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론부터 말하면 진짜 행복한 경험이었다.
안산역에 내려서 에어컨도 안 나오는 콩나물 버스를 40분 정도 타고 갈 때부터 돈주고 사서 고생하는 맛이 있었고,
밴드 아침을 시작으로 낮 1시부터 다음 날 저녁 4시까지 달렸는데도 하나도 안 피곤했다.
디어 클라우드는 신곡 위주로 해서 떼창의 기회가 없었지만, 나인의 파워풀한 목소리가 드넓은 공연장을 수놓는 광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그리고 넬! 넬의 백색왜성과 믿어선 안 될 말, 이 두 곡을 라이브로 들었으니 그것으로 만족했다. 신곡들은 솔직히 귀에 안 들어왔다.
비가 오다말다 했는데 습한 날씨에 땅도 거의 뻘 수준이었다. 공연 보고 있으면 막 서 있던 자리가 움푹 패여..; 사진에는 되게 양호하게 나왔는데, 나중에는 군화 전체가 진흙으로 뒤덮였다. 누군가가 버린 신발도 눈에 띄었다. ㅎ
암튼 땅 상태를 개의치 않고 편하게 움직일 수 있는 군화 덕분에 꽤나 방방 뛰었는데, 칼로리 소모가 많았던지 배가 심하게 고팠다. 그래서 불독맨션을 뒤로 하고, 같이 갔던 분과 공연장 밖으로 나가서 육개장 사먹었는데, 배가 고파서였을까 게눈 감추듯 먹었다.
공연장으로 돌아와서 스테레오포닉스 좀 보다가, 빅탑 스테이지에서 스크릴렉스 공연하는 거 안 보고 마이블러디발렌타인 세팅하는 거 지켜 보면서 돗자리 깔고 떡볶이에 맥주를 먹었는데, 천국이었다.
12시 넘어서 마블발 공연이 시작됐고, 주옥 같은 슈게이징 사운드가 대부도의 밤공기를 가득 채웠다.
80년대 말, 90년대 초 전성기 포쓰 그대로였다. 지난 겨울 악스홀에서 거지 같은 플레이로 많은 팬들의 실망과 원성을 불러 일으켰는데, 이번에 케빈 형이 아주 작정을 하고 온 것 같았다. 어쩐지 세팅만 2시간 반 넘게 하더라니. 이번에는 허세가 아니라 리얼 wall of noise였다. ㅜㅜ
모기에 뜯겨 가면서 새벽 세 시 반까지 달리고, 셔틀버스 타러 공연장을 빠져 나갈 때, 행복했다. 대학원 때는 밥값 몇천 원이 없어서 밥 못 먹을 때도 몇번 있었는데, 이제는 좋아하는 일 하면서 돈도 많이 벌고 이런 비싼 공연도 볼 수 있고.. ㅜ.ㅜ "하나님 감사합니다"가 절로 나온다는..
새벽 두 시, 로만티카의 그루브
행복에는 일정 수준의 돈이 필요하고, 그만큼의 돈을 벌고 있고, 그 돈을 내가 가장 좋아하는 락음악에 쓸 수 있어서 행복했다.
공연 끝나고 셔틀버스 타고 합정까지 와서 첫 버스를 타고 집에 거지 꼴로 돌아 왔다. 씻자마자 일요일 하루 종일 잤다. 피곤하긴 했나 보다.
다음 주에 나는 또 지산에 간다. 플라시보 보러.
행복한 여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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