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상심리학을 전공하여 심리평가와 심리상담을 모두 하고 있지만, 제가 즐겨 보는 책은 주로 자기계발서입니다.
자기계발서에도 여러 종류가 있습니다.[1] 크게 분류하면, 과학적인 방법론에 따라 도출된 결과를 바탕으로 이야기하는 부류와 근거 없이 주장만 이야기하는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불특정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지 아니면 구체적인 독자층을 상정해서 얘기하는지에 따라서도 분류를 조금 더 세분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아래 범주 분류와 각각의 예를 달아 놓았습니다.
제가 피하는 자기계발서는 물론 과학적인 근거가 없거나 빈약한 내용을 담은 책입니다. 대중심리학과의 교집합은 있지만 심리학과의 교집합은 없는 책이죠. 잠깐 화제가 되기도 했던 더 해빙 같은 책이 그렇습니다. 그리고 아래 테드톡 영상도 마찬가지고요.
Your body language may shape who you are | Amy Cuddy - YouTube
몸의 자세를 바르게 하는 것만으로도 호르몬이 변화되고 자신감이 상승하며 궁극적으로는 인생이 달라질 수 있음을 주장하는 테드톡 연설입니다. 하지만 이 연사가 주장의 근거로 삼은 내용은 다른 연구자들의 반복검증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만약 어떤 연구 결과가 참일 가능성이 높으려면 다른 사람들이 똑같이 실험 설계해도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는 것이죠. 즉, 연구 결과가 신뢰롭지 않다는 말입니다.
대니얼 카너만이 강조하였듯이 인간의 뇌는 시스템 1(직관)과 시스템 2(숙고)의 두 가지 프로세스를 지녔는데, 뇌는 에너지 쓰는 것을 일반적으로 싫어하기 때문에, 즉 효율을 중시하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시스템 2를 잘 사용하지 않는 것도 같습니다. 그런 까닭에 복잡한 설명보다는 단순한 설명이 우리 마음을 더 쉽게 사로 잡을 때가 많고, 특히 그 설명이 기존에 우리가 지닌 생각에 어긋남이 적을수록 혹은 정반대로 직관을 거스를수록 시스템 2가 작동하기 어렵게 되는 듯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성장 과정에서 바른 자세의 중요성을 여러 번 듣게 되는바, 위 테드톡 영상은 우리의 신념과 대체로 일치하는 경우입니다. 더욱이 하버드 대학교 경영대학원의 사회심리학 교수인 연사가 과학적 근거를 통해 확신에 차서 얘기하니 반향이 컸겠고요.
과학적 사고는 어떤 주장을 갖되 그 주장이 틀렸을 수도 있음을 고려하는 데서부터 시작한다고 생각합니다. 전문가의 말이 때로는 답답하게 느껴지는 것도 이런 자기의심이 과학적 사고의 기본 덕목이기 때문 아닐까 싶어요. 확신에 찬 어조로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종교인이거나 정치인 혹은 사기꾼일 가능성이 높아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자기주장을 호소력 있게 전달하는 연사도 자기확신에서는 이들 못지 않은 듯합니다.
자기계발을 하려면 스스로의 한계나 단점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태도가 기본인데, 자신의 한계나 단점을 보려하지 않은 채, 즉 자기가 하는 주장이 근거가 있는지 확인하는 기본 작업도 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자기주장만 늘어놓는 저자의 책을 보는 게 시간낭비밖에 더 될까 싶습니다. 아래 그 한 예입니다. 어떤 하기 싫은 일이라도 5, 4, 3, 2, 1 세고 action! 하면 인생이 바뀐다, 거울을 보든 상상으로 하든 자기자신과 하이파이브 하는 액션을 취하면 인생이 바뀐다고 주장하는 변호사입니다.
Be More CONFIDENT With The High Five Habit | Mel Robbins | Rich Roll Podcast - YouTube
How to Beat Self-Doubt in 5 Seconds - YouTube
어떤 자기계발서가 과학적 근거를 지녔는지 확인하는 간단한 방법은 책 뒤편의 참고문헌을 확인하는 것이겠죠. 참고문헌에 논문이 많이 보인다면 작가가 자기 말에 책임지고자 노력했다는 의미일 수 있습니다. 논문도 어떤 저널에 실리느냐에 따라 질이 천차만별이지만, 최소한의 기준 정도는 되지 않을까 합니다.
[1]: Does self-help ... help? The problem with pop psychology - All In The Mind - ABC Radio Nation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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