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에 관한 생각: 저자들도 말하고 있지만, 인지적 편향이 이렇게 큰 영향을 미치다니 인간은 왜 이리도 어리석은가! 라고 통탄한다면 책을 읽지 않았거나 책을 잘못 읽은 것입니다. 인간이 지닌 편향이 때로는 효율적으로 때로는 역기능적으로 작동하는 것을 보면서 '인간적'이란 말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게 만든 책이에요. 여러 인지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주어진 조건하에서 '이만하면 대체로 잘 기능하고 있는 인간'이란 생각이 듭니다.
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 다른 어딘가에서도 말했지만 이 책을 읽고 나서 조현병을 비롯한 정신장애에 대한 저의 생각이 역시나 협소했다는 것을 느꼈어요.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전문가라 하더라도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된다는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책이고, 상담에서 내담자의 주관적 경험을 이해했다고 생각할 때 사실 전혀 이해하지 못 했을 가능성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함을 생각케 한 책입니다.
상관없는 거 아닌가?: 30대 내내 가열차게 앞만 보며 달려왔는데 그 과정에서 얻은 것도 많지만 역시나 잃은 것도 비등하게 많습니다. 요즘 읽고 있는 카렌 호나이 책과도 통하는 지점이 있는데, 허구의 이상적 자기를 그려놓고 거기 자기를 끼워 맞추려고 아둥바둥 사는 것이 부질없을 뿐만 아니라 얼마나 자기와 타인을 괴롭게 할 수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자기만 괴로우면 괜찮은데 가족에게까지 스트레스를 주고 아이들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니 이래저래 이중삼중으로 '악'입니다. 이 책에 제시되었고 제가 해석한 장기하의 태도는 자기를 너무 몰아붙이지 않으면서도 충분히 괜찮을 수 있다는 일종의 선언으로 들립니다. 중요한 건 더 많이 더 완벽해져야 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이상향이 아니라 나와 관계 맺고 있는 가족, 내가 이미 지닌 것들에 대한 감사임을 감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해준 책입니다. 그 자신도 얘기하고 있듯이 장기하는 남들을 잘 웃기는 사람인가 봅니다. 이 책에서도 꽤나 웃긴 화술을 구사하고 있고 피식피식 웃게 되는 지점이 상당히 많은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 덮으면서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어쩔 수가 없었네요. 이 글은 사실 이 책에 대한 얘기를 한 번 더 하고 싶어서 쓰는 것입니다. ㅎ
못 참는 아이 욱하는 부모: 제 아킬레스건은 육아입니다. 독이 되는 부모라는 책도 있던데 제가 그 독이 되는 부모입니다. 아이를 아이로 보지 않고 과잉컨트롤하려 하거나 욱하는 자신의 모습을 볼 때마다 화들짝 놀라곤 합니다. 오은영은 평소 잘 살아온 사람이라 하더라도 육아에서 스스로의 미숙한 모습이 불거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고 봅니다. 어떤 사람은 이 때 스스로의 미숙함을 부인하고 어떤 사람은 이를 계기로 삼아 인격적인 성숙으로 나아갑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부인하는 모습을 보이고 그래서 원가족 문제가 대물림됩니다. 저도 아직까지는 머리로만 알고 행동은 부인의 형태를 취할 때가 많습니다. 문제의식은 가지고 있지만 행동변화가 되지 않는 고집불통의 모습이 우세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소한 이 책을 접한 후 지난 2-3주간 아이들에게 한 번도 욱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양육에서 그리고 특히 감정조절에서 문제가 있는 사람임을 인정하고 변화를 시작하는 계기가 된 책입니다. 이 변화를 지속할지 아니면 다시 부인으로 돌아갈지에 따라 제 삶의 많은 부분이 영향을 받을 것임을 압니다. 임상심리전문가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습니까.(돈도 지닌 분들 부럽습니다 ㅜ) 삶의 우선순위를 양육에 두고 아이들이 신뢰하는 일관성 있는 아빠가 되려 합니다. 집에서 젬병인 아빠가 무슨 상담을 하겠어요.
올 한 해 읽은 책의 전체 리스트와 각각의 리뷰는 아래 링크에서 볼 수 있습니다.
www.notion.so/daa9a330f226405083dd6b8666a2b1d1?v=f6c91ec2eeb94a60874ecc7430ef366b
2020/07/02 - [하루하루/서평] - 2020년 상반기 책 결산
2020/09/26 - [하루하루/서평] - 생각에 관한 생각 / 대니얼 카너먼
2020/09/11 - [하루하루/서평] - 나는 자주 죽고 싶었고, 가끔 정말 살고 싶었다 / 아른힐 레우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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