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대한 열정을 어떤 잣대로 평가할 수 있겠느냐만 몇 일 전 어떤 카페 정모를 다녀와서 느꼈던 것은 "아, 온라인은 생각만큼 그렇게 가벼운 게 아니구나, 이 사람들의 열정 또한..." 따위였다. 뭐, mp3로 듣는다고 그 사람은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말하는 것도 웃기겠지만 그 모임의 사람들은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것이 있었다는 얘기다. 반면 난 내가 음악을 진짜 좋아하기나 하는 건지 자문해 볼 수밖에 없었다. 음악을 얼마나 많이 듣고 많이 아느냐를 떠나서의 문제였다. 그래도 나름대로... 이 얘기가 이들과 무슨 상관이 있기에 지껄이고 있는지 모르겠다. 아마 내가 이 앨범 '역시' mp3와 조악한 헤드폰으로 듣고 있기 때문 아닐까, 이들을 처음 접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정모가 있던 그 날 네 달간의 공백을 깨고 드디어 씨디를 한 장 샀다. 미갈라의 네 번째 정규 앨범이었다. 수중에 돈이 얼마 없었기 때문에 갓스피드 신보는 포기해야 했다. 아니 포기했다기보다 왠지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기질 않았다. 물론 이미 들어본 상태였는데, 그럼 이 앨범이 구렸다는 얘기가 되는 건가... 말만큼 그렇게 녹록치가 않다.
이번 앨범의 수록곡 중 "motherfucker=redeemer"는 이미 발매 일이 년 전에 만들어졌던 곡인 듯하다. 두 장의 라이브 부틀렉을 들어봤는데 하나는 01년 봄의 북유럽 어느 나라였고 또 하나는 같은 해 겨울 오사카 라이브였으니 말이다. 라이브를 들으면서 그리고 이 헛소리를 쓰면서 제일 먼저 생각났던 단어가 '답습', 속된 말로 '재탕'이었다. 그렇다고 이들에게 뭔가 큰 변화, 이제까지 어느 누구도 표현해내지 못했던 어떤 것 등을 기대했던 것은 아니다. 이번 앨범의 사운드적 성격은 두 장의 정규 앨범을 들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예측 가능했던 것이었다. 갓스피드의 신선한 파장은 일부 청자들만의(이후 그들 중 다수가 이들의 추종자가 되었을 것이라 짐작한다) 축복이었고 이들을 별 볼일 없는 밴드로 치부하거나 폄하하는 사람들에게는 록의 재난(?) 정도가 되지 않았을까. 그만큼 이들을 대하는 청자들의 태도는 그 흑백 양상이 뚜렷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전작은 대체적으로 '수작'이라는 분위기가 우세했기에 이번 앨범이 어떤가에 따라 갓스피드의 위치가 검증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예측 가능함이 오히려 이들의 위치를 더욱 미궁으로 빠지게 한 것 같다. 이번 앨범 또한 청자들의 상반된 태도는 변함이 없으니 말이다. 그들을 거의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나조차도 이번 앨범이 내 맘에 드는지 혹은 별로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멤버보다 음악을 더 중시하는 이들의 태도는 인터뷰나 사진 촬영을 극도로 기피하는 것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만큼 이들이 어떠한 사상을 지녔으며 어떤 노선을 추구하고 있는지 알려진 것이 없다. 사실 음악을 그렇게 중시하는 이들이라면 사상, 이념, 정치적 색깔 따위의 음악 외적인 요소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큰 관심을 두고 있지 않은지도 모른다. 이건 뭐, 단순한 내 생각일 수도 있지만 이들은 창조 그 자체에 의미를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평단의 반응을 즐기고 있는 것은? 글을 통해 한두 번 말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일단 창작자의 손을 떠난 작품은 수용자가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설령 창작자가 어떤 의도를 작품 속에 내포시킨다고 하여도 그것은 전적으로 수용자의 몫이라고, 거기서 창작자는 전적으로 배제되어야 하는 것이라고. 그런 생각에 기반하여 이번 앨범이 내게 갖는 의미를 제멋대로 훑어보겠다.
