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올해 잘된 것
1) 독서: 원서까지 포함하면 거의 60권에 달하는 책을 읽었습니다. 책을 왜 읽는가 라는 물음에 그저 재미있으니까 읽는다 라고 자문자답할 때가 많았는데, 올 한해 한 달 4권이라는 대략적인 목표치를 설정하여 책을 읽는 과정에서 책이 사고의 조망을 넓혀서 삶에서 경험하는 다양한 어려움에 보다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게 돕는다는 것을 명확히 알게 됐습니다. 삶을 계획하고 조직화하는 능력이 많이 부족했는데 자기계발서를 꾸준히 읽다 보니 이런 부분에서 가야할 방향과 실행 방식이 한결 명확해진 느낌입니다. 또한 너무 doing 모드로 살면 정서적 신체적으로 상당한 어려움에 봉착할 수 있다는 것을 경험하면서 이에 대한 대안적 비전을 책을 통해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통제적인 제 성격이 육아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을 깨닫고 변화를 시작한 것도 책 덕분이고요. 책이 삶을 보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은 이미 많은 사람의 삶에서 입증된 결과입니다만 이것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는 것이 의미 깊고 앞으로도 꾸준히 책을 읽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2) 스터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전공 관련 스터디를 늘 3-4개는 꾸려 왔습니다. 한글책 스터디가 둘, 원서 스터디가 둘이었으니 꽤나 박식해진 상태여야 할 것 같은데 오히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모르는 게 많음을 체감합니다. 그래서 강박적으로 더 많은 공부판(?)을 벌이려 하는 내적 추동을 억제하느라 상당히 애를 써야만 했습니다. 하고 싶은 공부는 많지만 시간은 한정적이기 때문에 우선순위를 정해서 꾸준히 공부했습니다. 올해 완독한 책 목록은 아래와 같습니다.
Collaborative Case Conceptualization
Mindfulness and Psychotherapy
Running on Empty
Attachment in Psychotherapy
The First Interview
Clinical Neuropsychology
Psychological Assessment with the MMPI-2/MMPI-2-RF(3rd Edition)
초보자를 위한 인지행동치료
한낮의 우울
초심상담자를 위한 상담사례 이해와 슈퍼비전
심상을 활용한 인지치료
자아와 방어기제
대상관계이론 입문
자살하려는 마음
현대 심리치료와 상담 이론
해리 스택 설리반의 정신치료 기술
애착
3) 상담심리사 2급 취득: 올해 1월까지 대략 2/3 정도 자격 요건을 채운 상태였고, 이 때까지만 해도 여러 이유로 인해 더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이 많았습니다. 팬데믹까지 겹치면서 안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으나 일단 시작한 것은 가급적 끝매듭을 짓자 라는 것이 제 삶에서 중요한 원칙이기 때문에 결국 6월부터 마음 다잡고 준비해서 11월에 합격했습니다. 올해는 이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입니다.
4) 배우자와의 관계: 둘째가 태어난 작년에 비해 2020년은 한결 배우자와의 관계가 돈독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둘째 태어나고 이직까지 겹치면서 냉전 상태가 지속될 때가 종종 있었는데 2020년은, 와이프 평가에 따르면, 상대적으로 좋았네요. 여느 가정처럼 한두 번 크게 싸우기도 했지만 어쨌든 제 경우에는 와이프를 이백프로 신뢰하고, 경제권을 비롯한 가계 운영에 있어서 와이프의 결정을 존중하며, 웬만하면 와이프 하자는 대로 하는 편이기 때문에 사실 싸울 일이 별로 없습니다. 2019년엔 아무래도 저나 와이프나 갓 태어난 둘째 캐어의 여파로 심신이 지쳐서 더 갈등이 잦았던 것 같습니다.
