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례개념화는 어떻게 하는 것인가? 라는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주는 책입니다. 사례개념화만 집중적으로 다루는 책이 생각보다 많이 없는 편인데 그런 상황에서 초심 상담자나 임상가에게 도움을 줍니다.
저는 이 책을 상담심리사 2급 면접 준비하다가 알게 됐고, 상담심리사가 되기 위해 수련하는 사람들이 한 번쯤은 보는 책인 것 같아서 기억해 두었다가 지난 1월부터 스터디를 통해 함께 읽었습니다.
다른 글에서도 얘기했지만 사레개념화의 개념과 세부적인 요소들을 다루는 1장부터 4장까지의 내용은 정말 알차다는 느낌입니다. 어렴풋하게만 알고 있었지 상세히 도식화해 본 적은 없는 내용들이 그림이나 표를 통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기 때문에 머릿속에 사례개념화의 기본 틀을 다잡는 데 유용합니다.
저자는 진단적 / 평가적 / 임상적 및 문화적 / 치료적 공식화(formulation)를 사례개념화의 네 가지 기본 요소로 언급하며 1-4장에서 하나 하나 설명합니다.
진단적 공식화는 말 그대로 진단을 내리기 위해 precipitant -> pattern -> presentation을 기술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pattern은 ..is a succinct description of a client’s characteristic way of perceiving, thinking, and responding로 정의됩니다. 지각하고 생각하고 반응하는 저마다의 고유한 성격 특성인 것이죠. 치료적 공식화는 궁극적으로 이 패턴의 부적응적 특성을 변화시키고자 함입니다.
임상적 및 문화적 공식화는 패턴의 형성과 유지를 설명합니다. 즉 유발요인(predisposition)과 유지요인(perpetuants)를 식별하는 과정입니다. 저는 읽으면서 이 둘을 명확히 구분하는 게 가능한가 싶었는데 이 책의 어딘가에도 구별이 어려울 수 있다는 말이 있었던 것 같아요. 어찌 됐든 predisposition에는 꼭 부정적인 속성만 포함되지 않습니다. 환자나 내담자가 지닌 강점이나 보호요인이 포함될 수 있습니다.
상담이론의 특색은 주로 이 predisposition과 treatment focus(치료의 방향성이자 패턴을 변화시킬 수 있는 최적의 경로입니다)에 나타납니다. 예를 들어 생리심리사회적 사례개념화에서는 당연히 생물학적, 심리적, 사회적 predisposition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이에 초점 맞춰 치료적인 개입을 할 것입니다. 인지행동적 사례개념화에서는 maladaptive cognitions, maladaptive behaviors를 확인하여 개입할 것이고, 단기역동 사례개념화에서는 cyclical maladaptive pattern에 대해 마찬가지로 할 것입니다.
이 책의 고유함은 다섯 사례를 통해 주요 심리치료 이론 각각에서 어떤 식으로 predisposition과 treatment focus를 기술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사례개념화의 어려움을 경험하는 초심 상담자가 수퍼비전 앞두고 보고서 정리하면서 들춰보기 좋은 책입니다.
치료적 공식화는 진단적 공식화와 임상적 공식화가 잘 돼 있다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입니다. 저도 늘 반성하는 부분이지만, 심리평가 보고서에서 치료 제언이 잘 안 쓰이거나 피상적으로 쓰이는 것은 치료 경험이 부족해서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는 진단적 정확성을 확보했다 하더라도 임상적 공식화가 제대로 안 됐기 때문 아닌가 하는 생각을 요즘에 많이 합니다. 무엇이 문제고 그 문제가 어떻게 발달해 왔고 이제 뭘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중 가장 마지막 질문에 대한 답이 치료적 공식화인데, 문제를 알았더라도 문제가 발달하는 방식은 저마다 다르기 때문에 그 개별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라는 질문 앞에서 멍해질 수밖에 없겠죠.
임상적 공식화까지 잘 돼 있다 하더라도 이 책에서 제시하는 치료적 공식화의 세부 요소들을 숙지하고 있다면 조금 더 유용할 수 있겠습니다. 치료의 초점, 목표와 전략, 개입 방식, 예상되는 장애물과 저항, 예후 등을 고려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책의 단점은 각 이론의 사례개념화 방식을 다루는 5장부터 9장까지 비슷한 내용을 copy & paste한 것 같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동일한 다섯 사례의 백그라운드 정보가 매 장마다 반복되기 때문에 상당히 지루합니다. 이로 인해 동일한 사례로 각 이론에 따른 사례개념화의 차이를 부각시키려는 이 책의 목적이 조금 퇴색하는 느낌이 있어요. 더욱이 아들러 이론에 입각한 9장은 각 사례의 치료 목표가 다 비슷합니다. 이것이 아들러 이론의 한계인지 저자의 피상적 기술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장에 걸쳐서 뿐만 아니라 같은 장 안에서도 같은 내용을 다시 읽는 듯한 기시감이 강합니다. 문제중심적 사례개념화를 다루는 8장에서도 성격 문제를 지닌 어떤 사례는 치료 목표가 상당히 피상적으로 기술돼 있고, 문제중심적인 방식을 적용하면 안 되는 사례에 무리하게 적용한 결과가 아닐까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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