포스트록이라는 용어는 '실험적'이라는 단어와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다면 과연 음악에서의 실험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무한한 창작력을 이용해서 누구처럼 기타의 새로운 가능성을 젖혀 보인다든지, 기계의 힘을 빌어서 고도로 정교화된 소리의 설계를 한다든지 그것도 아니면 아예 음 하나하나를 해체하여 원형의 극한에 도전하든지, 그런 것들이 실험인가? 솔직히 배경 지식 부족하기로 유명한 내 텅 빈 머리로는 무엇이 실험적인지 가려내기 힘들다. 머리로 듣는다는 음악들도 실은 허접한 몇 가지 단순 기준들로 뮤지션들이 들인 공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일순간에 판단해 버리기 일쑤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내 기준에 근거하여 갓스피드는 실험적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누구 말마따나 프로그레시브 좋아하는 사람들 눈에는 오히려 유치하게 보일 수도 있는 곡 구성이라고 하지만 과연 갓스피드의 음악에서 뿜어나오는 독특한 질감과 일치하는 밴드가 또 있을까? 그것은 과거와 연결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과거와 다르고-단지 쌔끈하게 다듬어졌을 뿐이라는 얘기가 아니다-라뎌헤드처럼(키드 에이 이전의 라뎌헤드) 동 시대의 감수성을 대변하지도 않는다. 갓스피드의 음악은 다분히 독자적이다. 비유가 구리지만 가출한 아이 취급하기엔 자기만의 주관이 너무나 뚜렷하고 동시에 성숙하다.
또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그들의 음악은 풍성하다. idm쪽으로 방향 선회한 쉐라비 이펙트나 좀 더 클래시컬한 실버 마운트 자이언, 아방하면서도 댄서블한 기타록을 구사하는 플라이 팬 엠까지 다양한 밴드들과의 직접적인 연관은 그 다양한 스펙트럼을 갓스피드라는 하나의 빛으로 역투영하는 동시에 그 반대로도 작용한다. 서로 주고 받는 영향 하에 퀄리티가 높아진다고는 단언할 수 없지만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것만큼은 확실하다.
긍정적 피드백 속에서도 밴드가 산으로 오르다 추락사하지 않기 위해 한 가지 지켜야할 금기 같은 것이 있다면 아마도 갓스피드를 갓스피드답게 만드는 곡의 구조 양식(?)일 것이다. 그들이 지향하는 음악을 가장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대곡 중심의 서사적 틀, 하지만 외려 그것으로 인해 이들에게 애정이 있다 하더라도 앞서 말했던 것처럼 전작들의 답습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힘든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추종자의 입장에서 보면 전작과의 미묘한 변화, 가령 좀 더 느려지고 치밀해진 곡의 전개가 자아내는 정적인 아름다움이라든지, 점층적 고조의 서사성에서 보다 자유로워져 현 하나하나의 울림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 자기 틀을 공고히 하면서 또한 그것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하는 모순되는 작업을 하는 갓스피드의 창작의 고통을 십분 이해하게 만들고, 또 청자로서 혹은 팬으로서 이들을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준다는 데 그 의의를 두고 싶다.
어째 얘기가 팬으로서의 사명에 충실해진 기분이지만, 이 앨범을 나쁘게 보면 꼬투리 잡을 게 몇 가지 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현실감 있는 것은 밴드 이름을 포기하는 경우이다. 솔직히 갓스피드의 음악은 [lift...]에서 그 정점에 달했다고 할 수도 있다. 더 이상, 풍성해진다거나 청자들의 '새로움에의 욕구'를 충족시킨다는 것이 불가능하게 보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이번 앨범에서 그런 우려가 현실화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갓스피드는 다양한 인간이 모인 공동체인 만큼 해체할 확률도 높다. 갓스피드의 음악적 매너리즘에 스스로 회의를 느낀 나머지 "난 내 음악이나 할래" 하며 한두 명씩 독자 노선을 걸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갓스피드의 사운드는 아무리 울궈먹어도 물리지 않기 때문에 디스코그래피에 종지부를 찍는 이런 극단의 상황은 없기를 바란다.
얘기가 논리 따위는 배제한 채 앨범에 촛점도 맞추지 못하고 겉돌기를 반복한 것 같다, 항상 그래왔지만. 사실 정말 좋아하는 뮤지션이라면 그것을 말로 담아낸다는 것이 얼마나 불경한 짓인가. 하지만, 이 헛소리는 우려 섞인 애정의 글이다. 아직(도) 판단은 이른 것 같다. 아니 언제나 이를 것이다. 03/01/20
부록(원본의 출처는 모르겠음)
godspeed you! black emperor, NME와의 인터뷰, 1999년 7월
Efrim - 내가 자명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서 사람들과 끔찍한 대화를 나누고 싶어한다면, 휴일동안 부모님이 계신 곳에 갈 것이다. 당신이 이끌어 가는 삶이 무엇이든 정당화해야만 한다고 느끼는 건 어려운 일이다. 만일, 당신이 이미 당신이 누구이고 당신이 무엇을 하는지에 대해 평범한 두려움과 의심으로 깨어지기 쉬운 개념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무서운 과정일 것이다. 당신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인류학적인 방법으로 설명해야만 할 때마다 그런 요소들은 쉽게 과장될 수 있다. 그리고 문제가 될 수 있다. 그건 자기보존의 문제가 될 수도 있다.
