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하루하루/서평

뇌를 읽다 / 프레데리케 파브리티우스, 한스 하게만

by 오송인 2020. 3. 6.
반응형

제가 싫어하는 두 키워드가 조합된 책입니다. '신경과학'과 '리더십'이 바로그것입니다. 이 책이 표방하는 것은 '뉴로리더십'입니다.


신경과학을 싫어하는 이유는 학문 그 자체가 싫은 게 아니라 이 덜 익은 학문의 성과를 빨리 따먹고 싶어 안달복달하는 사교육 리더들과 심리치료 장사꾼들 때문입니다.


신경과학에 대해서는, 제가 전공자가 아니니 쉽게 말하기 어렵지만 최소한 신경심리학은 그 학문적 역사가 짧습니다. fMRI의 개발 이후에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긴 하지만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이런 생물학적 기반을 통해 인간의 마음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지에 관해 아직은 모르는 것 투성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뉴로피드백을 하면 아이의 집중력이 향상되고, 우울증이 개선되고.. blah blah..


뇌에 기반한 설명은 사람을 설득하기 쉽습니다. 특히나 보이지 않는 마음을 뇌를 통해 가시화할 수 있다는 것은 과학자가 아닌 일반 사람들에게도 상당히매력적인 일입니다. 매력적일 뿐만 아니라 특히 그것을 '파는' 사람에게 돈이 됩니다. 고가의 장비를 통해 뇌 기능을 측정해서 멋진 그래프를 동원하여 그럴 듯하게 보고서로 포장합니다. 그리고 알아듣기 어려운 전문적인 용어로 blah blah 설명하고 다시 어떤 장비를 보여주면서 저걸로 아이 뇌를 치료해야 한다고 blah blah..



이런 회의적인 시각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게 된 이유는 간단합니다. 궁금증을 야기하는 표지와 제목에 낚였거든요. 제가 책을 낸다면 이 책의 일러스트레이터와 카피라이터에게 맡기고 싶네요.


L.jpg
이미지 출처



책을 읽고 난 후에 든 생각은.. 이 책이 그리 허접한 책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10점 만점에 6점~7점 정도는 줄 수 있겠습니다.


이 책의 1, 2부는 리더십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습니다. 1부에서 유전적 기질, 감정 조절, 집중력을 다루고 2부에서는 자기조절, 무의식적 직관, 학습에 대해 다룹니다. 일반적인 심리학적 내용들입니다. 신경심리학을 포함한 뇌과학의 성과를 알기 쉽게 가져와 양념을 뿌리는 용도 정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디 한 번 얼마나 헛소리하는지 보자,라며 팔짱끼고 읽기 시작하다가 감정조절을 다루는 1부 2장 후반부터는 팔짱 풀고 재미있게 봤습니다. 저자가 두 명인데 그 중 한 명이 신경심리학자라 그런지 몰라도 하는 얘기들의 근거가 확실합니다.


또 다른 저자는 저널리스트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드는데, 이야기를 흥미롭게 전달하는 능력이 탁월하네요. 각 장의 시작은 흥미를 끄는 주제입니다. 박치기 왕 지네딘 지단(2장 감정조절), 버락 오바마와 제니퍼 애니스톤의 흡연 습관(4장 습관 관리), 판타스틱4(7장 다양성을 바탕으로 성공하라) 등 각 장의 내용과 관련 있는 에피소드들로 시작하니 기억하기가 더 쉽습니다. 이런 글쓰기 스타일은 저자들이 학습을 다루는 6장에서 강조하는 내용 중 하나이기도 하죠. 강조하고 싶은 핵심포인트가 있다면 이야기를 통해, 이야기에 담아 전달해야 사람들이 잘 받아들이고 기억도 잘 한다는 것이죠.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책의 포문을 여는 1장에서는 최적의 성과를 낼 수 있는 스윗스팟을 찾는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스윗스팟은 기질+환경 요인의 조합에 의해 찾아질 수 있는데 기질적 성향에 맞게 환경을 재배치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예를 들어, 내향성이 강한 사람은 오픈된 업무 환경보다는 밀폐되고 분리된 업무 환경에서 스윗스팟을 찾기 쉽겠죠. 뻔한 내용이라 집중이 잘 안 됐습니다.


업무 효율을 높이는 데 필수적인 감정조절과 집중력에 관한 이야기가 2장과 3장에서 이어집니다.


감정조절을 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잠을 잘 자라, 꾸준히 운동해라, 건강한 식단을 유지해라, 복식호흡을 해라, 감사해라와 같은 뻔한 내용이 다시 나오는데요.


이 장의 후반부가 그나마 흥미로웠던 것은 감정에 이름을 붙이는 작업과 인지적 재평가 작업을 '인지 주짓수'라는 자기들 나름의 비유를 통해 쉽게 전달하고자 애쓰는 게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스트레스를 억제하기보다는 그 스트레스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고 효과적이다. 이것이 바로 인식 주짓수의 목표다. 95쪽.


