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에 공부 중인 실용적 정신역동 심리치료에서 변화를 촉진하는 요소로 보는 것은 1. 내적 경험의 탐색 2. 대안적 지각 형성 3. 새로운 행동 시도입니다.
이 중에서 굳이 가장 중요한 것 한 가지를 고르자면 대안적 지각의 형성입니다.
힘든 상황에 처하면 인간은 그 상황을 이해하고자 노력하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스스로가 지닌 몇 안 되는 생각 중 하나를 택해 그 상황을 이해했다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내가 못나서, 우리 집이 가난해서, 그 놈이 나쁜놈이라.. 등등
하지만 이렇게 선택된 생각이 단정적일수록 이 생각은 객관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직장을 나오기 전 풀타임 구직을 여러 차례 시도하였으나 바라던 결과를 얻지 못했습니다.
자연스레 제 능력 부족이나 절실함의 부족, 방향성의 부재와 같은 이유들에 문제의 원인을 귀인하게 되더군요.
하지만 조금 시야를 넓혀 보면 제가 통제할 수 없는 더 많은 이유들이 있을 것입니다. 팬데믹이라든지 한국에서 심리학의 불안정한 위치라든지 하는 것들 말이죠. 대안적 지각입니다.
원인을 찾아 개선하는 것이 어떤 때는 도움이 되지만 지금은 도움이 되지 않는 시기라 느낍니다.
이력서를 계속 넣어 보고, 한두 달 뒤의 일 정도를 생각하여 대비하는 것이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이렇게 생각을 전환하니 태도에도 변화가 생깁니다. 태도의 사전적 의미는 "어떤 일이나 상황에 직면했을 때 가지는 입장이나 자세"인데요.
가장 큰 태도 변화는 현 상황을 위기로 인식하고 이에 대응하려던 자세에서 '지금 상황이 오히려 정상적이니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둔다'는 자세를 지니게 된 것입니다.
돌아보면 2017년에도 퇴사 후 3달 동안 풀타임잡을 구하지 못해 노심초사한 적이 있습니다. 그 때도 지금처럼 파트타임으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죠. 지금은 그 때보다 식구가 한 명 더 늘었지만 근본적으로는 같은 상황입니다.
미래로 눈을 돌리면, 더 나이를 먹어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발생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습니다. 오히려 직장을 잃는 것뿐만 아니라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직업 자체를 잃는 실직이 자연스러운 수순입니다.
소속된 풀타임 직장이 없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지만, 어쨌든 8월까지는 직장 다닐 때만큼의 고정적인 수입이 있습니다. 첫째를 날마다 등원시키며 유대감이 깊어지는 느낌도 좋습니다. 이전에는 가능성으로 여겼던 선택을 실천으로 옮긴다는 데서 느껴지는 약간의 흥분도 좋습니다.
무엇보다 구직 스트레스로 아내 혹은 아이들에게 사소한 일에도 짜증 낼 때가 있었는데, 퇴사 후 '어떻게든 되겠지'라며 눈 앞의 일들에만 초점을 맞추는 지금은 가족과의 관계가 더없이 좋습니다. 아내도 회사 다닐 때보다 오히려 프리랜서로 일하는 지금이 좋다고 말하더군요.
내일모레면 저도 불혹입니다.
긴 인생 산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전체 인생의 절반 정도를 살아보니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역시나 태도임을 실감합니다. 최근에 읽고 있는 <나는 내 나이가 참 좋다>에서 70대인 저자(메리 파이퍼)도 같은 얘기를 합니다.
주어진 사건에 어떤 태도를 지니느냐가 중요하고, 이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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