NME - 당신의 침묵이 이롭지 않은 신비를 창조해 왔다고는 생각하지 않나?
E - 그건 가짜 스타의 신화가 될지 혹은 더 힘을 가지게 될 지에 달려있다고 본다. 만일 음악계를 궁금하게 만들 스튜디오에 갇힌 수수께끼의 변종, 예를 들어 별거 아닌 포스트 록 버전의 왕자 같은 밴드라면 끔찍한 일이 될 것이다. 우리는 신비스런 분위기를 만들려고 의식적으로 노력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가능하면 추상적이고 모호한 면모를 유지하자고 이야기했었다. 여기저기에 흔적들을 거의 남기지 않으려고 몬트리올에서 살면서 느끼는 것이 무엇이든 규칙으로 정해두었다. 내가 어렸을 때, 레코드에 담긴 여러 정보들을 살펴 보며 무척 행복해 했던 기억이 있다. 물론, 그때는 정보가 많지 않았다. 자켓의 뒷면에는 밴드의 사진이 있었고, 가사를 적은 종이가 들어있기도 했다. 레코드 껍데기에 무엇이 적혀있든 매우 기뻤다.
(강경파들의 문화적인 독점에 대한 혐호는 그들의 현재 윤리성을 말해준다.)
E - 당신이 무언가에 빠져든다고 생각하자마자, 그것은 당신이 삶에서 겪는 것들을 달콤하게 변형시켜 가격이 두 배가 되어서 돌아올 것이다. 이것이 미디어의 케케묵은 수법이다.
NME - 생활이 어렵지는 않은지? 돈이 될만한 방법이나 음악을 하는 것 같지 않은데...
E - 물론 그렇다. 하지만, 만일 당신이 비판하고자 하는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그 일을 하지 말아야 한다.
NME - 대중에게 더 많은 음반이 팔리도록 타협할 생각은 없는지? 일단 그렇게 되면 당신들의 음악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텐데... 더 형편이 어려워지면 더 이상 레코딩 작업을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안하는지?
Dave - 그건 모두 정도의 문제다.
E - 그건 소비에 대한 토론 같다. 당신은 곧 '당신들은 굶겠구나'라고 말할 것 같다. (웃음)
'블랙 플랙(Black Flag - 80년대 미국의 대표적인 언더그라운드 펑크 밴드)'같은 밴드들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공연에 와주기를 바랬다. 그들은 FM 라디오 광고를 빼버렸고, 그들은 그런 기관들을 공격하고 싶어했다. 그땐 그건 대단한 도발이었다. '우린 엿같은 라디오에서 우리의 음악이 흘러나오길 바라지. 엿먹어!' 물론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고 그런 일이 생긴다면 또 다른 토론의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런 시도들은 대게 중도에서 좌절되었다. 메이저 레코드 회사들의 엄청난 돈과 언론 검열은 그런 시도들을 쓸어가 버렸다. 독립적인 배급회사들이 매일 파산하는 걸 여러분도 보고 있지 않은가. 재건설이 필요하다. 만일 그런 것들이 폭로되지 않았다면, 우리 같은 밴드들이 많은 소규모 집단들을 이끌었어야 했다. 이 모든 이야기들이 중도에서 중단된 상태이고 아직 끝나지 않았기에 다시 시작해야 좋을 것이다.
(우선, 그들은 단어를 새로 정의할 필요를 느끼는 듯 했다.)
E - 당신이 속한 소집단이 경제적으로 궁지에 몰렸다면, 당신은 그 곳에서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혹은, 당신과 집단의 정체성에 대한 이해를 손상하지 않고 어떻게 그곳으로부터 의견들을 주고 받을 수 있겠는가?