감정을 억제하려는 노력은 효율적일 수가 없는데 "감정조절은 강력한 대뇌변연계와 약하지만 똑똑한 전전두피질 사이의 싸움"(94쪽)이기 때문입니다. 강력한 대뇌변연계를 이기려면 감정 억제와 같은 정면승부보다 인지 재평가 같은 허용되는 반칙을 사용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주짓수에서는 약간의 반칙이 허용된다고 하는데 사실인가요? ㅎ


감정과 싸우려하기보다 감정에 살짝 입맞추고(감정에 이름 붙이기), 레몬을 레모네이드로 바꾸는 것(상황을 다른 관점에서 볼 수 있게 사고 전환을 이루는 것)이 감정조절에 더 도움이 된다는 것입니다.



3장은 주의집중에 관한 내용입니다. 보통 멀티태스킹을 잘하는 것이 마치 효율적인 일처리를 하는 것인양 생각될 때가 많습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멀티태스킹에 능하다는 통념도 존재하죠. 저자는 첫 번째 통념을 반박하고 있고 두 번째 통념에 대해서도 근거가 없다고 말합니다.


첫 번째 통념과 관련하여.. 뇌는 새로운 자극에 대한 욕구가 강한데, 그래서 주의산만해지기 쉽다고 합니다. 특히나 업무 등에서의 멀티태스킹은 주의분산을 통한 업무 효율 저하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입니다. 한 번 주의를 빼앗기게 되면 다시 원래의 몰입 상태로 돌아오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죠. 이에 멀티태스킹으로 인한 주의산만 상황에 처하게 되면 한 번에 한가지씩 집중해서 일할 때보다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밖에 없습니다. 상식과 배치되는 '새로운' 정보라 더 기억에 남습니다.


주의집중을 높일 수 있는 전략으로서 몇 가지를 제시하고 있는데, 핸드폰 알람을 20분 단위로 설정해 놓고 그 20분 동안 최대한 집중하고, 20분이 지나면 5분 딴짓하고 하는 식으로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생각이 유용하게 느껴졌습니다.


주의집중을 향상시키는 전략으로서 마음챙김도 제시됩니다. 저자들의 마음챙김 정의가 간명하여 가져옵니다.


우리의 직접 경험에 귀를 기울이는 동안 그것과 무관한 생각을 차단하는 행위다. 139쪽.


마음챙김은 좁게 보면 일종의 의도적 주의 통제 노력입니다. 이 노력이 지속되면 여러 긍정적인 결과가 야기됩니다. 가장 근본적으로 마음챙김을 통해 생각이 방황하지 않으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생각의 방황은 실상 과거와 현재 상태를 통해 미래 위협을 대비하려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발생할지 안 할지도 모르는(안 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은) 미래 위협에 대비하려 애쓰는 것을 내려 놓으면 기분이 개선되고, 기분이 개선되면 주의집중을 포함하여 학습과 기억력이 향상된다는 논리인 것 같습니다. 생각의 방황이 많은 anti-mindfulness한 삶을 살고 있는 제게 와닿는 부분이었습니다.



4장부터 2부가 시작되는데 뇌의 배선을 재배치하는 것과 관련됩니다. 즉, 뇌가소성을 자기조절, 무의식, 학습의 맥락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책의 모든 장 중 습관 형성 및 자기조절을 다루는 4장이 제일 유익했습니다. 요즘 영어 공부 때문에 제가 더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기도 하지요.


뇌의 관점에서 기저핵에 저장된 각각의 습관은 식기세척기처럼 노동력 절감 기능을 한다. 160쪽.


좋은 습관이든 나쁜 습관이든 뇌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유용성이 있습니다. 자동화가 안 돼 있어서 매순간마다 의식적인 노력을 쏟아야 하는 것은 생존에 도움이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관심 있는 것은 나쁜 습관을 제거하고 좋은 습관을 형성하는 것일 텐데, 그 기본 골격은 다음과 같습니다. 목표 수립 - 목표 도달 과정의 세분화 - 지금 당장(!) 시작 - 보상 - 모니터링하며 유지하기.


뭘 하든 재미가 없으면 지속하기가 어렵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데 저자들은 이를 조금 더 명확하게 표현합니다. 즉, 목표에 감정(쾌/불쾌)이 실려 있지 않으면 그 목표를 뇌가 중요한 것으로 여기지 않아 목표 달성에 실패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감정요인 없이 목표를 마음에 간직할 수 없으며, 목표가 없이는 의사결정에 있어 어떤 정보가 중요하고 중요하지 않은지를 판단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205쪽.


