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기 역동적 심리치료의 목표는 환자들이 부적응적인 대인관계 패턴을 반복하지 않도록 돕는 것이며, 이는 치료적 관계라는 맥락에서 새로운 체험과 이해를 촉진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치료가 의도하는 바는 환자가 자신 및 다른 사람들과 관계 맺는 방식을 수정하도록 돕는 것이다. 그러므로 단기 역동적 심리치료의 초점은 증상을 경감시키는 데 있지 않고(그렇게 개선되리라고 예측하지만), 대인관계에 스며들어 있는 패턴, 즉 전통적으로는 성격 구조라고 불러왔던 것을 변화시키는 데 있다. - 단기 역동적 심리치료, 53쪽.
요즘에 대인과정 접근 혹은 단기 역동적 심리치료를 공부하고 또 상담자로 직접 상담을 하기도 하면서 이전에 내가 받았던 상담을 떠올릴 때가 많다.
1년 남짓 받았던 상담은 확실히 정신분석적인 경향이 강했던 것 같다.
상담자가 먼저 말을 꺼내는 경우가 거의 없었고(기억이란 왜곡되기 쉬워서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그야말로 빈스크린에다 대고 혼자 말하는 느낌이었던 것 같다.
뭘 시원하게 알려주지도 않고 정신분석적인 것 같긴 한데 상담 1년이 다 돼 가도 해석이나 직면도 없고,
내 공상이 허황되고 사회 문제에 대한 관점이 잘못 되었다는 듯한 뉘앙스로 간혹 나를 자극하니 분노 감정이 치밀어 올랐던 것 같다.
하지만 자기상의 일부로 여기지 않았던, 잊혀진 유년기 기억들이 떠올라 이런 게 무의식의 의식화인가 싶어 놀라기도 했다.
대상 표상 형성에 막대한 영향을 미친 아빠에 대한 애도도 상담을 하면서 이루어진 주요한 변화이다.
커피를 마시거나 껌을 씹으며(내게도 껌을 권유할 때가 종종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아무말 하지 않을 때가 많았지만 실상 상담자가 많은 것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그 상담을 통해서 내 삶의 원동력이기도 했지만 대인관계의 어려움을 야기하기도 했던 두 가지 핵심 성격 특성을 알게 됐다.
상담 진행되던 때는 몰랐다. 하지만 사후적으로 그 상담 과정을 떠올리다가 문득 통찰이 오는 경험을 반복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내 핵심 성격 특성과 대인관계 패턴의 지도를 그려볼 수 있게 됐다.
그 상담자가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 수 없다.
궁금하긴 하다. 오만하다는 표현을 통해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상담자의 자기 감정 노출이 이뤄지긴 있는데(정확한 공감이었다 이제 보면 ㅎ 분명 내 안에 오만하고 특권의식 충만한 자기도 존재한다), '사례개념화 한 번 들어봅시다'하고 오만하게 말해 보면 어땠을까 싶기도 하다. ㅎ
하지만 앞으로 다시 상담을 받는다 해도 상담자가 나를 어떤 모습으로 보고 있는지는 별로 중요하게 여기지 않을 것 같다.
그보다는 상담자와 나 사이에 발생하는 감정들에 관해 보다 상세히 표현해 보고자 애쓸 것 같다.
내가 받았던 상담에서 아쉬웠던 점은, 증거기반 강조하는 인지치료자에게 당신은 왜 생애 초기 경험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냐며 따지는 꼴이라 머쓱하기도 하지만, 상담자-내담자 관계에서 벌어지는 일들에 대해 일언반구가 없었다는 점이다.
1회기에 10만 원씩 내면서 상담 받고 있는데 대체 내 앞에 앉은 상담자가 뭘 하고 있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는 데 대한 답답함과 분노가 있었던 것 같다.
심리학 전공자인 나도 이럴진데 하물며 일반인은 더 말할 것도 없다.
'뭐야 들어주는 거 누구나 할 수 있는 거 아니야? 돈 쉽게 버네.'라고 느낄 수 있는 지점들이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상담을 받았던 사람 중에, 상담 후 변화된 자기 모습을 스스로도 느끼며 상담에 관한 좋은 기억을 갖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반대의 경우가 존재한다. 안 좋은 기억만 남게 되는.
