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점>
- 장기목표보다 단기목표, 지금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목표 설정이 중요하다
- 남들이 중시하는 게 무엇인지는 전혀 중요하지 않다. 자기에게 맞는 방식인지가 중요하다.
- 효과/효율을 따지기 이전에 매일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부합하는 행동을 하고 있는지가 중요하다. 이것이 불확실성과 좌절감을 인내하게 해준다.
험준한 산을 오를 때 이정표가 없이 정상에 오르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하지 않다 하더라도 시작점에서부터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 쉬울 것 같다. 하지만 내 눈 앞에 보이는 저 얕은 언덕으로 일단 올라가서 거기서 다시 어디로 가야 내가 있는 곳보다 더 높은 곳으로 오를 수 있는지 보자고 생각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 정도는 누구나 해볼 수 있다.[1]
영어 학습에서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든다. 유창한 영어 스피커가 되겠다는 목적만 가지고는 목적하는 바를 이룰 수 없다. 어떻게 그 목적을 달성할 것인지 목표가 있어야 한다. 산악인이 되겠다는 목표가 있다면 일단 동네 뒷산 정도는 가뿐히 오르는 체력을 기르는 것이 이치에 맞다. 이 정도 목표는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라고 느껴진다. 목표는 조금만 노력하면 도달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 즉,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기 목표이지 장기 목표가 아니다.
예전부터 장기 목표에 대한 회의가 있었다. 미래는 예측 가능하지 않으며 예측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은 통제감을 유지하고자 하는 인간의 바람에 기인한다. 장기 목표를 세운다는 것은 이제 막 동네 뒷산을 오르는 수준인 내가 에베레스트에 오른다는 포부를 갖는 것과 비슷하다. 중간에 너무 많은 변수가 있어서 실현 가능성이 낮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기 목표는 늘 우리를 좌절시킨다. 장기전으로 계획된 프로세스에서 이탈하지 않으려 발버둥칠수록 계획에서 벗어났을 때 충격이 크고 이탈하기도 쉽다.[2] 만만한 단기 목표는? 실패하면 전략을 바꾸거나 그도 아니면 다른 목표로 대체 가능하다. 동네 뒷산 오르는 것도 버거우면 둘레길 트레킹 정도로 체력 단련부터 하면 된다. 어차피 잃을 것도 별로 없다.
작년 11월 1일부터 영어 문장을 매일 두 문장씩 누적하여 매일 외워 왔다. 그리고 누적 101일째인 2월 8일에 이 방식을 버리기로 했다. 문장을 외우는 것이 설령 스피킹에 도움이 된다 하더라도 그 효율이 낮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영어회화 100일의 기적 한 권을 다 외워서 스스로의 근성을 자체 평가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으나 아무리 봐도 미련한 짓이다. 누적 암기 방식을 버린 이후에도 기존에 외웠던 문장을 안키에서 날마다 간격 인출하고 있다. 새로운 문장을 외우진 않지만, 해오던 관성이 있어서 간격 인출 정도는 하고 있고, 앞으로 어떤 식으로 스피킹 실력을 쌓아 나갈지 전략 및 단기 목표를 고민 중이다.
에베레스트 정상에 오르는 수십 개의 코스가 있을 것이다. 유창한 영어 스피커가 되기 위한 길도 수십 수백 수천 가지로 다양할 것이다. 자신에게 최적의 길을 찾는 것이 중요하고, 이건 그야말로 시행착오 학습인 것 같다. 뭐가 맞는지 미리 알고 시작할 수 없으니 최적의 길을 찾기까지 많은 길을 더듬더듬 짚어 나가야 한다. 중간에 넘어지기도 할 것이고 심지어 내리막길로 굴러 떨어질 각오도 해야 한다. 시간이 걸리는 과정이며, 늘지 않는 실력에 좌절스럽더라도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3]
삶이 내 뜻대로 안 되듯이 내 의지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영어 공부 혹은 훈련도 항상 내 의지에 반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지난 1277일간의 노력을 돌아보면, 원서를 매일 읽는 사람이라는 정체성에 날마다 한 표씩 투표해 왔고[4], 그만큼 영어로 된 글자를 읽는 데 두려움이 없는 게 사실이다. 여전히 영어로 된 글을 읽는 속도가 빠른 편은 아니지만, 그래도 어떤 주제의 글이든 관계 없이 영어로 된 텍스트와 금방 친해질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됐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행착오가 있었다. 그리고 하나 확실히 배운 게 있다면, 불확실하고 안 될 것처럼 보일 때 지금 내가 위치한 언덕에서 조금 더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기 위해 노력해 보고, 다음 언덕에서 다시 전략을 짜서 조금 더 높은 언덕으로 올라가기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반복되면 어느새 꽤 많이 올라와 있는 자신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5]
이런 믿음이 있기 때문에, 자기의심이 많은 편에 속하지만 멀지 않은 미래에 내가 원하는 수준의 유창한 영어 실력을 갖게 될 것임을 안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