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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하루/서평

상관없는 거 아닌가? / 장기하

by 오송인 2020. 12.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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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에게 확실한 것은 매 순간 죽음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뿐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정면으로 마주했을 때 슬퍼지지 않기는 매우 어렵다. 어쩌면 시간이 지남에 따라 모든 것이 나아지고 있다는 믿음은, 죽음을 잊기 위한 몸부림인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눈앞에 놓인 불행을 어떻게든 헤치고 나름의 행복에 닿고자 막연한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중략) 행복 앞에 뾰족한 수가 없다는 점에서 결국 모두가 평등한 셈이므로 나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을 보며 부러워할 이유는 전혀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남과 나 자신을 비교하여 주눅드는 일이 잘 없다......면 참 좋겠지만 실상 전혀 그렇지 않다.

바다 위에서 서퍼가 할 수 있는 일, 딱 그 정도가 세상에서 한 사람이 가진 몫이 아닐까. 서퍼는 바다의 입장에서 보면 먼지에 불과하다. 부표나 지푸라기와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하지만 서퍼는 바다 위에서 즐겁다. 바다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도, 작게나마 나름의 역할을 하며 재미를 찾는다.

아마 남들도 마찬가지겠지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거냐'고 나 자신에게 묻는 일이 많다. (중략) 물론 대부분의 경우 나는 답을 하지 못한다. 그럴 때면 막막해진다. 빨리 뭘 어떻게 좀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조바심이 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여태껏 살면서, 멋진 순간들은 다 내 의도나 기대와 무관하게 찾아왔다.

하루하루 열심히 산다고 살지만 내가 소중히 여기는 가족도 내 일도 언젠가는 이별해야 하는 순간이 반드시 온다고 생각하면 못내 센티멘탈해진다. 로샤 검사에는 음영색채 혼합 반응이라는 게 있는데 이 반응을 하는 사람은 기쁜 일에도 충분히 기쁠 수가 없는 게 기뻐하는 바로 그 순간 불행을 예감하기 때문이다. 불행은 근본적으로 죽음이다. 모든 변화에는 죽음이라는 종착지가 있다고 생각하면 장기하가 말했듯이 슬퍼하지 않기가 매우 어렵다.

올해 너무 달린 결과 11월 중순부터 번아웃이 좀 왔다. 음영색채 혼합 반응 같은 날을 보낼 때가 평소보다 많아졌는데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영어 공부와 같은 핵심적인 루틴을 유지하되 더하기보다 빼기의 자세를 취하면서 삶을 좀 느슨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호우지시절이란 말처럼 장기하의 책이 시의적절하게 태도 변화에 많은 도움이 됐다. 지금 시점에서 내게 꼭 필요한 그런 책이었고 읽는 순간순간 왠지 코끝이 찡했다.(물론 웃긴 대목이 더 많다. ㅎ)   

팬데믹이 오기 전에도 임상/상담 취업 시장은 열악했고 팬데믹이 오고 나서는 그 열악한 일자리마저도 감소하는 추세라 외벌이하는 입장에서는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런 불안을 안고 "빨리 뭘 어떻게 좀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에 조바심"을 내며 올해 그렇게도 일을 벌인 것 같다. 돈 되는 일이든 전문가로서의 능력 제고를 위한 스터디든 상담심리사 자격 취득이든 영어공부든 간에 말이다. 특히 상담심리사 2급 자격 취득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어갔는데 상담을 잘하고 싶다는 마음도 분명 있었지만 안전장치를 만들어놓자는 마음도 컸다. 정건1급, 임상심리전문가가 있어도 불안한 마음은 상담심리전문가를 취득한다 한들 달라지지 않을 것을 알지만 그럼에도 일단 발을 들였으니 따고 나서 생각하자는 마음이었다. 다행히 결과는 좋았다.

하지만 장기하가 "아랫돌 빼서 윗돌 괴기"라고 삶을 빗댄 것처럼 이런 강박적인 삶에는 현재가 없다. 강박이 좇는 것은 (결코 잡히지 않을) 미래의 영광이지 현재의 충만함이 아니다. 오로지 미래만 있고 미래만 있는 삶은 늘 불안한 삶의 다름이 아니다. 나를 번아웃 시킨 것도 결국 이 불안이다.  

번아웃에는 이점도 있는데 이대로 살면 안 된다는 위험신호로서 번아웃을 해석할 수 있을 때 그렇다. 전문가 취득 이후에 3개월 잠깐 쉬었고 이 때도 지금의 아내를 꼬시느라 공사다망하였으니 대학원 입학부터 지금까지 10년이란 시간 동안 제대로 쉬어본 적이 없다.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가 묻지 않고 앞만 보며 우직하게 달려왔는데, 일에 대한 약간의 회의마저 밀려온 참이다. 이 직업이 내게 맞나? 전문가 5년차에 이런 생각이 들 줄 누가 알았겠는가.

습관이 무섭고 내년에도 아마 올해처럼 바쁘게 살 확률이 그렇지 않을 확률보다 높지만 최소한 바쁘게 살지 않아도 괜찮다는 마음을 의식적으로 되뇌려고 한다. 상관 없는 거 아닌가 를 읽으면서 그렇게 사는 것도 괜찮은 방법이라는 위로를 받았다. 파도 타기 비유가 참 적절한데 내가 열심히 한다고 해서 파도가 멈출 리 만무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그 상황을 받아들이고 그 상황과 함께 살아나갈 방법을 궁리하는 것이다. 숙련된 서퍼처럼 파도타기를 잘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바닷물에 머리를 처박는다 한들 어쩌겠는가? 그 때 일은 그 때 가서 생각하면 될 일이다.  

불안에 맞서고자, 정확히 말하면 죽음을 회피하고자 열심히 살지만 그렇게 회피하면 나중에 더 크게 한방 먹게 돼 있다. 불혹이 코 앞인데 어떻게 삶이 내게 한방을 먹일지 혹은 무난히 넘어갈지 호기심이 생기기도 하고 조금 무섭기도 하다. 미래는 예측 가능하지 않으니 일전에도 말했듯이 그저 바로 앞의 한발자국 정도를 내다보면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 최선일지 모른다. 많은 일을 해내려던 관성을 억누르면 억제의 역설에 직면할 수 있으니 그건 그것대로 괜찮고 '좀 덜 하거나 안 해도 물론 괜찮고 아무 문제 없다' 싶은 마음으로 사는 것도 괜찮아보인다. 릴케의 시(The Archaic Torso of Apollo)에 "너는 삶을 바꿔야만 한다!"라는 구절이 있다던데 바꾸는 것도 좋고 그렇지 못 해도 괜찮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삶은 늘 예상치 못 한 결과의 연속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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