(집단이란 단어는 GYBE에겐 매우 중요한 말인 듯 했다. 'F#a#(Infinity)'에 그들이 쓴 걸 읽어보면, '구성과 결성에 대해 전혀 아무런 이야기가 필요 없고, 다른 사람들에게 최소한의 이야기만으로 충분히 납득시킬 수 있는 것.' 그것은 언더그라운드의 동호회지 개념 이상의 것임에 틀림없다.)
Aidan - '맥도널드'에서 커피를 함께 마시면서 만나는 사람들을 집단이라고 하지 않는다.
Dave - (빈정거리듯) 우린 자주 그러긴 하지만...
E - 기본적으로 말하자면 당신이 알고 있고, 같이 일하고 같이 투쟁하는 사람들은 뜻하는 말이다.
Dave - 서로 의견을 주고받기 위해 모이려고 노력하는...
Aidan -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들
(그들은 너무 자신들의 흥미에만 빠져 산다는 비판을 듣곤 했는데, 이런 변화가 생긴 건 공연 중에 생긴 수확이라고 할 수 있다. 글래스고에서 공연 중 Mogwai의 친절한 지원을 받았고 그들은 'F#a#(Infinity)'의 마지막 트랙을 함께 연주했다. 그러나 그들의 집단은 여전히 밴드 그 자체이다. 얼마나 편안한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Dave는 '아홉 명의 친구들은 -공연 중에는 열세 명- 내가 사람을 더 잘 사귀도록 도와주었어요. 예전보다 더 사교적이 되었지요.'라고 말한다.)
E - 우리는 여전히 사람들이 가능하면 피하려고 하는 상태에 있다. 본능적으로 그런 생각들이 들 때가 많지만 다행스럽게도 우리를 괴롭히는 문제들의 해답을 거의 찾은 것 같다. 그런 문제들은 비참해지는 듯한 느낌이나 집세 같은 지겨운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N - 그래서 결국 당신들 음악이 만드는 추상적인 심상들이 계산서나 자기-불확신으로 귀착되고 만단 말인가?
E - 그러나 그런 어려운 환경에서 위대한 작품이 탄생할 수 있는 것이다.
(그건 분명 그들이 보여주는 보수적 급진주의(?)일 것이다. 그들의 생활을 더 어렵게 만드는 건 생활방식이나 비용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그런 점인 것이다. 'F#a#(Infinity)'의 슬리브엔 '파괴된 기계의 잘못된 역학'이란 제목이 붙은 도표가 그려져 있다. 그 기계는 '두려움','희망', '후회' 그리고 '희망'을 '지속적인 자기-불확신', '돈과 자원의 부족'-절망- 마지막으로 '피할 수 없는 경찰 차/불안의 연속'으로 연결 시켜준다. '일요일 밤의 운전'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E - 우리가 사는 몬트리올의 경찰은 미쳤다. 일요일 밤은 매우 위험하다. 왜냐하면, 당신이 집에 있거나 직장에 있다면 일요일 밤 한 시에 거리에 나와서는 안되는 것이다. 당신이 주차장 옆을 차로 지나가고 있을 때 그곳엔 일곱 명의 경찰이 바퀴벌레처럼 당신같이 낡은 차를 운전하는 풋내기들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A - 그들은 장난감같은 헬리콥터를 사서 그곳을 비춰본다. 그리고는 근처로 날라와서 LSD로 정신이 몽롱해진 골목길에 있는 애들을 겁줘서 꼼짝못하게 만든다.
E - 경찰들은 총을 쥔 겁먹은 애들이나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그들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개념이 없다. 그들의 삶에 대한 생각들은 대부분 미국 TV를 보고 얻은 것들이고 그러므로 모든 경찰은 건달이나 돈의 노예에 불과하다. 모두다. 몬트리올에서 경찰들의 단속을 피하려면 그럴듯한 이유가 없는 한 일요일에 운전하지 않으려고 한다. 왜냐하면 잘못하면 걸리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국을 여행할 때, 주차하려고 할 때마다, 미칠 것 같았다. 평상시처럼 생각했기 때문이다. 몸에 익은 습관이라서. 만일 어스렁거리다가는 의심받을지도 모른다. 주차하면, 죽은 목숨이다. 당신이 쉴 때도 감시를 받는다. 어디에나 그렇다.
