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바하고 학점 방어하느라 대학 생활의 낭만을 느끼는 때가 있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나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비슷한 처지였을 것 같다.
대출한 등록금 걱정, 취업 걱정, 어떻게 하면 스펙 잘 쌓을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은 IMF 이후에 대학 다닌 사람들의 공통 분모가 아닐까.
이 영화에 등장하는 캠퍼스 분위기도 그렇다. 면학 분위기 해친다고 복학생들의 놀이 공간인 족구장을 테니스장으로 만들어 버리는 현실.
그런데 군대 갓 제대한 복학생 만섭이가 오면서 상황이 조금씩 변해 간다.
이 영화에서 만섭이라는 캐릭터는 알바를 두 개나 뛰고 등록금 대출 이자 독촉에 시달리지만 낭만이 있다.
03학번 선배가 정신 차리고 공무원 시험 준비하라고 윽박질러도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소신이 있고, 약자를 배려할 줄도 안다.
그리고 사랑 고백도 참 남자답게, 진정성 있게 한다.
그런 만섭이가 과 대항 족구 대회를 통해 캠퍼스에 다시 낭만을 가져온다.
허무맹랑하고 개연성도 떨어지고 배우들의 연기도 뭔가 어설프지만 이 영화가 입소문을 타고 있는 건 우리가 한 번쯤 꿈꿔 보았을 캠퍼스의 낭만 혹은 청춘의 낭만을 상기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헤어젤로 머리에 힘을 잔뜩 준 만섭이 교내 잔디밭에서 좋아하는 여자를 위해 도시락을 펼치는 장면은 정말 눈물나게 따뜻하다.
난 교내에서는 창피해서 못하고, 하늘공원 가서 도시락 펼쳤던 적이 있다. 다른 과 여학우였는데 만섭이처럼 교양수업에서 조별 과제하다 친해져서 몇 번 만났으나 잘 안 됐다. 하지만 좋은 추억으로 남았다.
족구왕 보면서 20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해봤다. 그 때는 가난하고 고생스러웠지만 기억이란 건 참 묘해서 나쁜 건 다 사라지고 좋은 느낌만 남아 있다.
암튼 꼭 보세요. 두 번 보세요.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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