이 역시 많은 사람이 한 얘기지만 사랑은 상대방이 좋아하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기보다 싫어하는 행동을 하지 않는 것에 가깝습니다. 어떤 행동을 하지 않았을 때 와이프가 싫어하는 모습이 반복될 경우 저는 그 행동을 목록으로 만들어서 날마다 이행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가정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사소한 노력이지만 이런 사소한 행동이 장기적으로 부부관계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5) 식사: 저는 대장이 굉장히 예민한 편에 속하는 사람이라 밖에서 뭘 사먹으면 열에 아홉은 속이 안 좋습니다. 그런데 팬데믹으로 인해 안 그래도 적었던 외식 빈도가 거의 0으로 수렴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위장 개선이 이루어졌습니다. 잠 잘자고 밥 잘 먹고 똥 잘 싸면 육체적으로 건강하다고 볼 수 있겠는데요. 건강한 집밥 먹고 똥 잘 싼 한해였습니다. ㅎ 제가 노력해서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와이프와 장모님 공이지만 그래도 올해 어떤 음식을 먹느냐가 삶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올해 잘된 영역으로 넣습니다.
6) 영어공부: 영어공부로 시작해서 영어공부로 끝난 한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독해와 리스닝에 집중했고 올 초와 말에 쉐도잉을 각각 세 달 정도 해보기도 했습니다. 11월에 텝스 시험도 한 번 봤고요.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텝스 점수를 기준으로 하면 독해는 60%ile 리스닝은 40%ile 정도입니다. 그냥 평균 수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어공부 자체가 삶의 핵심으로 완전히 자리매김했다는 데 의의를 둡니다. 직업은 변할 수 있겠으나 천재지변급의 이변이 있지 않은 이상 영어공부 루틴에서의 이탈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해 봅니다. 제가 중시하는 가치 중 일부가 건강과 지적 호기심입니다. 영어공부는 독서와 함께 지적 호기심의 메인 파트입니다. 영어공부를 통해 지적 호기심이 충족되는 과정 자체가 즐겁습니다. 그래서 꾸준히 할 수 있고요. 2021년에도 영어공부는 지속됩니다. 8월 14일이면 영어공부한 지 만으로 딱 3년 채우네요.
2. 올해 잘 안 된 것
1) 육아
- 작년과 같은 문제를 반복하였을 뿐만 아니라 더 악화를 경험했습니다. 첫째가 만 3살 될 무렵부터 자기주장이 강해지고 둘째를 미워하는 행동이 반복됐는데 이런 것들에 매우 권위주의적인 방식으로 어른스럽지 못하게 대처했습니다. 욱해서 언성 높일 때가 많아 첫째한테 상처를 많이 줬고, 내 해결되지 못한 문제를 첫째한테 떠넘긴 것에 대한 자괴감이 컸습니다. 연말에 오은영 박사 책 읽고 깊이 반성하고 지금은 욱하지만 않아도 평균은 간다는 마음으로 최대한 자제하고 있습니다. 한 달 정도 됐는데 와이프가 보기에 아직까지는 잘 하고 있다 하네요. 부끄러운 모습을 오픈하는 것은 문제를 인정하여 변화시키고자 하는 노력의 일환입니다. 상담을 받아야겠단 필요성이 강하게 드는 상황인데 돈도 돈이지만 와이프가 남편의 칼퇴를 매일 기다리는 만큼 시간 빼기가 어렵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나마 장모님이 그간 전폭적으로 도와주셨어도 이 정도인데 장모님이 집에 오지 않는 주말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2) 과도한 핸드폰 사용
- 현대인의 고질적 병폐와 같은 과도한 핸드폰 문제를 저라고 비켜갈 재간이 없습니다. 이것도 작년과 같은 문제의 반복입니다. 그렇다고 해야 할 일들을 못 하는 수준에까지 이른 것은 아니지만 핸드폰으로 딴짓할 시간에 다른 것을 했더라면 정말 많은 일들을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올해도 아마 같은 문제가 반복될 것으로 예상이 되고 사실 고쳐야겠단 생각도 크게 들진 않습니다. 다만 업무 중에 해야 할 일들이 핸드폰 딴짓으로 인해 밀리는 일이 없게 하고 집에 들어가서도 핸드폰은 어딘가 안 보이는 곳에 넣어둬서 가능한 한 불필요하게 핸드폰을 보지 않도록 노력할 필요는 있겠습니다.