(편집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입장에서 보자면, GYBE!는 나름의 시각을 갖고 있었다. 그들은 따로 모여서 살기로 결정한 것이 어려운 결정이었다는 걸 인정했다. 떳떳하게 살기를 거절한 만큼 희생이 따랐다. e-메일이나 레코드 슬리브에 가끔 볼 수 있는 사진들을 보면, 아직 지불하지 못한 계산서들이나 부서진 트럭, 그리고 지저분한 Hotel2tango에서의 어려운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 Efrim은 지금까지도 그가 집으로 돌아갈 때마다 ?겨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E - 작년까지는 더 괜찮았었다. 그리고 공연 중에도 괜찮다. 지금은 학자금을 빌려서 학교를 다닐 때보다 더 형편이 어렵다. 그러나 생활 지원금을 받으며 편안히 지내던 시절보다는 훨씬 더 낫다. 사실, 난 그리 편하지 못했다. 누구도 생활 지원금을 받으며 지내는 것이 편하지 않을 것이다. (웃음) 지금 돈이 충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어려웠던 시절들 보다는 더 낫다. (경멸조로) 밖에 나가서 음악 산업에서 직장을 구하는 것만큼 좋지는 않겠지만.
NME - 당신들의 음악 활동은 도전전인 행위라고 할 수 있는가?
D -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시도하려는 것을 오해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예를 들어 우울하고 패배적인 음악을 연주하는 사람들이라고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슬프지만 희망의 씨앗을 뿌리는 그런 것이다.
(그것은 수 많은 위협에 맞선 도전이다. 그들은 일일이 그것들의 이름을 말하려고 하지 않았다.)
E - 종말은 오지 않는다. 나는 1999년이 1952년이나 1918년 보다 더 절망적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의 음악은 서서히 드러나는 종말의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다. '차는 불타고 운전자는 없으며 시궁창은 수천명의 외로운 시체들로 가득하고, 어두운 바람이 분다.' 'Dead Flag Blues'에서의 읊조림. 그러나 주저앉고 굴복하려 하지 않는다. 잃어버린 땅과 잃어버린 이유들, 죽은 영혼들을 되찾으려는 강렬한 열망이 있다. 'Slow Riot for New Zero Kanada'에 수록된 'Blaise Bailey Finnegan III'에서 길에서 만난 한 사람이 그의 복수에 대한 환상에 대해 이야기 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는 무기를 모으려고 하고, 누군가의 마음을 공격하는 것이 사회적 혼란임을 알려주는 미국을 증오하는 시를 이야기했다.)
E - 우리는 그 사람에게 바칠 노래를 만들기 시작할 때, 흥분했다. 반동적인 어조를 취하려 했고, 그가 이야기했던 많은 것들을 일반화하려고 애썼다. 나는 우리가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다시 '불쌍한 사람'이라고 말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반응으로써 보자면 미친 건 아니었다. 비록 그 사람이 보수적이고 총에 미쳐있는 사람이라고 할 지라도 말이다. 그는 그의 삶에 끼여든 모든 것들에 맞서 그의 거대한 심상을 투영하고 있는 셈이다.
D - 왜 그가 무기를 모으려고 했을까? 1999년에 미국에서 살아가기 위한 극단적인 반응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행동이 비정상적인 열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캐나다는 미국의 지원을 받은 드라마로 유명하다는 것은 국가적으로 우스운 일이다. 최근에 아티스트들이 공중파의 전복적인 힘을 되찾으라는 요청이 여기저기서 들려온다. GYBE!는 그들의 방식으로 심의 받지 않은 관점, 거리의 시인들의 시, 음모의 이론가들, 걱정거리가 많고 두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 방송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의 집단인 것 같다.)
E - 거리에서 집이 없는 정신분열증 환자들과 대화를 나눠 보면, 그들은 보통 많은 사람들이 웃긴 권력 구조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는 데 대해서 많은 이야기를 하곤 한다. 그것은 때로는 은유적인 방식으로, 때로는 문자 그대로 탁자 위에 놓여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에게 있어 그것이 존재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다른 병리학의 관점에서도 확실하다. 그러나 분명히 존재한다. 그것이 우리의 삶이다. 그것이 우리가 매달려 있는 것이고 웃긴 것이다. 그것은 자명하다. 당신도 알다시피. 아마도 그것은 어린 것이고, 확인받기를 원하는 것이다. 아마도 어른이 된 이후의 위기일 것이다. 그러나 우리들 중 누구도 우리가 이런 두려움과 근심에 휩쌓여 홀로 지내는 것으로부터 피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런 점에서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는 걸 알 수 있다는 건 정말 확실하다.
하루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