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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상심리학/상담 및 심리치료

늘 힘들지만 유독 힘들었던 오늘의 상담

by 오송인 2018. 12.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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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끼면 내담자에게 집중하기가 어렵다. 부족한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떨쳐내고 내담자에게 집중하지 못 한 것은 내담자의 잦은 침묵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마음 속에 부족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있기 때문 아닐지. 사고 억제의 역설처럼 말이다. 


내담자의 잦은 침묵에 나의 불안과 인정욕구가 여지 없이 드러난 회기를 꼼꼼하게 기록지에 옮겨적고, 오늘도 내담자로부터 배운다.


침묵이 능사는 아니다. 내담자의 불안 수준이 높은 경우에는 상담자가 먼저 말을 꺼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그게 지금 여기서 느껴지는 것이라든지 상담자가 중요하다고 여기는 주제라든지 어떤 것이든. 


하지만 그런 말들에도 내담자가 계속 침묵하고 별다른 반응이 없다면, 차라리 상담자도 같이 침묵하는 것이 나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게 된다. 


회기를 꼼꼼하게 다시 듣다 보니 침묵이 많았던 오늘의 내담자는 상담자를 신뢰하지 못 하고 화가 난 것일 수 있겠다 싶어진다. 이걸 어떻게 다루면 좋을지.. 


상담 수퍼비전을 이제껏 세 분에게 받았다. 동일 사례로 서로 다른 수퍼바이저에게 수퍼비전을 받기도 했다. 여러 사람에게 수퍼비전 받으며 느끼는 것은 '상담은 정말 답이 없구나 그들이 조언을 해줄 수는 있겠지만 결국 상담자-내담자 관계에서 직접 비싼 댓가를 치르며 배울 수밖에 없겠구나'라는 점이다. 한 사례를 두고도 열 명의 수퍼바이저가 100가지 얘기를 하기 십상이다. 결국 그 이야기들 가운데 어떤 것을 취해서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는 온전히 상담자의 몫이다. 내담자를 그나마 제일 잘 아는 건 수퍼바이저가 아니라 상담자이기 때문이다.


답 없는 질문을 안고 "상담심리사는 내담자의 잠재력을 개발하여 건강한 삶을 영위하도록 도움을 주며, 어떤 방식으로도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상담사 윤리를 되뇌며 잠에 든다. 


어떤 방식으로도 해를 끼치지 않을 수 있을까? 윤리 강령의 취지는 알겠지만 의도와 결과가 꼭 같기는 어렵다. 해를 끼치지 않으려 해도 해를 끼치게 되는 경우들이 있게 마련이다. 그런 일이 덜 발생하기를, 해가 되기보다 도움이 되기를 기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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