3) 마음챙김
- 올해 1월부터 4월까지 틈틈이 하다가 이후에는 끈을 놓아버렸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doing mode였던 제게 마음챙김은 계륵 같은 것입니다. 실생활에서 이걸 한다고 해서 눈에 띄게 무언가 좋아지지 않고(장기적으로는 물론 다른 얘기일 테지만) 재미도 없습니다. 그래서 포기합니다. 다다를 수 없는 이상을 좇기보다 그냥 생긴대로 사는 게 정신건강에 이로울 것 같습니다.
4) 일과 가정의 밸런스 붕괴
- 상담심리사 2급 준비보다 더 많은 시간을 들인 것이 종합심리평가 수퍼비전입니다. 케이스당 보고서 수정까지 평균 8시간 정도 걸리는 작업이었고, 스스로가 너무 높은 기대 수준을 설정한 나머지 상담심리사 2급 자격 취득한 11월에는 긴장이 풀리면서 번아웃이 오기도 했습니다. 최저 시급도 안 나오는 비용이었지만 공부하는 게 재미있었고 수퍼바이지들께서 도움이 됐다고 연이어 신청해 줄 때면 뿌듯한 마음도 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갈수록 지치고 재미를 잃어갔기에 더이상 수퍼비전은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직업 영역에서 비교적 잘 기능하고 있음에도 무언가 더 많은 걸 이루고 더 많은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습니다. 그래서 수퍼비전도 하고 스터디도 하고 심지어 네이버 엑스퍼트에서 온라인 상담도 수십 건 했습니다. 하지만 오버로딩이 되면서 재미를 잃었습니다. 두려움에 의해 추동되는 행동은 지속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2020년 일기에는 악몽에 관한 기록이 많은데 육아에서 나타나는 미숙한 제 모습을 직시하는 것과 고용 불안정성을 상쇄하기 위한 커리어 개발 이 두 가지에 수반되는 두려움이 악몽의 주요 테마로서 반영되었다고 봅니다. 오버로딩으로 아이들에게 더 짜증을 내기도 했고, 이렇게 취약성과 한계를 수용하지 않는 신경증적인 태도로 살면 안 된다고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3. 어떻게 살 것인가?
제 비전은 내가 즐거우면서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유익이 되는 그런 활동을 지속하는 것입니다. 이 블로그에서 티내며 하고 있는 여러 스터디도 그런 비전의 일환입니다. 앞으로도 블로그를 통해서 다양한 스터디를 기획하고 함께 공부할 생각이에요.
올해의 또 다른 비전 혹은 방향성이라 할 만한 것은 상관없는 거 아닌가? 하는 태도입니다. 사실 한 사람의 성격이란 것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2019년의 문제가 거의 그대로 2020년에도 반복된 것을 이 글 작성을 계기로 재확인하면서 반복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애쓰기보다는 그렇게 되는 데는, 그리고 성격이 그렇게 된 데는 다 나름의 합리적인 이유가 있음을 수용하고 이제까지와는 다른 방식의 선택을 하는 것을 권장하지만 꼭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상관없다는 전략을 취하기로 했습니다. 이게 덜 부담되고 보다 현실적인 방법인 것 같아요. 일을 줄여야 하나? 생각해 보지만 이 생각은 늘 반복돼 왔습니다. 저는 제가 일을 못 줄이는 인간이란 걸 너무나 잘 알고요. 일을 못 줄여서 스트레스 받을 바에야 기왕이면 스트레스 덜 받는 일을 우선순위에 두려고 합니다. 수퍼비전을 빼고 그 자리에 영어공부 시간을 더 채워 넣든가 하는 식으로요. 무엇이 됐든 재미있는 일들에 더 시간을 할애하고자 합니다. Toggl을 통해서 시간 사용을 기록하거나 노션을 통해서 올해 건강/영어공부 목표와 매일의 습관을 모니터링하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
마지막으로 아직 구상 중이긴 한데 올해는 나와 가족을 더 알아가는 데 방점을 두기로 했습니다. 이것은 나중에 다른 글에서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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