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하루/서평

죽음의 부정 / 어니스트 베커

by 오송인 2021. 5. 17.
반응형

 

어려운 책입니다. 인간의 모든 문화와 이데올로기가 죽음을 부정하기 위한 시도로서 이해될 수 있다는 게 요지입니다. 이 요지를 부각시키기 위해 프로이트가 말하듯 인간에게 죽음충동이 내재한 것이 아니라, 죽음이라는 것 자체가 인간의 실존적 조건임을 강조합니다. 모든 사유는 여기서부터 시작하는 것이 옳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죽음이라는 근본 조건에서 시작하지 않는 심리학은 어니스트 베커에게 있어 죽음을 부정하려는 많은 기획 중 하나로 폄하됩니다.

 

"우리는 자신이 현실에 대해 근본적으로 부정직함을, 우리가 실제로는 자신의 삶을 통제하지 않음을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언젠가 내가 죽는다는 것은 이 세상 그 무엇보다 자명한 사실이지만 왠지 비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우리는 언젠가 죽기 때문에 삶을 온전히 통제한다는 것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통제하는 주인공처럼 살아갑니다. 베커에 따르면 인간은 '나는 죽지 않는다'는 환각을 형성해 내는 성격의 갑옷을 입은 채 살아가기 때문에 통제감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베커에게 이것은 부정직입니다.

 

이 책에서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는, 성격이 불멸이라는 환각을 형성해 내는 것을 그 사명으로 하기에 성격은 그 자체가 신경증과 동의어라는 사실입니다. 정도의 차이일 뿐 인간은 누구나 신경증을 지닙니다. 그리고 성적 동기가 아니라 불멸 동기가 신경증에 자양분을 공급합니다. 이런 주장은 오토 랑크에 상당 부분 빚졌음을 저자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랑크를 읽어봐야겠단 생각이 듭니다.

 

불멸이라는 환각은 그 자체가 비현실적인 것이기 때문에 전이를 통해서 현실에 안착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고자 합니다. 제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모르겠지만 긍정적 전이는 신에 대한 사랑과 복종으로 나타나고 부정적 전이는 타인을 죽이려는 충동으로 나타나는 듯합니다. 즉 종교와 전쟁은 신경증이 사회적인 수준으로 확장되었을 때의 결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긍정/부정 전이가 교차하는 지점이 종교전쟁일 텐데, 인간의 역사에서 왜 그토록 많은 종교전쟁이 있었는지 납득이 갑니다. 

 

불멸 동기에 의해 추동되는 성격 갑옷을 입고 천년만년 살 것처럼 살아가지만 저자는 이에 대해 섣불리 가치 판단하지 않습니다. 성격 갑옷을 일종의 필요악으로 보는 듯하고 저 또한 이러한 관점에 동의합니다. 자연에는 의미가 없습니다. 자연에 의미가 있는데 무고한 생명이 수백 수천 수만씩 한 번에 죽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의미 없는 포악한 자연에서 제정신을 갖고 살아가려면 성격 갑옷이 필요합니다. 

 

"...그것은 어떤 환각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최선'인가다. 달리 말하자면, 가장 정당한 어리석음이란 무엇인가?"

 

어떤 환각이 최선인지 가늠하려면 "주어진 환각이 얼마나 많은 자유, 존엄, 희망을 선사하는가"를 보아야 한다고 하는데, 사실 잘 이해되지 않습니다.

 

"삶, 죽음, 현실에 대해 거짓말을 하지 않는 미더운 환각, 스스로의 명령을 따를 만큼 정직한 환각이다. 내가 뜻하는 명령은 자신을 정당화하려고 죽이지 말라는 것, 타인의 생명을 빼앗지 말라는 것이다. 랑크는 우리가 논의한 바로 그 의미에서 기독교가 참으로 위대한 이상적 어리석음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기독교는 이상적 기독교이며 현실에서의 기독교는 아닙니다. 통제감을 얻고 삶에 의미를 불어넣으며 동물적 존재의 필멸성을 초월하고자 하는 인간의 노력은 자기와 타인을 죽이지 않는 한에서만 미더운 환각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부터 이 책은 심리학 너머의 신학으로 나아갑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이 책은 제게는 어려운 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신경증이 인간의 기본 옵션이라는 내용에 공감합니다. false self/true self를 구분은 이론적일 뿐이라 생각합니다. true self에 도달한 인간은 역사 속의 성인들 뿐이며, 그 외의 모든 인간은 false self, 즉 신경증을 지닌 채 살아가는 것 아닐까요. 이런 면에서 보면 비정상이 아닌 인간이 어디 있을까요. 누구나 죽음을 부정하기 위한 저마다의 기획을 만들어 내며 저마다의 정당한 어리석음을 지닌 채 살아갑니다. 그것을 어떻게 '가장' 정당한 어리석음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더 보여줬더라면 좋았을 텐데 설명을 안 한 것인지 설명했는데 제가 이해를 못 한 것인지 잘 모르겠군요.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