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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1000개의 메모

[1000개의 메모 8주차 연결 2] 어느 프리랜서가 불확실한 상황을 버텨나가는 방식

by 오송인 2022. 2.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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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로 밥벌이를 한다는 것은 전혀 프리하지 않은 삶입니다. 2021년 한 해 내내 기록한 시간을 토대로 비교를 해보니 풀타임잡으로 일할 때보다 일하는 시간이 최소 두 배 이상입니다. 매달 일하는 시간과 월 소득도 천차만별입니다. 어떤 달은 주중/주말/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하기 바쁘고 그만큼 소득도 높은 데 반해 어떤 달은 이렇게 손가락 빨고 있어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일이 없습니다. 불안에 잠식당하는 달입니다.

 

저는 불안이 많은 사람이고, 이런 삶을 자발적으로 택했을 리 없습니다. 사측으로부터 계약 연장 의사가 없다는 말 한마디를 들은 작년 2월 초부터(딱 1년 전이네요) 다른 풀타임잡으로 갈아타기 위해 무던히 노력했으나 수포로 돌아가고, 그렇게 비자발적으로 프리랜서로서 시장에 뛰어들게 됐습니다.

 

풀타임잡으로 생활하는 것이 안정적이긴 하지만, 정규직이 아닌 이상 누구나 이 직장을 언제까지 다닐 수 있을까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계약 연장의 꿈을 접어야 하는 시점이 오게 마련이죠. 설상가상 나이가 먹을수록 풀타임잡으로 들어가기 어렵습니다. 뛰어난 기술이나 재능이 있다면 해당사항 없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노년이 되면 파트타임이라도 감사히 여기며 일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형마트만 하더라도 고학력 인재인 분들이 단지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본인이 지닌 재능을 펼치지 못하고 거기서 일하고 계실 수도 있습니다.[1] 남의 얘기가 아니라 언젠가 우리가 겪게 될 얘기입니다.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고 생각하며 정신승리라도 하고 싶습니다. 어차피 회사에서 오래 버티지 못할 바에야 미리 나와서 시장(혹은 업계) 상황이나 변화에 적응하며 생존력을 키우는 것이 낫지 않나 싶습니다. 하지만 프리랜서나 파트타임으로 일한다고 해서 저절로 생존력이 증가하는 것은 아닐 테고, 어떤 식으로 스스로의 능력을 키워나갈지 고민이 필요해 보입니다.

 

제가 선택한 방식은 영어입니다. 퇴사 전에도 영어공부는 하고 있었지만 퇴사 이후부터 더 가열차게 영어공부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영어가 제 직업적 능력과 직접적인 관련을 지닌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영어는 어떤 커리어에서도 든든한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습니다. 이것이 어떤 식으로 제 커리어에 도움이 될지 알 수 없고, 커리어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을 가능성도 사실 있습니다. 많죠. 하지만 영어공부라는 매일의 루틴을 지키는 것은 멘탈강화에 상당히 도움이 됩니다.[2] 어떤 불확실한 상황에 처하더라도 안정적인 무엇인가를 지녔다는 것은 불확실성과 위기를 헤쳐나가는 데 큰 동력이 됨을 느낍니다.

 

프리랜서로서 6개월차인 지금도 여전히 프리랜서로서 밥벌이 하는 것에 적응 중이지만, 풀타임잡으로만 일하던 과거보다 좋은 점도 있습니다. 풀타임잡이 아니더라도 어떻게든 먹고는 산다는 것을 몸으로 배우는 중이라는 점입니다. 이번 달은 왜 이렇게 일이 없나 한숨 쉬며 불안을 경험할 때도 많지만, 불안을 조절하는 저만의 방식(앞서 말한 영어공부 루틴을 포함)을 시행착오적으로 습득해 나가고 있다는 점 또한 이점입니다. 너무 심각한 타격이 아니라면 위기나 실패가 또 다른 배움과 성장의 장이 될 수 있습니다.[3] 지금 제 상황을 위기이고 실패라고 생각하지만, 거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위기와 실패가 없으면 배울 수 없다는 생각으로까지 나아가려고 노력 중입니다.[4]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며 잘 안 될 때도 많지만요.

 

수용전념치료라는 것이 있습니다. 인생의 고통은 피할 수 없지만 괴로움을 만들어 내는 주체는 자신이다 라는 것이 이 치료 이론의 대전제 중 하나입니다. 불교적인 측면이 있는데요. 괴로움으로부터 빠져나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에 대한 답이 고통과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자연의 이치가 본래 그러한데 그것을 거스르는 것이 괴로움을 낳는다고 보기 때문에, 이치를 거스르지 말고 그저 그런 것이다 받아들임으로써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5]

 

퇴사를 '당하고' 내가 이렇게 안 해도 될 고생을 하고 있구나 생각하는 것은 괴로움을 만들어 내는 행위입니다. 계약 연장을 하지 못한 것을 자신의 능력 부족으로 여긴다면 괴로움은 더 클 것입니다. 하지만 내가 지금 이 상황에 놓인 이유를 찾는 것은 부질 없는 짓입니다. 너무 많은 요인들이 있고 굳이 그것을 내 안에서만 찾는 것도 미련한 짓입니다. 그런 태도보다는 그냥 그렇게 된 것이고, 삶이라는 게 원래 불확실하고 예측 불가하니 그 불확실성 속에서 내가 볼 수 있고 통제할 수 있는 일부분을 부여잡고 하루하루 충실히 산다고 생각하면 정신건강에 이롭습니다.[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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