-33
2020/09/18 - [영어공부/원서 읽기] - [2주차] Cognitive Therapy of Depression, pp. 21-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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