초보 상담자가 실수할까봐 너무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경우가 그 첫 번째고, 어설프게 로저스 흉내내며 인간중심상담을 추구하다가 동네 이웃이나 친구의 지지적이고 따뜻한 조언과 별반 다를 게 없게 되는 경우가 두 번째다.
전자의 경우에 '상담자가 아무것도 안 하면서 나보고 문제해결하라네. 그럴 거면 상담 뭐하러 갔냐.'라고 생각하기 쉽다.
후자의 경우에는 상담 가면 일시적으로 기분 좋아질 수 있지만 이 역시 뭐 하나 달라지는 것을 경험하지 못 한 채 '상담 더 가야 되나?' 고민하게 되기 쉽다.
대인과정 접근이나 단기 역동적 심리치료는 대인관계 문제를 인간이 경험하는 심리적 문제와 증상의 뿌리로 간주하고 이 부분을 파고든다.
단순히 '비지시'에만 방점을 찍으며 잘 듣거나 따뜻하게 조언하는 것이 아니다. 전통적 정신분석처럼 상담자가 '빈 스크린'이 되지도 않는다.
대인과정 접근이나 단기 역동적 심리치료 모두 내적 작동 모델(생애 초기에 형성된 부모-자녀 관계 틀. 일생 동안 대인관계에 영향을 미침)을 변화시키기 위해 상담자가 비지시적이지만 적극적인 방식으로 관여하게 된다.
비지시적이면서 적극적인 관여란 무엇인가? 상담 및 심리치료 대인과정 접근 57-58쪽에서 가져온다.
관찰한 관계적 혹은 인지적 패턴들에 대해 피드백 제공하기
내담자가 대체적인 틀을 갖고 그들의 인식 틀을 확장시켜줄 수 있는 새로운 관점에서 상황을 바라볼 수 있도록 돕기
내담자의 감정에 대해 공감적인 이해를 제공하고 그들의 경험을 타당화하기
대인관계 피드백을 제공하기
현재의 상호작용을 명확히하고 치료관계를 사회적 학습의 장으로 이용하기 위해서 '과정언급'을 사용하기
상담자를 향한 내담자의 반응을 체크하기
상담자는 절대 중립적일 수가 없다. 통제 욕구를 내려놓고 내담자가 상담자에게 반드시 부여하게 돼 있는 어떤 역할을 맡으면서 '게임에 참여'해야 한다.
환자들은 자신의 성격을 치료실 밖에 두고 오지 않는다. 그보다는 자신의 전 생애 동안 문제가 되어 왔던 바로 그 스타일로 치료자에게 반응할 것이다. 대인관계적 치료의 관점에서 보면, 이러한 재연이 치료를 위한 이상적인 상황을 마련해 준다. - 단기 역동적 심리치료, 62쪽.
게임에 말려들면 상담은 실패로 끝날 것이고, 게임을 하면서도 게임으로부터 거리두어 상황을 바라볼 수 있으면 교정적 정서 체험과 함께 내적 작동 모델이 변화될 기회를 갖게 된다.
통찰은 경험했지만 1년의 상담 이후에도 대인관계에서 더 나은 방향으로의 변화는 없었던 것 같다. 이전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했다고 느끼지만 그건 통찰 + 현재 배우자와의 관계 때문일 수 있겠다.
배우자와의 관계가 없었다면 통찰은 그냥 통찰에 머물렀을 것이다.
정신분석에서는 훈습을 강조하는데 정작 상담자-내담자 관계성을 다루지 않다 보니 안전한 상담 장면 안에서 훈습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연습해 볼 기회가 없다고 느낀다.
고전적인 정신분석적 접근의 한계로 여겨진다.
단기 역동적 심리치료에 능한 상담자를 만나서 상담자-내담자 관계 갈등을 직접 경험하고 이를 수정할 수 있는 기회를 배울 수 있다면 인격적인 성장뿐만 아니라 향후 상담을 함에 있어서도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결국 인격이 상담자의 상담 도구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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