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을 쉽게 만들어 성공 경험 축적하기
스피킹을 잘하고 싶다면 말을 많이 해봐야 한다. 하지만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우선 영어로 대화할 상대를 찾는 것부터가 어렵다. 아니다. 시대가 변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요즘에는 대화할 수 있는 통로와 기회가 너무 많아서 무엇이 자신에게 맞는지 선택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시작도 하기 전에 압도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을 생각해야 한다. 습관의 디테일을 쓴 BJ 포그에 따르면 그 조건은 대략 다섯 가지이다. 1. 돈 2. 시간 3. 정신적 에너지 4. 신체적 에너지 5. 일상의 일부로 녹여낼 수 있는지 여부.
1. 일단 돈. 와이프가 얼마나 절약하면서 사는지 알기 때문에 애석하게도 내게는 영어공부에 쓸 돈이 없다. 마음 같아서는 한 달에 몇 만 원씩 전화영어에 투자하고 싶지만 자연스레 돈이 들어가는 영어공부는 선택 사항에서 배제한다. 경제적 여유가 된다면 전화영어나 화상영어를 꾸준히 하는 것도 좋은 선택이다.
2. 시간. 시간은 그나마 내가 어찌해 볼 수 있는 조건이다. 다만 들이는 시간이 많지 않아야 하는데, 스피킹이 내 삶의 우선순위에서 밀리기 때문이 아니라 긴 시간 투자하다가는 지쳐 나가 떨어질 것을 알기 때문이다.
3. 정신적 에너지. 앞서 언급한 것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스피킹에 들이는 시간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정신적 에너지를 많이 사용한다는 말의 다름이 아니다. 이제 막 세발 자전거 타기 시작한 사람이 자전거 오래 타면 탈이 나게 마련이다. 정신적 에너지를 많이 들이지 않아야 한다.
4. 신체적 에너지. 스피킹은 리딩, 리스닝, 라이팅에 비해 신체적 에너지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는 느낌이다. 스피킹 훈련은 산을 오르는 것과 비슷하게 신체적으로 고강도 훈련이다. 제대로 하고 나면 입이 얼얼하고 상당히 힘들고, 힘든 행동은 지속되기 어렵다. 정신적 에너지뿐만 아니라 신체적 에너지도 적게 들어가는 방식이어야 한다.
5. 일상. 일상에서 스피킹할 수 있는 시간대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일상의 시간 배치를 조정해야 한다. 내 경우에는 사무 공간이 위치한 빌딩 옥상에 올라갈 수 있는 낮 시간이 제격이다.
일전에 브런치 어디에선가 소개한 적이 있는 Real Life English app은 이 다섯 가지 조건에 딱 맞는다. 일단 무료이다. 무료이며 랜덤하게 배정되는 전세계인과 4분 동안 대화할 수 있다(추가로 4분 연장 가능하다). 기본으로 주어지는 시간이 4분이기 때문에 크게 부담이 되지 않는다. 물론 이 앱을 처음 사용한 작년 9월에는 1분도 상당한 부담이 됐다. 하지만 몇 번 하다 보면 4분이 짧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일단 4분만 한다는 나름의 규칙이 있기 때문에 정신적 에너지와 신체적 에너지가 크게 들어가지 않는다.
점심을 먹고 사무 공간이 위치한 빌딜의 옥상에 올라가 앱을 켜고 심호흡을 한 번 한다(!). 그리고 FIND PARTNER 버튼을 누른 후 랜덤하게 연결되는 누군가와 영어로 대화를 나누면 된다. 두려움이 너무 크다면 미리 기본적인 가상의 질문/응답을 적어 컨닝해도 좋다. 몇 번 하다 보면 나만 못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인도에 사는 누군가도 이집트에 사는 누군가도 인도네시아에 사는 누군가도 나만큼 말을 버벅댄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물론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도 있다. 내 영어가 후져서인지 아니면 내 목소리(혹은 얼굴 )가 별로이기 때문인지,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연결되자마자 몇 초만에 연결을 종료하는 사람도 많다. 이 어플의 암묵적인 룰 자체가 그렇다. 랜덤하게 연결되는 만큼 큰 기대는 안 하는 게 좋다. 그래도 친절한 사람도 많다. 사람 사는 곳이 어디나 그렇듯이 반반이다.
조건을 고려하여 행동 설계를 마쳤다면 이제 성공 경험의 반복이 들어갈 차례이다. 성공은 대단한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설령 대화를 못 했다 하더라도 앱을 켜고 FIND PARTNER 버튼을 눌렀다는 것도 성공으로 삼을 수 있다. 자신의 수준에 맞게 성공 경험을 정의하는 것이다. 여전히 두려움이 크기 때문에 내 경우에도 1초라도 말을 했다는 데 의의를 두며, 이를 성공 경험으로 간주한다. 성공 경험은 그것이 이루기 어려운 것인지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작은 성공 경험이라도 ‘반복’되고 있고 ‘누적’되고 있다는 게 중요하다. 결국 성공 경험의 반복과 누적이 능력치뿐만 아니라 동기 수준을 향상시켜서 더 어려운 과제도 가능케 한다. 지금 나는 날마다 4분 통화라는 미션을 진행하고 있지만, 나중에는 오프라인에서 30분 동안 대화하는 상상을 해본다. 올해 말에는 30분 동안 영어로 말하는 원서 리뷰를 녹음해서 올릴 예정이다. 가능할까? 매일 영어로 대화하면 못 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영어 습득은 똑똑한 것과는 아무 상관 없다. 미국에서는 만 36개월 안 된 베이비도 영어로 나름 유창하게 말한다. 어린 애들은 어떻게 영어를 잘할까? 계속 듣고 말해 보았기 때문이다. 원어민이 아닌 우리는 조금 더 머리를 써야 한다. 어떻게 하면 영어로 말하는 행동을 지속할 수 있을까? 얼마나 있어 보이는지가 아니라 얼마나 지속가능한지를 고려해서 행동을 설계해야 하고, 이 때 저 다섯 가지 조건을 고려하면 유익하다.
덧)
1. Real Life English app은 영상을 켜거나 끌 수 있다. 영상을 끈 채 하는 사람이 더 많은 느낌이라, 처음에는 영상을 켜고 했으나 지금은 나 또한 켜지 않는다.
2. 이 앱을 처음 사용할 때만 해도 뭐라도 말을 하자는 게 목표였으나, 지금은 잘 듣고 반응하자는 쪽으로 바뀌었다. 언어가 무엇이든 근본은 소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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