감정가가 실린 목표를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목표에 가까워지기 위한 작은 한 발자국이 무엇인지 생각하는 것이 제가 볼 때 더 중요합니다. 목표 자체도 구체적이어야 하지만 도달 과정은 더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목표 달성까지 한 발자국 한 발자국 어떻게 갈지 최대한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편안한 안주 상태에서 자극을 받은 두뇌는 경보를 울려 대뇌변연게의 파수꾼인 편도체를 깨울 것이고, 위협 반응이 시작될 것이다. 174쪽. ...편도체 바로 옆을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지나간다. 175쪽.


뇌는 상황 변화를 일단 위협으로 간주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에 편도체에게 들키지 않을 만큼 미세한 변화에서부터 시작해야 하고, 변화의 정도를 조금씩 높여 나가야 합니다. 처음부터 열 발자국 떼는 것이 아니라 한 발자국에서 시작해서 수위를 높여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발자국을 뗐으면 유지해야 하는데 유지에 도움이 되는 것이 제가 일전에 말한 실행의도 전략입니다.


실행의도는 if/then 전략입니다. 발을 어떻게 뗄지 생각했더라도 언제 뗄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앞서 20분 일하고 핸드폰 알람 울리면 5분 딴짓하기가 이에 해당합니다. 금연하려는 사람이 담배가 땡길 때 물을 마시면 욕구 지연하고 그래도 안 되면 사탕을 먹는다고 규칙 짜놓는 것이 실행의도입니다. 이런 식으로 기존 신호에 새로운 긍정적 행동을 붙여 이전의 나쁜 습관을 수정할 수 있습니다.


저는 영어 공부의 양을 너무 많이 잡아서, 2달 동안 영어 공부 지속하다가 2~3주 유지 실패했습니다. 다시 양을 대폭 줄여서 지속하는 중입니다. 편도체 바로 옆을 까치발을 들고 살금살금 지나가라는 비유가 요즘 말로 뼈를 때리네요.



5장은 이성과 의식만큼이나 감정과 무의식이 의사결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내용입니다. 어떤 분야의 전문가일수록 무의식에 기반한 직관을 믿을 필요가 있는데, 전문가의 직관은 "습관으로 굳어진 분석력"(206쪽)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전문가적 경험이 쌓이면서 뇌가 전문가적 판단에 적합하게 자동화된다는 것이죠. 흔히들 드는 비유지만, 운전 배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직관이 축적된 전문성과 관련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학습이 6장의 주제가 됩니다. 바로 위에서 목표 수립이 감정과 관련돼야 한다고 했죠. 영어 공부는 재미있어야 한다고 이전 글에서 강조하기도 했습니다. 재미없는 목표를 오래 유지하기란 어렵습니다.


..몇 년 째 영어공부에 매달려온 한 남자는 언어와 취미에서 접점을 찾아낸 후에야 비로소 학습에 대한 열정에 불을 지필 수 있었다. 242쪽.


학습은 본질적으로 감정적인 과정이라는 게 저자들의 주장입니다. 설득력이 있죠. 학습을 통해 뇌가 그에 맞게 변화하려면 학습이 재미있어야 합니다. 각자의 재미 포인트를 찾는 게 중요해지겠죠. 혹은 자기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뭔가를 걸고 시작하시는 것도 방법입니다. '내가 언제언제까지 뭘 안 하면 (내가 제일 소중히 여기는 무엇)을 내놓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해 보세요. 효과가 좋습니다. 이 경우에는 위협 포인트를 찾는 게 되겠지만.



7장부터는 비지니스 현장의 리더 입장에서 효율과 성과를 높일 수 있는 전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 미시에서 거시로 뛰어넘는 느낌이 있고, 6장까지와의 내용과도 별 연결성이 없다는 느낌입니다. 내용도 좀 진부합니다. 각각의 사람이 지닌 기질과 장점에 따라 그들을 성장시켜라(7장), 사회적 관계 안에서의 자율성, 공정성, 인정욕구를 중시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보상을 주라(8장)는 등의 내용입니다. 책의 평점을 깎아 먹는 요인입니다.



저자들이 주로 강의하는 대상이 기업 CEO나 인적'자원' 관리하는 부서의 관리자 등인 것 같네요. 그래서 7장부터 리더쉽 실전 전략을 제시하는 것 같은데, 차라리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하는 신경심리학 서적이 됐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기업 가서 강의하는 게 돈이 더 잘 벌리긴 하겠지만..(쿨럭)


어쨌든 간에 이렇게 이해하기 쉽게 심리학적 성과를 전달하는 능력에는 박수를 보냅니다. 이 내용 저 내용 다루다 보니 이 서평만큼이나 책 내용의 응집력이 약한 편인데, 어려운 내용을 쉽게 전달하는 능력에서만큼은 저자들이 탁월해 보입니다.


2018-10-28에 작성된 글입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